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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그냥 재밌게 아이들과 같이 노는 기분으로 쓰는 게 비결이죠”

등록 2020-07-14 19:11수정 2020-07-14 23:20

[짬] 과학교양서 저술가 이지유 작가

이지유 작가는 하루 두 시간은 과학 공부에 쓴다고 했다. “아침에 눈 뜨면 먼저 <비비시>와 <뉴욕타임스> 과학 뉴스를 챙겨봅니다.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소식지도 확인하고요. 최신 과학 동향을 알 수 있죠. 기상학이나 지구과학 분야의 대학 전공자 개론서 개정판이 나올 때도 꼭 사서 봐요.”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지유 작가는 하루 두 시간은 과학 공부에 쓴다고 했다. “아침에 눈 뜨면 먼저 <비비시>와 <뉴욕타임스> 과학 뉴스를 챙겨봅니다.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소식지도 확인하고요. 최신 과학 동향을 알 수 있죠. 기상학이나 지구과학 분야의 대학 전공자 개론서 개정판이 나올 때도 꼭 사서 봐요.”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별똥별 아줌마’로 알려진 이지유(55)씨는 과학교양서 분야의 인기 작가다. 그를 작가의 길로 인도한 첫 책 <별똥별 아줌마가 들려주는 우주 이야기>(2001)는 30만권 가까이 나갔다. 올해만 <저기 어딘가 블랙홀>(한겨레출판) 등 과학교양서 10권을 냈고, 연말까지 세권을 더 낸다. 그간 출간한 50여권 가운데 어린이·청소년 책이 90%다. 매년 학교나 도서관, 책방에서 하는 강연도 100~150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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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어딘가 블랙홀> 표지.

“정말 고수는 아이들이 공감하게 써야 해요. 알아듣게 쓰는 것은 당연하고요. 그리고 일단 재밌어야 해요. 이 재미는 교환관계가 없는 거죠. ‘재밌으니 이거는 알아야 해’가 아니라 그냥 재밌어야 해요.” 지난 8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저자의 말이다. “아이들의 관심사나 가치관을 알려고 유튜브나 케이블 만화채널은 물론 만화책도 많이 봐요.”

내년이면 ‘저술 인생’ 20년이지만 여전히 아이들과 공감하기는 어려운 과제다. “어린이 책은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기 전에 퇴고를 10번쯤 해요. 성인용은 4~5번 하는데요.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질문해요. 아이들 언어를 써야 하고 가르치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예컨대 ‘선생님은 말이지’ ‘박사님은 말이지’ 이런 표현은 안 써요. 선생님이나 박사님 같은 호칭이 아이들한테 권위적으로 다가가거든요. 이 재미난 세계에 와서 같이 놀자고 초청하는 기분으로 쓰죠.”

‘내가 신나게 글을 쓰는데 읽는 사람도 신나게 읽을까.’ 지난 19년 동안 그의 마음을 떠나지 않은 질문이다. 그가 올해 낸 책 <이지유의 이지 사이언스>(창비, 전 4권)와 <저기 어딘가 블랙홀>에는 각각 저자가 왼손으로 그린 그림과 직접 제작한 동판화가 실렸다. 이도 “책 보는 재미를 최대한 선사하고 싶은” 저자의 전략이다. “완벽한 책은 글과 이미지가 따로 놀지 않고 화학적으로 결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림도 직접 그리죠. 제가 재밌기도 하고요.” 왼손 그림은 4년 전 스키를 타다 오른손을 다친 뒤 시작했다. “다 나은 뒤에도 왼손으로 그렸어요. 오른손으로 하면 사물을 관찰해 세밀하게 잘 그리려고 하잖아요. 하지만 왼손은 힘도 없고 획을 쉽게 그을 수 없어 몇 개의 선으로 비슷하게 그려야 해요. 너무 재밌고요.” 그가 왼손으로 간략히 그린 형태와 삐뚤삐뚤한 글씨체는 오른쪽 면에 나오는 흥미로운 과학지식과 절묘하게 섞인다.

이지유 작가의 ‘개구리’ 동판화. 이지유 작가 제공.
이지유 작가의 ‘개구리’ 동판화. 이지유 작가 제공.

그는 판화를 배우려고 지난 1년 동안 살고 있는 세종시에서 서울 홍익대 근처 판화공방까지 100회를 오갔다. “화가 친구의 권유로 시작했는데 너무 재밌어요. 색이 3개인 판화를 찍으려면 판을 3개 만들어야 해요. 이렇게 만들어 제가 계산한 대로 판화가 나오면 너무 재밌어요. 이미지 작업을 하면서 제가 쓸 글에 대해 더 깊이 사유할 수도 있죠.”

‘재밌는 책’을 향한 집념은 이런 일화도 낳았다. “저는 그림을 책 왼쪽 면에 넣어 독자들이 글보다 그림을 먼저 읽게 하고 싶었는데 편집자가 반대해요. 그래서 제가 그림을 왼쪽과 오른쪽에 다 넣은 가제본 책을 각각 만들어 대전 계룡문고 앞에서 설문조사까지 했어요. 제 생각이 표를 더 얻어 편집자를 설득했죠.”

