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소설가 원재길씨
”장일순 선생은 평생 상식을 지키면서 산 지극히 평범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상식이 무너진 사회를 살다 보니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겁니다.”
무위당 장일순(1928~1994)은 한국의 협동조합과 한살림운동의 스승으로 추앙받는다. 1970년대 한국에 생명운동과 협동운동의 씨앗을 뿌렸으며, 70~80년대 원주의 지학순 주교와 함께 이 땅의 반독재 민주화운동에도 각별한 족적을 남겼다.
그런 장일순 선생이 강원도 원주에서 활동하는 원재길 소설가가 쓴 장편 소설 <장 선생, 1983년 9월 원주역>으로 다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원 작가를 지난 9일 전화로 만났다.
이번 작품은 장일순 선생을 주인공으로 한 첫 소설이다. 그간 장일순 선생 이야기는 평전과 이야기 모음집 등의 형태로만 출간됐다. 소설이라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등장인물과 사건은 ‘허구’다. 허구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작가는 “이 소설이 다루는 것은 장일순의 ‘생애’가 아니라 그가 평생 머릿속에 담고 지내며 행동으로 옮긴 그의 ‘생각’이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어떠했는지, 시대의 질곡을 겪으며 그가 꿈꿨던 세상은 어떤 것인지, 그가 사람들에게 전하려 했던 ‘삶의 가치’는 무엇인지 추적해 보여주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사실 그가 처음부터 소설을 준비한 것은 아니다. 2011년부터 시작된 이 작업의 시작은 ‘장일순 평전 쓰기’였다. 각종 자료 수집에만 3년 가까이 매달렸다. 하지만 벽에 막혔다. 원 작가는 “본업이 소설가다 보니 답답했다. 팩트를 가지고 글을 쓰려니 상상력이 들어갈 여지가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 작가로서 개인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것이 제한됐다. 평전용으로 2000장이나 썼지만 결국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결국 10년 가까이 방향을 잃었던 이 책은 지난해 여름 그가 ‘소설로 써버리자’고 결심하자 넉 달 만에 후딱 완성됐다.
작가에게 이 소설은 ‘평생의 스승’을 만나는 계기가 됐다. 서울 토박이인 그에게 원주에서 주로 활동한 장일순은 생소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가 2001년 원주로 거처를 옮긴 뒤부터 ‘장일순’이라는 이름이 그를 따라다녔다. 원주에서 만난 상당수가 ‘선생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을 했다. 궁금증에서 시작된 장일순과의 만남은 ‘장일순 앓이’로 번졌다. 원 작가는 “선생은 최고의 스승이자 본보기다. 선생을 몰랐으면 상식 이하의 삶을 살게 될 뻔했다.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선생을 알게 된 뒤로는 어떤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선생은 어떻게 할까를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선생, 1983년 9월 원주역’ 출간
2011년 원주 이주 뒤 평전 계획
원고 2천매 쓰고 소설로 방향 틀어
“선생 몰랐으면 상식 이하 삶 살 뻔” 고구마 농사가 생업인 농부 작가
지난해부터 그림 그려 전시회도 장일순 선생의 이야기를 끝낸 그가 새롭게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일은 ‘실패한 혁명가 3부작’의 완성이다. 우리 역사에서 만민평등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 역사적 인물 3명을 찾아 재평가하는 일이다. 2018년 4월 출간한 장편 소설 <궁예이야기>가 시작이다. 작가는 <삼국사기>에서 폭군이자 미치광이로 묘사된 궁예를 백성을 사랑한 위정자, 만민이 평등한 세상을 꿈꾼 인물로 새롭게 해석했다. 민중의 지도자가 왕권과 귀족·호족 연합인 왕건에 의해 축출당해 평등 사회로 나갈 기회를 통일신라 말기에 놓쳤다는 것이다. 승자의 기록으로 이런 역사가 묻혔다고도 했다. 작가는 <궁예이야기>를 쓰려고 <삼국사기>와 <고려사> 등 궁예와 관련된 역사 자료와 논문, 책까지 모조리 훑었다. 궁예가 905년 천도한 철원까지 답사하며 흔적을 뒤쫓았다.
두 번째 인물은 ‘허균’이다. 그는 “허균은 엘리트 귀족사회의 일원으로 태어났지만, 사회에서 소외돼, 신분차별 때문에 등용되지 못한 사람 등과 교류했다. 허균은 평소 꿈꾸던 만민평등 사회의 모습을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통해 표현했다”고 강조했다. 세 번째 인물도 근대 인물 중에서 찾아내 공부하고 있다.
그가 새롭게 쓴 허균은 3년쯤 후에나 만날 수 있다. 각종 역사 사료를 모조리 찾아 공부하는 그의 꼼꼼한 습성 탓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직업인 농사와 최근 새롭게 시작한 어린 시절의 꿈 때문이다.
그는 991㎡의 땅에 고구마를 심어 판매하는 것을 생업으로 하는 농부 작가다. 제초제도 치지 않고 오로지 호미 하나에 의지해 홀로 짓는 농사다. 오전에 3~4시간 농사일로 몸을 고되게 한 뒤 오후엔 글 쓰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글을 쓰며 쌓인 정신적 피로를 농사일로 해소하고, 고된 농사로 지친 몸을 글쓰기로 쉬게 하는 식이다.
장일순 선생 소설을 탈고한 지난해 12월부터는 짬이 날 때마다 그림도 그리고 있다. 비싼 그림 도구 장만이 어려워 결국 포기했던 꿈인 화가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 4월까지 유화 50여점을 그렸고, 지난 7월에는 서울에서 전시회도 열었다. 오는 11월 원주 치악예술관에서 또 다른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원재길 작가는 “글 쓰고 그림 그리고, 농사를 짓는 것이 즐겁다. 일이면서 놀이다. 글 하나만 썼다면 지쳐서 벌써 포기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원재길 작가. 원재길 작가 제공
원 작가가 최근 펴낸 장편 표지. 원재길 작가 제공
2011년 원주 이주 뒤 평전 계획
원고 2천매 쓰고 소설로 방향 틀어
“선생 몰랐으면 상식 이하 삶 살 뻔” 고구마 농사가 생업인 농부 작가
지난해부터 그림 그려 전시회도 장일순 선생의 이야기를 끝낸 그가 새롭게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일은 ‘실패한 혁명가 3부작’의 완성이다. 우리 역사에서 만민평등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 역사적 인물 3명을 찾아 재평가하는 일이다. 2018년 4월 출간한 장편 소설 <궁예이야기>가 시작이다. 작가는 <삼국사기>에서 폭군이자 미치광이로 묘사된 궁예를 백성을 사랑한 위정자, 만민이 평등한 세상을 꿈꾼 인물로 새롭게 해석했다. 민중의 지도자가 왕권과 귀족·호족 연합인 왕건에 의해 축출당해 평등 사회로 나갈 기회를 통일신라 말기에 놓쳤다는 것이다. 승자의 기록으로 이런 역사가 묻혔다고도 했다. 작가는 <궁예이야기>를 쓰려고 <삼국사기>와 <고려사> 등 궁예와 관련된 역사 자료와 논문, 책까지 모조리 훑었다. 궁예가 905년 천도한 철원까지 답사하며 흔적을 뒤쫓았다.
비를 맞으며 고구마 농사 중인 원재길 작가가 포즈를 취했다. 원재길 작가 제공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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