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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슬픔과 고통, 슈베르트의 음악이 탄생한 자리

등록 2020-09-11 04:59수정 2020-09-11 16:13

슈베르트 평전

엘리자베스 노먼 맥케이 지음, 이석호 옮김/풍월당·4만8000원

1828년 요제프 텔처가 그린 슈베르트 초상화. 풍월당 제공
1828년 요제프 텔처가 그린 슈베르트 초상화. 풍월당 제공

“나의 작품은 음악에의 이해와 슬픔을 표현한 것입니다. 슬픔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이 세계를 즐겁게 하리라고 생각됩니다. 슬픔은 이해를 돕게 하고 정신을 강하게 합니다.”(슈베르트)

‘가곡의 왕’을 넘어선 전방위적 작곡가,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1797~1828)의 생애를 기록한 <슈베르트 평전>이 나왔다. 1996년 영국에서 처음 출판된 이 책은 슈베르트 연구서와 논문, 그리고 슈베르트 가족과 지인의 증언 등을 바탕으로 그의 삶과 시대를 촘촘히 들여다본 ‘전기적 연구서’로 꼽힌다.

책은 슈베르트가 태어난 1797년 1월31일부터 세상을 떠난 1828년 11월19일까지 길지 않은 31년 생애를 따라 서술된다. 가난했지만 음악을 좋아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자랐던 어린 시절, 빈 소년 합창단 단원으로 활동했던 시기, 시인 빌헬름 뮐러 등 친구들과 함께 모임을 만든 20대 시절, 그리고 매독과 우울증으로 고통받았던 말년 등을 상세히 기록한다.

총 13장으로 이뤄진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6장 ‘두 가지 본성’이다. 지은이는 이 장에서 슈베르트의 이중적 성격을 깊이 있게 분석한다. 지인들의 증언을 보면, 슈베르트는 “빈 특유의 흥과 깊은 우수가 혼재된 이중적 성격”에, “부드러움과 거침, 엉큼함과 솔직함, 붙임성과 비애감”을 갖고 있었다. 지은이는 슈베르트가 삶의 마지막 자락에 남긴 증거들을 모아 그가 ‘순환기분장애’(고양된 기분과 우울감이 교대되는 기분 변화로 인한 인격 장애)를 앓았던 것이 아닌지 추측한다. 1823년 말 매독에 걸린 그는 불면증과 통증에 시달렸고, 순환기분장애는 더욱 심해졌다. 추측이 난무했던 그의 성적 지향에 관해서는 주변 인물들의 상반된 이야기를 종합해 “성인이 된 슈베르트는 아무래도 이성애자로 살았을 확률이 높지 않나”라고 조심스럽게 짐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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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의 제1곡 ‘밤 인사’의 자필 악보. 풍월당 제공

슈베르트의 음악이 만들어진 배경도 충실하게 설명한다. 가곡 작곡의 비중이 높아진 1814년 말 무렵 17살 슈베르트는 아버지의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생활했다. 여유 시간이 많지 않았던 때라 사중주나 교향곡 같은 긴 작품을 쓰기보다는 마음에 드는 시에 한두 시간 정도 짬을 내 후다닥 쓸 수 있는 가곡을 선호했을 것이라고 지은이는 짐작한다. 슈베르트가 친구들과 꾸린 ‘빌둥 서클’에서 토론한 문학 작품에 자극을 받아 동시대 문학, 특히 시에 대한 관심을 넓혀갔다는 점도 가곡 작곡에 힘을 쏟게 된 배경으로 보인다. 열정적인 청년 시절, 슈베르트는 짧은 피아노 독주용 춤곡도 여러 편 썼다.

책은 7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 술술 읽힌다. 그 긴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작곡하는 것 이외에도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걷는 걸 즐기고 친구들과 예술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던, ‘인간 슈베르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그림 풍월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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