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하수 지음/한뼘책방·1만5000원 학번이라는 말이 고졸 출신 대통령에게 툭 던져진 날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3월 ‘검사와의 대화’에서 “대통령님께서 83학번이라는 보도를 어디서 봤습니다. 혹시 기억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꽉 모았던 두 손을 쥐었다 폈다가 말을 더듬으며 두루뭉술하게 답했다. “뭐 80학번쯤으로 보면 됩니다.” 한 나라의 대표자조차 ‘배제의 언어’에 당황한 모습이었다. <거리의 언어학>을 읽으니 복잡한 감정이 정리됐다. “세상은 언어로 이뤄졌다. 때로 언어는 인간을 배제한다.” 지은이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은 사회언어학을 전공한 1세대 학자로 계층·나이·성별·직업 등이 언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해 왔다. 그는 ‘학번’이란 용어가 공공의 세계에서 사용될 때 누군가에게는 장벽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책에는 그밖에도 언어의 형식과 구조를 넘어 언어와 인간, 사회제도의 문제가 담겨 있다. 잡담의 유용성, 한국어가 만들어진 역사, 인권 감수성을 위한 언어 사용도 함께 다룬다. 언어는 평등한 감각이 중심을 이룬다. 아기들은 태어나고 자라면서 비슷한 시기에 언어를 배운다. 지은이는 “비슷한 수준의 언어 능력을 바탕으로 소통의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사는 사회”를 강조한다. 아름다운 말은 사회 변화를 반영하기도 한다. ‘간호사’는 대학원이 만들어진 뒤 나온 언어다. 간호 양성소만 존재했을 때는 ‘간호부’, 대학교에 간호학과가 생기자 ‘간호원’이라는 명칭이 등장했다. 책을 읽으니 언어를 섬세하게 써가며 평등의 감각을 찾아내는 일, 그 일을 소망하게 됐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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