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
알렉산드리아 J. 래브넬 지음, 김고명 옮김/롤러코스터·1만8000원
“갈 데까지 간 공유경제 서비스.”
반려견의 분변을 치워주는 획기적인 주문형 플랫폼이 탄생했다. 미국에서 선보인 앱 기반 서비스 ‘푸퍼’(Pooper)는 “개똥계의 우버”로 일컬어진다. 사용자가 반려견의 똥 사진을 보내면, 프리우스를 탄 사람이 집으로 와서 수거해 간다. 이 서비스가 뜨자마자 앱은 화제가 되고 큰 인기를 누렸다. 개똥을 치우는 모욕적인 업무였지만, 이 일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서비스 신청자보다 많았다.
2016년 7월 선보인 푸퍼 서비스는 광고 제작자인 벤 베커와 마케팅 회사를 운영하는 엘리엇 글래스가 시작한 ‘예술 프로젝트’로, 다시 말해 ‘가짜’였다. 앱에 중독된 세상, 직접 해도 되는 일까지 플랫폼 노동에 맡겨 처리하려는 세태를 꼬집기 위한 퍼포먼스였던 것이다. 하지만 일을 하겠다며 몰려든 사람들을 보고 이 서비스의 창조자들은 심란해졌다. 별것 아닌 아이디어를 “핵”(hack, 기발한 해법이나 요령)이라며 추켜세우는 ‘혁신 경제 자체’가 문제라고 이들은 비판했다.
일시적 용역을 발주하는 ‘태스크래빗’ 노동자인 자말이 브루클린의 한 주택 작은 연못을 청소한 뒤 자신의 발을 찍었다.(핸드폰 화면 속 흑백사진) 그는 “살다 살다 그렇게 역겨운 일을 해보긴 또 처음”이라며 “지금도 가끔 꿈에 나온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사진 롤러코스터 제공, 그래픽 동혜원
100년 노동운동의 성과 무너지다
2010년대 들어서 ‘디지털 엘리트’들은 앞다퉈 공유경제 서비스를 내놓았다. 숙박 공유 서비스는 “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는 메시지로 잠재적 투숙객들에게 따뜻한 환대의 공동체 이미지를 강조했고, 차량 공유나 차량 호출 서비스는 친절함과 편리함을 기반으로 소비자가 효능감을 느끼도록 했다. 여론 조사기관 퓨 리서치센터가 2016년 조사한 결과 미국 성인 약 4분의 1이 지난 1년간 ‘플랫폼 경제’에서 소득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지은이 알렉산드리아 J. 래브넬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조교수. 뉴욕대 공공지식연구소 방문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최근 코로나19가 뉴욕의 불안정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 J. J. IGNOTZ
공유경제는 마을 중심의 삶으로 복귀시키려는 해결사를 자처하며 ‘시장’의 힘보다 사회적 ‘신뢰’에 기반한다고 강조했다. ‘선한 뜻’을 내세운 것이다.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원제: Hustle and Gig)를 쓴 사회학자 알렉산드리아 J. 래브넬(노스캐롤라이나대 조교수)은 그러나 공유경제를 “착취가 횡행하던 시대로 노동자를 돌려보내는 퇴행 경제”라고 못박는다. 에어비앤비(숙박 공유), 우버(차량 공유), 태스크래빗(인력 공유), 키친서핑(전문 셰프 파견) 서비스에 등록된 백인, 흑인, 히스패닉계 20~56살 남녀 노동자 약 80명을 면담한 내용이 책의 뼈대를 이룬다. 지은이는 노동자 보호장치와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독립계약자’로서 사람들이 별다른 보호장비도 없이 맨손으로 노동 현장에 뛰어든다고 밝힌다. 업무상 재해를 입거나 폭언, 폭행, 가혹행위, 인종차별, 혐오발언, 성희롱에 시달려도 보호받지 못하는 ‘을’의 사례도 낱낱이 보고한다. 초기 산업사회 때부터 100여년에 걸쳐 확립된 노동자의 권리, 그리고 제2세대 페미니즘의 물결로 얻어낸 직장 내 성희롱 방지법 등은 시대 변화 앞에 속수무책. “불도저처럼 보호장치를 밀어버리는 공유경제를 당해내지 못한다.”
