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민주주의
남기업 지음/이상북스·1만6000원
전에 살던 아파트에 동대표 선출 공고문이 붙었다. 출마자 모집 공고라기보단, 현재 동대표들을 밀어달라는 연임 요청서에 가까웠다. 용케 선관위를 통과했다 싶었다. 이사온 집은 아직 입주자대표위원회가 없다. 예비입주자 모임에서 조합과 뜻이 맞지 않아 고생한 예비회장은 일찌감치 손을 털겠다고 선언했다. 어려운 일인 건 알겠지만, 몇 차례 이사를 거치며 아파트 공동체의 중요성을 느끼고 나니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내가 나가봐? 뜯어말려야 할 배우자는 도리어 격려 중이다.
그러다 운명처럼 <아파트 민주주의>를 만났다. 2015년부터 지지리도 고생한 그의 분투기를 살펴 보니 고개를 절로 젓게 됐다. 기계공학·정치외교학 학부 전공에 정치학 박사이자, <공정국가: 대한민국의 새로운 국가모델>을 쓴 ‘토지+자유연구소’ 소장님도 이렇게 고생했는데! 관리사무소 직원들에게 ‘회장님’ 소리 듣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회의비·임원수당을 노년의 용돈벌이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양반이지, 소위 ‘눈먼 돈’에 관심 있는 사람들, 뒷돈을 꿈꾸는 사람들, 친지들을 여기저기 꽂아넣고 싶은 사람들과 부닥치면 ‘집’은 전쟁터로 변한다. 중상모략, 책임 떠넘기기, 소송전….
하지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해 온 세상”에서 분투하는 지은이를 향해 “상식을 짓밟는 소수의 전횡에 의분을 품은” 사람들이 하나 둘씩 손을 내밀고, 결국 보기 드문 권선징악의 결과로 성큼 다가서니, 카타르시스마저 맛볼 수 있다. ‘그들’이 가장 바라는 건 무관심이라는 말도 와닿는다. 전국 아파트에 ‘남기업 회장’이 있을 수 없으니, 이 책이 필요하다. 정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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