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공화국
강수돌 지음/세창미디어·1만5000원
경쟁심은 인간의 본성이 아닐지도 모른다. 남아프리카 어느 부족마을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든 생각이다. 오래 전 참여관찰 연구에 나선 한 서구 인류학자가 부족 어린이들에게 놀이를 가르쳤다. 사탕이 든 바구니를 멀리 떨어진 나무에 매달고 달리기를 해서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이 모두 갖는 놀이였다. 그는 어린이들을 쭉 세우고 출발 구호를 외쳤다. 사탕을 독차지하려고 저마다 전력 질주할 거라는 기대는 그러나 곧 깨졌다. 어린이들은 다 같이 손을 잡고 바구니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던 것이다. 그리고 둥글게 앉아 사이좋게 사탕을 나눠 먹었다.
2018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9월 모의평가가 치러진 교실. <한겨레> 자료사진
맨 먼저 바구니에 도착하면 모든 사탕을 먹을 수 있는데 왜 함께 갔냐고 학자가 묻자 어린이들은 대답했다. “우분투, 네가 있어 내가 있다. 다른 애들을 두고 어떻게 혼자서만 행복할 수 있나요?” <경쟁 공화국>을 쓴 강수돌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교수는 공동체 정신을 가리키는 ‘우분투 철학’의 유명한 일화를 소개하며, 경쟁에 벗어나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를 밝혔다. “사회적 약자라 하더라도, 강자가 정한 규칙을 따르는 척하며 그걸 자신의 방식으로 우회하는 것, 이걸 통해 강자를 당혹스럽게 하는 것.”
왜 한국사회는 경쟁을 내면화하게 됐을까. 경쟁의 비밀에 대해 지은이는 ‘선착순 달리기’라는 비유를 쓰며 설명한다. 체육 시간에 학생들은 선생님의 말을 좀체 듣지 않는다. 선생님은 1등부터 3등까지 달리기를 면제해주는 선착순 달리기를 시킨다. 1·2·3등에 들지 않는 4등부터는 계속 달려야 한다. 서너 바퀴를 돈 학생들은 경쟁의 원리에 포섭돼 간다. 이 비유는 자본이 경쟁을 통해 노동을 포섭해가는 상황과 닿아 있다. 상위권에 들고자 죽기 살기로 경쟁하는 일만 계속되면 체제는 유지된다. 간판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돈 많이 주고 알아주는 대기업 정규직으로 입사하고,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려 애쓴다. 그렇게 경쟁하며 자본의 지배력에 포섭돼 간다.
경쟁의 프레임을 벗어나기 위해 지은이가 제시한 대안은 세 단계다. 첫째는 자본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하는 것이다. 둘째는 자본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는 자본을 ‘지양’하는 과정이다. 지은이는 “자본의 지양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며 “1917년 러시아혁명과 소련 사회도, 중국이나 북한, 베트남 등 ‘현실 사회주의’조차 다시 자본주의로 회귀했다”고 밝힌다. 이어 그는 “어렵다고 해서 포기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자본에 갇혀 있다가 범지구적 공멸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경쟁의 승자라도 행복해진다면 자본주의는 그 정당성을 일부 인정받을 수 있을 테다. 그러나 지은이는 “역설적인 것은, 하층부만이 아니라 상층부조차 이 경쟁 구도가 만들어내는 우열 의식으로 인해 인간성 소외가 일어나, 그 내면에서 심한 고통에 시달린다”고 말한다. 조국 전 장관 논란에 관한 논평도 덧붙였다. “조국 전 장관 가족들은 현 교육 시스템의 문제와 모순은 알고 있었겠지만 부모와 연결되는 사람이 있다면 가능한 많이 연결해 주고 싶었을 것”이라며 “어느 부모치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는가”라고. 경쟁 공화국을 극복하자는 주장을 펴는 한편 경쟁에 열렬히 참여하는 욕망도 이해하려는 점이 모순처럼 보인다. 경쟁 공화국을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반증일까.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해서는 진보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