그가 책은 발로 쓴다고 말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과학교양서 <저기 어딘가 블랙홀>을 보면 우주와 동·식물 등 과학 현상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여행지의 오감 체험과 맞물려 흥미롭게 이어진다. 집을 떠나 27시간 만에 찾은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에서 저자는 평화롭게 풀을 뜯는 수많은 검은꼬리누 무리를 눈으로 보고 ‘세렝게티의 주인공은 사자가 아니라 검은꼬리누’라는 생각에 이른다. “글이나 그림의 바탕은 제 경험이어야 해요. 특히 과학에 대한 글은 설명이 아니라 묘사라고 생각해요. 저는 독자들이 제 글을 읽고 뭔가 이미지를 떠올리길 기대해요. 화산에 대한 제 책을 읽고 화산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죠. 사람들이 제가 느낀 것을 느끼도록 하고 싶어요. 아는 것을 넘어서요.”

지구과학 전공 뒤 대학원은 천문학
1999년 어린이 잡지에 기고 시작
‘별똥별 아줌마가 들려주는 우주…’
19년간 30만권 판매…50여권 출간

“뭐든 체험해보고 쓰고 10번쯤 퇴고”
‘진정한 지식 융합은 이런 것’ 목표

그가 ‘별똥별 아줌마’란 수식어를 달고 99년에 처음 어린이 잡지에 쓴 글도 프랑스의 망원경 제작사 옆에서 살았던 경험이 바탕이었다. 하와이 킬라우에아 화산 옆에서 1년간 살았던 경험은 화산에 대한 책이 됐고 사막 책을 쓰려고 오스트레일리아 서부 사막 지대에서 3개월 동안 살기도 했단다. “여행을 가서는 그곳의 냄새나 소리, 맛을 느끼려고 합니다. 혀를 내밀어 공기 맛을 보기도 하죠. 오스트레일리아 서부 사막 공기에선 쇠맛이 나더군요. 흙에 철광석 성분이 많아서죠.”

이지유 작가의 왼손 그림과 글씨. 이지유 작가 제공
이지유 작가의 왼손 그림과 글씨. 이지유 작가 제공

과학저술가가 되기 전 그의 꿈은 천문학자였다. 서울대 지구과학교육과를 나와 모교 천문학과 대학원을 수료했다. 서울 도봉여중에서 2년간 과학 교사도 했다. “초등학교 때 집에 있던 금성대백과사전 1권 우주 편에서 오리온자리 적색거성 베텔게우스가 지구가 태양을 도는 공전궤도만큼 거대하다는 걸 알고 갑자기 머리가 멍해졌어요. 그때 제 거리 감각은 기껏해야 학교에서 집까지였거든요. 제가 베텔게우스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는 환영까지 들었죠. 그 뒤로 천문학자를 꿈꿨어요.” 교사를 할 때는 과학 교과서에 나오는 실험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했단다. “실험 수십 개를 학생들과 신나게 했어요. 저 때문에 동료 과학 교사들이 조금 힘들었죠.”

과학자 대신 작가의 길로 나선 데는 첫 책을 내고 받은 고3 여학생의 편지가 영향을 미쳤단다. “자기는 천문학과를 가고 싶은데 선생님과 부모가 다 반대한다고 해요. 그 편지에 ‘결정은 네가 해라. 대신 천문학 전공이 얼마나 유망한지 그 근거를 적어주겠다’며 답신했어요. 그 뒤로 책쓰기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죠. 그 여학생은 주변에서 여성 천문학자를 보지 못해 저한테 도움을 구했잖아요.”

이지유 작가가 2015년 1월 오스트레일리아 서쪽 카리지니 계곡을 찾아 찍은 사진. 이지유 작가 제공
이지유 작가가 2015년 1월 오스트레일리아 서쪽 카리지니 계곡을 찾아 찍은 사진. 이지유 작가 제공

그는 무엇에 꽂히면 앞뒤 안 가리고 하는 스타일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목표를 이뤘다 싶으면 새로운 일을 찾는다. 30대엔 바이올린을 배워 교습학원에서 친구들을 불러 연주회까지 했고 40대 후반엔 과학영재교육에 대한 관심으로 공주대 대학원 과학영재교육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역도도 좋아해 6년 전에는 자신이 다니던 스포츠센터에서 생일 파티도 했단다. “역기를 30kg까지 한 번에 머리 위로 들어 올릴 수 있어요. 생일에 친구들을 불러 체력 단련을 시켜주었죠. 파티 뒤 모두 다리가 풀려 집으로 가더군요 하하. 판화도 육체 작업이라 더 맘에 들어요.”

그는 2018년 3월부터 냉장고 없이 살고 있다. 이 역시 홍콩 여행을 한 뒤 내린 결정이다. “홍콩에서 보니 더운 날씨에 집에서 불을 피우며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더군요. 아침부터 식당으로 가요. 이런 삶이 식재료를 저장하고 조리하는 데 쓰는 에너지를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엄청나게 효과 좋은 온실가스인 냉장고 냉매 처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요.” ‘냉장고 없는 삶’에 한국천문연구원 소속 과학자인 남편과 기상학과를 졸업해 기후변화에 관심이 많은 아들도 흔쾌히 동의했단다.

계획을 물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융합해 ‘진정한 지식의 종합이란 이런 거야’라고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책을 써보고 싶어요. 그리고 장사도요. 아이스크림 장사를 해보고 싶어요. 제가 돈이 드나드는 것에 대한 감각이 둔해요. 그래서 장사하는 분들을 보면 저와 뇌의 구조가 다른 것 같기도 해요. 경외감이 들 때도 있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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