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한국현대사 ‘서울대 학생운동사 70년’ 이제야 정리했네요”

등록 2020-06-16 20:41수정 2020-06-17 00:00

【짬】 서울대 역사교육과 유용태 교수

유용태 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                                       강성만 선임기자
유용태 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 강성만 선임기자
<학생들이 만든 한국 현대사-서울대 학생운동 70년>.

유용태 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와 정숭교 명지대 객원교수, 최갑수 서울대 명예교수가 1946년 서울대 개교 이후 70년 동안 펼쳐진 서울대 학생운동사를 정리한 책이다. 시대사와 사회문화사, 증언집, 자료집 등 모두 네 권이며, 이중 첫 권인 시대사만 종이책(한울 펴냄)으로 나왔다. 전자책으로 만든 다른 세권은 서울대 중앙도서관 사이트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2016년 서울대 민주화교수협의회 의장을 할 때 책 출간을 기획하고 집필에도 참여한 유용태 교수를 15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학생들이 만든 한국 현대사> 시대사편 표지. 2~4권은 서울대 도서관에서 무료 열람할 수 있다.
<학생들이 만든 한국 현대사> 시대사편 표지. 2~4권은 서울대 도서관에서 무료 열람할 수 있다.
책은 1946년 국립대 설치안 반대 투쟁부터 시작해 4·19혁명과 6·10민주항쟁 등 현대사의 큰 물줄기를 따라 펼쳐진 서울대 학생운동의 양상을 세밀하게 따라간다. 학생운동 주도 세력과 학내 학술·언론·문화 활동의 변천도 구체적으로 정리했다. 1964년 한일협정 반대 시위를 기점으로 ‘민족주의비교연구회’ 같은 학회들이 시위를 주도하다 76년부터는 ‘언더서클협의체’가 시위를 기획하고 실행했단다. 그 전해 박정희 정권이 유신에 반대하는 모든 행위를 금지한 긴급조치 9호를 발동해 학회가 지하로 내몰린 탓이다. 87년부터 91년은 학생회가 정치투쟁 중심에 섰고 90년대는 옛 민중당 청년학생위원회 활동에서 출발한 ‘학생 정치조직’이 학생운동을 이끌었다. 그러다 비운동권 총학생회가 2000년에 처음 등장했고 2013년부터는 총학생회에서 운동권이 사라졌단다.

개별 대학의 학생운동사가 처음은 아니다. 고려대와 경북대도 앞서 학생운동사가 나왔다. 특히 고려대는 2005년 개교 100년을 맞아 대학 차원에서 발간했다. 서울대 학생운동사는 교수단체인 서울대 민교협이 4년 전에 ‘개교 70년과 6월항쟁 30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출간을 발의하고 서울대로부터 연구비 지원을 받았다. “40명이 4년간 작업했어요. 올해 10월엔 300쪽 분량의 영문판 원고도 탈고됩니다. 지난 촛불 시위로 한국 민주화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높아졌잖아요. 그걸 보고 외국인들도 편하게 읽도록 영문판을 내기로 했죠.”

왜 교수단체가 나섰을까. “사실 총학생회나 민주동문회가 나설 일이죠. 그런데 70년이 되도록 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나섰어요. 더 늦어지면 자료도 사라지고 할 사람도 없어 영영 불가능할 것 같았어요. 지금껏 못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죠. 학생운동에 큰 역할을 한 개별 대학의 사례가 나오면 전체 학생운동사 정리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서울대 민교협은 6월항쟁 10주년인 1997년에 <서울대 교수 민주화운동 50년사>를 펴내기도 했다.

집필 과정의 어려움을 묻자 그는 “자료가 빠진 게 한둘이 아니다”고 답했다. “검찰이나 옛 안기부 등 공안기관 자료를 볼 수 없어 주로 신문에 의존했는데 신문마다 구속자 통계가 달라요. 87년 구로구청 선거부정 항의 사건이 대표적이죠. 또 큰 시위 때 기획 과정이나 정세 판단, 전략과 전술, 선언문 작성의 포인트 등도 알고 싶은데 70년대는 민청련 등에서 만든 책자가 있어 도움을 받았지만 80, 90년대는 참고할 자료가 없더군요.”

총학생회·동문회 대신 민교협 나서
2016년 ‘6월항쟁 30돌 기념’ 발의
의장 맡아 기획·4년간 집필 주도
1권 ‘시대사’ 내고 2·3·4권 전자책

“국회가 해야 할 일을 학생들이 대신”
“서울대 6월항쟁 공식 기념했으면”

책에는 80년대 들어 급진화된 학생운동 내부의 변혁노선 흐름도 상세히 나온다. 객관적 서술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고 하자 이렇게 답했다. “당시 학생운동 변혁 노선들이 워낙 복잡하고 치열하게 경쟁해, 실사구시의 자세로 역사를 연구하는 것처럼 드라이(건조)하게 서술하자고 집필진이 의견을 모았죠.”

