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먹은 음식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는다. 닭가슴살, 고구마, 샐러드가 담긴 사진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간다. 출근 전 헬스장에서 운동하며 ‘나는 할 수 있다’는 자기암시를 건다. 직장에서는 친절하고 능력 있는 직원이 되고자 애쓴다. 혹시 모를 해외연수를 대비해 퇴근하고 외국어 공부도 한다.
철학자 한병철은 이러한 현대인의 긍정적 모습에 보이지 않는 폭력이 숨어 있다고 봤다. 그는 <폭력의 위상학>에서 “적대관계나 지배관계 없이 작용하는 긍정성의 폭력도 존재한다”며 “폭력은 자유와 합치를 이루는 순간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자유감정을 느낀 인간은 자아를 소진하며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착취하는 내적 폭력을 행하다 자살까지도 이른다. 한때 폭력은 눈에 잘 보였고 주로 외부에서 육체나 언어를 거쳐 직접 가해졌다. 후기 근대에 이르러 폭력은 ‘하지 말라’는 부정성에서 ‘할 수 있다’는 긍정성으로 위상이 바뀌며 인간 내면을 파고 들었다. 한병철은 2010년 <피로사회>에서 선언하듯이 넘겼던 ‘피로는 폭력이다’는 명제를 3년 뒤 이 책을 내며 철학적으로 논증했다.
<폭력의 위상학>은 독일에서 나온 지 7년이 지나 최근 번역됐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지금, ‘긍정성의 폭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유효할지 의문이 생긴다. 코로나19의 부정성은 인간이 당연하게 여긴 숱한 활동을 하지 못하게 막고 있어서다. 긍정성의 폭력을 겪어온 우리는 무엇인가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을 능력으로서의 부정성을 발견할 수 있을까.
이정규 기자 j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