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나의 글쓰기 자체가 일종의 바이러스 아닐까”

등록 2020-08-28 04:59수정 2020-08-28 10:10

레닌의 키스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문학동네·2만5000원

옌롄커가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2002년 말은 중국에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이 폭발한 시기였다. 그는 “이 책은 사스와 함께 태어난 작품”이라며 “심지어 나의 글쓰기 자체가 일종의 바이러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고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혔다. <레닌의 키스>가 화제가 되면서 옌롄커는 27년 동안 몸담은 군대에서 쫓겨난다. 한 유명 작가가 이 책을 읽은 뒤 갈기갈기 찢어버리며 ‘옌롄커의 작품을 다시는 읽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러모로 작가에겐 큰 상처이자 대단한 전환점이 된 책이다.

허난 서쪽 바러우산맥 깊은 곳에 자리한 서우훠 마을. 수백년 전부터 대규모 강제 이주를 명령받은 이곳엔 노인이며 여기저기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 부족하지만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아간다. 어느해 여름, 이레 동안 마을에 큰 눈(열설)이 내리고 불편한 몸이나마 양떼처럼 움직이며 주민들은 부지런히 밀 이삭을 줍는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을 구제하겠다면서 관리 류잉췌 현장이 찾아온다. 그는 장애가 있는 주민들이 특별한 재주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되고 난국을 타개하는 방법으로 그들이 참여하는 기예단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돈을 벌어 레닌의 유해를 구입해 와 마을 기념관에 안치하자는 터무니없는 제안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눈에 띄는 인물은 마을의 정신적 지주인 마오즈 할머니. 그는 어머니를 따라 11살 나이에 홍군이 된 인물로 젊은 시절 혁명을 결심하고 강력하게 실천한다. 하지만 대흉년과 문화대혁명 등을 겪으며 이상이 무너지는 상징적 존재다. 반면, 류 현장은 부모에게 버림받은 고아 출신으로 혁명을 신봉하며 야망을 실현하려 한다. 두 사람의 상반된 처지는 곧 중국의 현실을 나타낸다.

독자와 밀고 당기는 씨름을 일삼고 인물들에게 희망을 줬다가 절망을 안기는 옌롄커식 서사가 잘 드러난 작품. 현실의 잔혹함을 냉정하게 묘사하면서도 군데군데 능청스럽게 숨쉴 곳을 열어놓는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해품달’ 송재림 숨진 채 발견…향년 39 1.

‘해품달’ 송재림 숨진 채 발견…향년 39

연말 ‘로코’에 빠져든다, 연애세포가 깨어난다 2.

연말 ‘로코’에 빠져든다, 연애세포가 깨어난다

OTT 불법 스트리밍으로 거액 챙긴 ‘누누티비’ 운영자, 결국 잡혔다 3.

OTT 불법 스트리밍으로 거액 챙긴 ‘누누티비’ 운영자, 결국 잡혔다

‘미친자’ 양산하는 ‘이친자’…“최종회는 보고픈데 끝나는 건 싫다” 4.

‘미친자’ 양산하는 ‘이친자’…“최종회는 보고픈데 끝나는 건 싫다”

“생수도 없고”…이시영, 아들 업고 4000m 히말라야 등반 5.

“생수도 없고”…이시영, 아들 업고 4000m 히말라야 등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