전투적 학생운동은 93년 문민정부 출범으로 기세가 꺾이고 5년 뒤 실질적 정권교체가 이뤄지고는 종언을 맞았다고 책은 기록했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이뤄진 뒤에는 정치에서 학내 민주화로 이슈의 전환이 이뤄졌죠. 그렇다고 정치에 무관심한 것도 아니었어요. 학내 문제에 중점을 두면서도 국정교과서나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농단 같은 중요한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학생들이 반응했어요. 운동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중시한 것도 주목할 변화죠. 지금은 의사결정 과정의 정당성을 중요하게 봐요. 90년대 이전 시기가 민주화 운동이라면 지금은 운동의 민주화를 추구하죠. 요즘 학생운동의 주요 이슈인 ‘시흥 캠퍼스’나 ‘성 문제’를 다루는 데서는 70, 80년대 선배들이 보인 과격함이 보이기도 합니다.”

77년 서울대 역사교육과에 입학한 유 교수 이름은 책 본문에 나오지 않는다. “대학 때 경찰서에 끌려가 조사받기는 했지만 구속이나 제적당하지는 않았어요. 1학년 때부터 학회 활동은 했죠.” 그는 교사 3년 차이던 89년 전교조 가입을 이유로 해직당한 뒤 다시 공부를 시작해 연세대 사학과에서 ‘중국 근대 농민운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2002년 서울대 교수로 왔다.

지난 학생운동의 역사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학생들에겐 정치와 대학 민주화라는 두 과제가 있었어요. 문민정부가 등장하는 90년대 초까진 정치 문제가 컸죠. 학생들이 정치 민주화에 기여한 역할이 큽니다. 국회가 해야 할 일을 학생운동이 거의 대신했다는 생각마저 들어요. 국회가 독재정권의 억압으로 제 역할을 못 한 탓에 정의감에 불탔던 청년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감옥에 끌려갔죠. 그렇게 정치 민주주의를 진전시켰는데 안타까운 것은 그 뒤로 국회가 실질적 민주주의를 진전시키지 못하고 뒷걸음질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번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선거 과정에서 여·야가 망가뜨린 걸 보세요.”

유용태 교수.                           강성만 선임기자
유용태 교수. 강성만 선임기자
책에 등장하는 인물 중 특히 기억하고 싶은 이가 있다면? “민주화운동으로 희생된 서울대생은 34명입니다. 그들 죽음 하나하나가 고귀하고 한국 민주화에 밑거름이 됐죠. 물론 부모님한테는 통한의 아픔이겠지만요. 이 중에서도 4·19 때 희생된 6명과 6월항쟁의 불씨가 된 박종철 열사는 한국 민주화의 직접 촉진자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런 의미를 봐서라도 서울대는 4·19혁명처럼 6·10민주항쟁도 공식 기념행사를 해야 합니다.” 4·19는 유신 시절인 73년에, 6·10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에 법정기념일이 됐다.

인터뷰 말미에 유 교수가 특히 강조한 말이다. “여전히 서울대는 학생운동을 대학 역사의 일부로 껴안고 흔쾌히 인정하려고 하지 않아요. 학생운동사가 대학 공식 기구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게 그걸 잘 보여주죠. 대학 사회가 너무 보수적입니다. 분단과 전쟁을 거치며 서울대에서 좌파 지식인들이 뿌리 뽑혔어요. 그 이후로 대학의 지적 지형이 너무 한쪽으로 기울었어요. 지금도 회복하지 않고 있어요. 특히 보직 교수들 사고가 너무 보수적입니다.” 그러면서 중국 5·4운동 당시 베이징대 총장을 지낸 차이위안페이의 말을 꺼냈다. “차이위안페이는 한자로 큰 대자를 대학에 쓰는 까닭을 이렇게 말했어요. 좌우 상하로 다 품고 포용해서라고요. 대학은 영어로 유니버시티라고 하는데 이말도 묶다와 다양성을 합친 말이죠. 다양성이 바로 큰 대라는 거죠. 같은 경제학이라도 좌나 우 다 있어야 한다는 말이죠.” 그는 서울대가 학생운동의 역사를 좀 더 넉넉하게 품어내길 희망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장무 총장 시절인 2007년 서울대 공식 기구인 서울대 민주화기념 위원회를 만들어 학생운동사 편찬과 관련 강의 개설, 기념관 설립, 조형물 건립의 필요성을 깊게 논의했지만 실행된 것은 ‘민주화의 길’ 조성뿐이었죠. 민주화의 길은 기존 조형물을 연결하고 표지판만 세우는 작업이라 가장 쉬운 일이었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어도어와 계약 해지한 뉴진스, 왜 소송은 안 한다 했을까 1.

어도어와 계약 해지한 뉴진스, 왜 소송은 안 한다 했을까

‘정년이’ 큰일 했다…여성국극 연일 매진, 신작 제작도 활발 2.

‘정년이’ 큰일 했다…여성국극 연일 매진, 신작 제작도 활발

‘아버지’ 된 정우성 “아들 책임 끝까지…질책은 안고 가겠다” 3.

‘아버지’ 된 정우성 “아들 책임 끝까지…질책은 안고 가겠다”

마산 앞바다에 비친 ‘각자도생 한국’ [.txt] 4.

마산 앞바다에 비친 ‘각자도생 한국’ [.txt]

사기·다단계·야반도주…도박판인지 미술판인지 5.

사기·다단계·야반도주…도박판인지 미술판인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