2017년 10월 뉴욕 유니언스퀘어 공원에서 한 남성이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종이팻말에는 “우버이츠 배달원으로 고용됐습니다. 증거도 있습니다. 일을 하려면 앱을 이용해야 하는데 폰이 없어 아직 일을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폰을 개통하기 위해 30달러를 모으고 있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지은이는 “분투자에게 공유경제는 실업을 막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라고 말한다. (저자 촬영) 롤러코스터 제공
일시적 주문형 일자리인 ‘긱 경제’(gig economy) 속에서 살아가는 노동자들을 지은이는 세가지로 분류한다. 발빠르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일궈나간 성공자,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일하는 분투자, 경제적 안정성을 더욱 강화하려는 중간자다. 아이들을 명문학교에 보내고 싶어 에어비앤비 호스트를 시작한 에이미 부부는 세를 낸 뉴욕 아파트를 숙박 공유 사이트에 내놓고 본인들은 학군이 좋은 임대주택으로 이사했다. 이들은 집주인에게 숙박 공유 사실을 들킬까봐 불안해하고, 손님들한테는 긍정적 평가를 얻으려고 안달복달한다. 모르는 아이들이 자기 침대에서 자고, 자기 장난감까지 갖고 논다는 사실에 충격받은 자녀들의 마음도 보살펴야 한다. 온갖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감정노동이 심하지만, 중산층 삶을 유지하려면 복잡한 전략을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나쁜 후기, 1점짜리 별점 등을 관리하며 연구 참여자들은 자주 “전전긍긍했어요” 같은 말을 내뱉는다. 용역 서비스를 제공한 한 남성 노동자는 포르셰와 레인지로버가 늘어선 차고 천장에 100㎏짜리 정리 선반을 달기도 했다. “(선반이 떨어질까) 가슴이 조마조마했어요.”
푸퍼 홍보 자료에 실린 앱 화면. 반려견의 분변을 치워주는 이 서비스는 “자율적으로 일하세요. 푸고 싶을 때 푸고 벌고 싶은 만큼 버세요. 마음대로 일정을 정하세요. 언제 푸느냐는 전적으로 자유입니다. 푸고 싶은 만큼만 푸세요”라고 잠재적 노동자를 유혹했지만 가짜였다. 풍자적 의도에서 기획된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저자 촬영 스크린 샷) 롤러코스터 제공
위험에 노출된 긱 경제 노동자들
긱 경제는 개 산책, 청소, 장보기, 운전 등 “사생활의 상품화” “사생활의 아웃소싱”뿐만 아니라 “불쾌한 일의 외주화”를 심화한다. 가난한 ‘분투자’들에게는 공유경제가 생존을 위한 최후의 수단이다. 일을 거절하기 힘든 가난한 사람들의 ‘위험노동’은 앱으로 간편하게 주문, 배달된다. 종업원이 아닌 독립계약자로서 “노동계의 2등 시민”인 이들은 모르는 사람이 부르는 낯선 곳에 가서, 생각지 못한 일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25살의 한 남성은 브루클린의 근사한 주택에 딸린 작은 연못을 청소하러 갔는데, “살다 살다 그런 역겨운 일을 해보긴 또 처음”이라고 할 정도로 더러운 일이었다. 곰팡이와 모기가 득시글거리는 작은 연못은 썩어빠진데다 수심도 깊었다. “지금도 가끔 꿈에 나와요.” 그는 구역질 나는 물에 맨몸을 담가 청소를 하고 얼룩진 자기 발을 사진으로 찍어 남겼다. 보스턴대 사회학과 줄리엣 쇼어 교수는 이런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노예경제’라고 일컫는다. ‘주문형 용역 노동자’들은 인터뷰중에 가끔씩 스스로를 ‘하인’에 빗댔다. ‘주인 집’의 갖은 지저분한 행태를 보고, 듣고도 모른 척해야 했기 때문이다.
