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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우리는 지구 위에서 중력으로 연결된 존재랍니다

등록 2020-07-10 06:02수정 2020-07-10 10:41

지구 중력을 소재로 인간 관계와 삶을 이야기하는 그림책
파란색 많이 쓰였지만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책 전체 감싸

안녕, 중력
박광명 글·그림/고래뱃속·1만3000원
고래뱃속 제공
고래뱃속 제공

“이제 아기님은 지구인이 되었습니다.”

탯줄을 끊고 세상으로 나온 아기는 ‘보이지 않는 실’에 다시 연결된다.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쥐고 있는 중력이야. 그날 밤 너와 난 처음으로 연결됐어.” 지구 위의 모든 존재가 매여 있는 실, 바로 중력이다.

그림책 <안녕, 중력>은 ‘삶과 죽음은 무엇일까’라는 철학적 질문에 ‘중력이’의 시각으로 답하는 책이다. 심오한 주제지만 중력에 연결된 채 성장하고, 나이를 먹고, 결국 세상을 떠나는 인간의 모습을 따라가며 읽는 이들의 공감을 자연스레 끌어낸다.

중력은 지구 위의 모든 존재를 속박한다. 인간의 삶은 중력과 벌이는 ‘밀고 당기기’의 연속이다. 아이는 빨간 망토를 두르고 하늘을 날고 싶어한다. 아이는 자라면서 발목에 묶인 중력의 실을 흔들고, 팽팽하게 당기며 더 높은 곳을 향하려 한다. 그럴 때마다 중력은 쓸쓸하게 되뇐다. ‘나를 떠나 멀리 가고 싶은 거니?’ 물론 실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아이가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는 과정에 함께한 중력은 자연스레 ‘아름다운 구속’이 된다. 중력은 슬프고 화나는 수많은 인생사에 흔들리는 이들을 가만히 붙잡는다. 흰머리가 늘고, 얼굴에 주름이 하나둘 늘어날 때쯤 팽팽하던 실은 느슨해진다. 중력은 그제야 실을 풀고 작별을 고한다. ‘주름진 아이’는 어릴 적 즐겨 찾던 빨간 망토를 다시 두르고 훨훨 우주로 날아간다.

아이의 성장과정을 보여주는 대목에서 작가는 아이 주변에 열기구, 패러글라이딩, 비행기, 인공위성 그림을 그려 넣었다. 중력과 밀고 당기기를 하는 개개인의 의지가 모여 하늘을 날고, 우주로 향하려는 인류의 역사가 형성돼 왔다는 의미를 담으려 한 것으로 읽힌다.

고래뱃속 제공
고래뱃속 제공

세로로 된 책은 중력의 힘에 이끌리듯 위에서 아래로 책장을 넘기며 읽어야 한다. 아이든 어른이든 위아래 고개를 끄덕이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코로나19로 ‘언택트’(비대면) 시대가 찾아왔다고 하지만 우리는 지구 위에서 중력으로 서로 연결된 존재라는 변함 없는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에 존재하고 떠나게 되는지를, 아이가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되는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을…. 할머니, 할아버지 등 가까운 이가 세상을 떠났을 때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도 책장을 넘기며 “할머니는 하늘로 가셨어”라고 이야기를 건네볼 수 있을 것 같다. 파란색이 많이 쓰였지만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책 전체를 온기로 감싼다. 4살 이상.

이승준 <한겨레21> 기자 gamja@hani.co.kr, 그림 고래뱃속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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