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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회의와 책임, 이것이 지식인의 존엄이다”

등록 2020-08-28 05:00수정 2020-08-28 11:14

중국 소설가 옌롄커 에세이 “속세 살아도 세속적인 글쓰기는 하지 말자”
혁명과 자본이 만나 일으키는 괴이하고 헛된 부조리 폭로하는 까닭 밝혀

침묵과 한숨: 내가 경험한 중국, 문학, 그리고 글쓰기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글항아리·1만8000원

중국 소설가 옌롄커의 글쓰기론이 나왔다. “나는 말하기 위해 멀리 갔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성곽을 빠져나가 울음으로 소식을 알리는 작은 새 같았다.” 서문에서도 밝혔듯 <침묵과 한숨>은 2014년 봄, 중국문화 연구자이자 번역가인 카를로스 로하스 듀크대 교수의 초청으로 듀크대를 비롯해 하버드대, 예일대, 스탠퍼드대, 뉴욕대 등 10여곳의 미국 대학에서 했던 강연 메모를 바탕 삼아 쓴 책이다. 강연과 연설문을 묶었다지만 사실은 그의 생애를 바쳐 쌓아올린 문학론이자 작가론이자 글쓰기론이다.

외국 언론과 만난 자리에서도 자주 최근 중국의 개방적 변화를 언급했지만 낙인과 경계의 삶만은 에두르던 그가, 이번만큼은 작심한 듯 돌직구를 날린다. “나는 끊임없이 쟁론의 대상이 되었고 나의 출판과 발표는 금지되었으며 반평생 동안 시기를 달리하여 일고여덟 권의 책이 나의 모국어의 국가와 독자들을 만날 수 없었다.” 역설적으로 그는 문학이 마주한 어두운 현실 속에서 더욱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lt;침묵과 한숨&gt;에서 옌롄커는 삶의 장엄함과 문학의 숭고함을 고집하며 “속세에서 산다고 해도 세속적인 글쓰기는 하지 말자!”고 거듭 다짐한다. 사진 글항아리 제공
<침묵과 한숨>에서 옌롄커는 삶의 장엄함과 문학의 숭고함을 고집하며 “속세에서 산다고 해도 세속적인 글쓰기는 하지 말자!”고 거듭 다짐한다. 사진 글항아리 제공

1958년 중국 허난성에서 태어난 옌롄커는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던 어린 시절을 거쳐 20살 때인 1978년 군에 입대하고 비슷한 시기에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감성적인 언어로 부조리한 현실을 그린 그의 소설은 ‘괴탄(괴이하고 헛됨) 현실주의’라는 평을 들었다. 문단의 갈채와 비판 속에서 <레닌의 키스>(2004)를 발표한 뒤엔 전환을 맞았다. 반평생 이상 몸담은 군대에서 쫓겨난 것이다. 그 뒤 해방감 속에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2005)를 발표했지만, 혁명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작품의 출판과 유통이 전면 금지되었다. <딩씨 마을의 꿈>(2006) <풍아송>(2008) <사서>(2010) <작렬지>(2013)까지 그의 작품은 모두 중국의 역사와 현실을 깊게 연관시켜 논란을 낳았다. 정작 그 자신은 “현실의 풍부성에 견주면 (내 작품은) 숲과 나무 한 그루, 강과 물 한 사발의 대비”라고 썼다. 이 풍부성이란 역시 부조리하고 덧없는, 혁명과 자본이 만나 일으키는 ‘괴탄의 현실’을 가리키는 것이겠다.

조국에선 문제적 작가이지만 나라 밖에선 저항적 작가로 이름이 높아 한국,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 등 20여개 나라에서 그의 작품을 번역 출간했다.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꼽히는데, 그를 서구 사회에 알린 대표작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이다. 하지만 그는 이 작품이 자신의 창작에서 대단히 중요한 지위에 있지 않다고 밝힌다. 그 대신 독자에게 권하는 소설은 <딩씨 마을의 꿈> <사서>다. 자신은 ‘중국에서 금서가 가장 많고 쟁론의 대상이 가장 많이 되는’ 작가가 아니라 그저 좋은 작가가 되고 싶으며, “독립적 사유를 위한 지식인들의 굴욕과 노력”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침묵하지 않고 말할 뿐이라는 것이다.

옌롄커는 혁명이 자본을 만나 일으킨 비참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주로 그린다. 그는 문학가로서 인류의 곤경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사유하고 말하려고 노력한다. 사진 글항아리 제공
옌롄커는 혁명이 자본을 만나 일으킨 비참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주로 그린다. 그는 문학가로서 인류의 곤경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사유하고 말하려고 노력한다. 사진 글항아리 제공