공유경제 내 성희롱 실태와 불법적 일에 휘말리는 노동자들의 사례를 다룬 5~6장은 비슷한 주제의 기존 책들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성희롱이 의심되는 제안이나 모욕적 말을 들을 때, 추근대거나 불편한 상황에서도 노동자들은 “괜히 나쁜 인상 안 주게” 입을 조심한다. ‘갑질’ 하는 이용자들의 속내엔 경멸과 함께, 일자리를 포기할 만큼 불쾌감을 느끼길 바라는 욕구가 깔려 있다고 지은이는 분석한다. 1974년 성희롱이란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한 린 팔리는 여성이 소수인 비전통적 직군에서 성희롱의 목적은 ‘여성을 배척하는 것’이고, 여성 위주 직군에서는 ‘여성을 억압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비정규직일수록, 권력 없는 직원일수록 비대칭적 권력관계 속에서 성희롱 피해 위험이 커진다.
“귀찮은 일은 저희에게 맡기시고 당신은 생활에 전념하세요”라고 적힌 ‘공유경제’ 기업의 광고물. (저자 촬영) 롤러코스터 제공
더 충격적인 것은 공유경제 노동자가 성희롱을 성희롱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언어 상실 현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지은이가 만난 누구도 불쾌한 성적 제안이나 경험을 ‘성희롱’이라 규정하지 않았다. 적대적 희롱이 발생했을 때, 노동자는 성희롱이라 인지하지 않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보호했다. 사고가 터져도, 불법적인 일에 연루되거나 사기를 당해도 노동자들의 보호막은 없었다. 가난과 부족한 일자리는 노동자 개인의 위험마저 사소한 것으로 만들었다.
사실 공유경제 안에서도 경험이 사뭇 다르다. 어떤 숙박 공유 호스트는 지은이에게 자신의 집에 묵은 여러 여성 게스트를 성적으로 초대한 경험을 떠벌리기도 했다. 숙박 공유 호스트나 출장 셰프들은 운전이나 배달 등 다른 용역 노동자들과 다르게 기술, 자본, 선택권을 갖는다. 무엇보다 이들은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고객을 받을지 결정할 자유가 보장된다. 하지만 먹이사슬 맨 밑바닥에서 가진 것 없는 노동자들은 누가 포식자인지, 어느 집이 위험한지 알 길이 없다. 플랫폼 자본은 생산수단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동차나 핸드폰 같은 시장진입 비용까지 개인이 지불해야 한다.
고학력자나 사업 실패자들이 이 일을 할 때는 ‘갈 데까지 갔다’며 낙인이 찍히고 정체성도 훼손당한다. 이 방패 없는 노동마저 저학력자들에게는 잃어버릴까 노심초사하는 소중한 기회다. 일시적으로 시장에 들어온 고학력자들과 다른 입장인 것이다. 공유경제는 전통적 직업과 아르바이트의 경계, 사적인 일과 공적인 일의 경계마저 무너뜨린다. 지은이는 공유경제가 고용주와 종업원의 사회계약이 무너지는 과정 중 한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풀이한다.
사실 지금껏 정치 엘리트나 기술 엘리트들은 공유경제 아이디어에 환호해왔다. 한국 또한 상황은 비슷하다.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은 지난달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공유경제 기본법’ 제정안을 대표발의했고 정부도 공유경제에 대한 호의적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어쩌면 청년들을 위한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허용적이다. 지금도 코로나19가 가져온 경제적 불안 속에서 이른바 ‘혁신’의 먹잇감이 되는 사람들은 상당수가 젊은이다. 그래서 더욱 이 책은 한국 사회에 던지는 하나의 경고장처럼 읽힌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2015년 6월 운전 기사들이 독립계약자로서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는 시위를 조직해 집회를 열었다. (저자 촬영) 롤러코스터 제공
에어비앤비 광고물. 잠재적 투숙객들에게는 개방적인 공동체를 강조하지만 호스트에게는 사업 창출성 강조를 위해 자사의 플랫폼을 이용해 벌 수 있는 수입을 강조한다고 지은이는 분석한다. (저자 촬영 스크린샷) 롤러코스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