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열린책들·1만2800원
<심판>은 폐암 수술을 받던 중 사망한 프랑스 남성 아나톨 피숑이 천국에 도착해 지난 생을 ‘심판’ 받는 과정을 그렸다. 재판장과 수호천사, 검사가 피숑의 생애를 조목조목 들어 평가하고 그가 과연 천국에 남아 있을 수 있을지, 아니면 다시 태어나야 하는 업보에 놓일지를 두고 설전을 펼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인간>에 이어 두 번째로 시도한 희곡인 <심판>은 작가 특유의 비틀기와 유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곤충이나 동물, 떠돌이 영혼이나 천사 등 타자의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묘미를 보여주었던 화자가 이번에는 천상계의 법정을 무대로 택했다. 지상 세계와는 전혀 다른 규범과 가치 체계가 작동하는 천상 법정에서 주인공 피숑의 생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대목에서 칭송을 받거나, 생각지도 못했던 ‘중대 범죄 혐의’가 들춰지기도 한다. 자신의 생애가 이리저리 비틀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죽어서도 손에 끼었던 반지에 집착하고, 상속세를 받아야 한다며 지상으로 돌아가겠다던 피숑도 점점 현생의 육신을 떠나 ‘천상계에 걸맞은 인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천상 법정에 피고인으로 서기 전까지, 생전 피숑이 판사로 일하며 선과 악을 가려내는 위치에 있었다는 아이러니는 이러한 비틀림을 더욱 유쾌하게 만든다.
<심판>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다른 장편소설들과 비교해 훨씬 압축적으로 쓰였다. 작가 특유의 언어유희도 감초 역할을 해 단숨에 읽힌다. 희곡이지만 피숑과 주변 인물의 대화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희곡 형식에 낯선 이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듯하다.
박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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