책의 맨 앞에 실린 2014년 10월 체코 카프카국제문학상 수상연설문에서 옌롄커는 1960년부터 1962년 사이 ‘3년 재해’로 3000만명 이상이 굶어 죽었던 일을 소환한다. 오늘날 집단으로 잊힌 이 참극은 작가 자신에게 무척 강렬한 체험으로 남았다. 여위고 젊은 어머니가 서너 살짜리 아들에게, 먹을 수 있는 흙과 먹으면 죽는 흙을 가려 일러주며 단단히 당부하는 모습은 애처로움을 넘어 처참하기까지 하다. (훗날 이 어머니는 아들이 글 때문에 감옥에 갇힌 꿈을 꾸며 염려하게 된다) 어린아이의 눈 속으로 해가 졌고, 아들은 “장구하고 영원한 어둠”을 잊지 못한다. 60년 뒤, 13억 인구가 의식주를 해결하게 된 나라에서 문학가가 된 그 남자가 끝없이 떠올리는 장면이 굶주림 속 어둠인 까닭이다. 삶의 장엄함과 문학적 숭고함을 고집하며 옌롄커는 “한순간도 중국의 현실과 역사에 대한 대치와 관심을 포기한 적이 없다”고 한다. 자연재해와 문화대혁명뿐 아니라 매혈로 인한 집단 에이즈 감염, 불법 인신매매 탄광 노동, 독이 든 교자, 멜라민 독분유 사건 등 비극적인 역사를 둘러싸고 그는 ‘집단적 기억상실’이 강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래봤자 지난 과거이고, ‘굴기’하는 조국임에도 옌롄커는 왜 굳이 역사적 사건을 놓지 않는 걸까. 그것은 인류의 곤경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사유하는 지식인으로서 책임감 때문이다. “속세에서 산다고 해도 세속적인 글쓰기는 하지 말자!”고 그는 거듭 다짐한다. 혁명이 자본을 만난 결과, 또다시 인류가 어둠과 연결되고 만 것 아닌가. 옌롄커는 “사람들이 따뜻하다고 말할 때 나는 추위와 냉기를 느끼고 사람들이 빛을 말할 때 나는 어둠을 본다”고 말한다. 이와 연결되는 한 일화. 어렸을 때 동네에 시각장애를 가진 노인이 있었는데, 그는 햇볕을 쪼면서 “어두울수록 더 따스한 것 같아!”라고 말하곤 했다. 또 그는 칠흑 같은 어두운 밤에도 사람들이 자신을 피해 다닐 수 있도록 손전등을 갖고 다니며 타인의 길잡이가 되어주었다고 한다. 그가 죽었을 때 마을 사람들은 멀쩡한 손전등 여러개를 관에 넣어주며 그를 애도했다. “나와 나의 글쓰기는 어둠 속에서 손전등을 켜던 그 맹인처럼 어둠 속을 걸으면서 그 유한한 불빛으로 어둠을 비춰 사람들로 하여금 최대한 어둠을 보고서 확실한 목표와 목적을 가지고 빛나거나 피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옌롄커는 한국의 젊은 작가들 가운데 김애란(오른쪽)을 가장 좋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사진은 2019년 11월14일 오전 서울 광화문 대산문화재단 회의실에서 옌롄커와 김애란 작가가 대담에 앞서 자세를 취한 것이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옌롄커는 한국의 젊은 작가들 가운데 김애란(오른쪽)을 가장 좋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사진은 2019년 11월14일 오전 서울 광화문 대산문화재단 회의실에서 옌롄커와 김애란 작가가 대담에 앞서 자세를 취한 것이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혁명과 성(sex)을 상징하는 붉은색과 노란색 금기를 모두 건드리고 위반한 작가로서 그의 진정성을 새삼 확인하게 되는 부분은 어처구니없게도 “매일 한바탕씩 울고 싶다”는 대목에서다. 사실 그의 작품은 상당히 남성 중심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세계의 비참과 모멸의 피해를 형상화할 때 “강간”이란 단어를 가져오거나 “어머니” “열녀”와 “창녀”를 구분하는 태도도 세계적 작가로서 그의 위상이나 핍박에 대해 사유하려는 문학의 감각과도 맞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더욱 자칭 “열혈 남성 작가”인 그가 눈물과 부끄러움을 소상히 털어놓는 데서 일말의 기대를 하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 자신 지난해 11월 한국을 방문해 김애란 소설가와 대담을 하며 뜬금없이 ”한국의 여성 작가들과 ‘화해’”를 거론한 바도 있다.)

이번 책 역시 그의 작품을 다수 옮겨온 ‘친구이자 동지’ 김태성 번역가가 애정을 갖고 우리말로 바꾸었다. 한국어판 출간에도 그의 격려가 크게 작용했다. 김 번역가는 “이 책은 옌롄커의 문학적 반성문, 참회록일 수 있다”고 말했다.

“옌롄커의 책이 금서가 되는 이유는 반체제 작가라기보다는 중국의 아픔과 고통을 너무 많이 썼기 때문입니다. 중국 작가들은 아슬아슬한 섬 안에서 쓰지만, 옌롄커는 그렇지 않거든요. <한겨레>에 실은 코로나19 관련 특별기고에서 밝혔듯 그는 역병의 재난 때 작가가 총소리를 폭죽 소리로 변절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했죠. 그런 그의 발언이 중국에서 거친 비판과 고발의 대상이 되었고, 술김에 저도 ‘언제든 너의 번역가이자 독자로서 맨발로 네 뒤를 따르겠다’고 위로한 적이 있어요. 속으로는 그럴 일 없어야 할 텐데, 생각했지만요. 하하.”

김 번역가를 통해 옌롄커에게 <한겨레> 독자들과 우물쭈물 말을 아끼는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그는 하루 만에 아주 짤막한 답을 보내왔다고 했다.

“회의와 책임, 이것이 모든 사회 지식인들의 존엄이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 [특별기고] 역병의 재난 앞에서 너무나 무력하고 무능한 문학 (<한겨레> 2020년 3월20일치 ‘책&생각’ 7면)

▶▶ [대담] “인물에게 쥐여준 옥수수 몇알, 그것이 어쩌면 삶에 대한 예의” (<한겨레> 2019년 11월15일치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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