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문학동네·2만5000원 옌롄커가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2002년 말은 중국에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이 폭발한 시기였다. 그는 “이 책은 사스와 함께 태어난 작품”이라며 “심지어 나의 글쓰기 자체가 일종의 바이러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고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혔다. <레닌의 키스>가 화제가 되면서 옌롄커는 27년 동안 몸담은 군대에서 쫓겨난다. 한 유명 작가가 이 책을 읽은 뒤 갈기갈기 찢어버리며 ‘옌롄커의 작품을 다시는 읽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러모로 작가에겐 큰 상처이자 대단한 전환점이 된 책이다. 허난 서쪽 바러우산맥 깊은 곳에 자리한 서우훠 마을. 수백년 전부터 대규모 강제 이주를 명령받은 이곳엔 노인이며 여기저기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 부족하지만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아간다. 어느해 여름, 이레 동안 마을에 큰 눈(열설)이 내리고 불편한 몸이나마 양떼처럼 움직이며 주민들은 부지런히 밀 이삭을 줍는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을 구제하겠다면서 관리 류잉췌 현장이 찾아온다. 그는 장애가 있는 주민들이 특별한 재주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되고 난국을 타개하는 방법으로 그들이 참여하는 기예단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돈을 벌어 레닌의 유해를 구입해 와 마을 기념관에 안치하자는 터무니없는 제안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눈에 띄는 인물은 마을의 정신적 지주인 마오즈 할머니. 그는 어머니를 따라 11살 나이에 홍군이 된 인물로 젊은 시절 혁명을 결심하고 강력하게 실천한다. 하지만 대흉년과 문화대혁명 등을 겪으며 이상이 무너지는 상징적 존재다. 반면, 류 현장은 부모에게 버림받은 고아 출신으로 혁명을 신봉하며 야망을 실현하려 한다. 두 사람의 상반된 처지는 곧 중국의 현실을 나타낸다. 독자와 밀고 당기는 씨름을 일삼고 인물들에게 희망을 줬다가 절망을 안기는 옌롄커식 서사가 잘 드러난 작품. 현실의 잔혹함을 냉정하게 묘사하면서도 군데군데 능청스럽게 숨쉴 곳을 열어놓는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