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에게
김금희 지음/문학동네·1만4000원
첫 장편 <경애의 마음>에 이어 다시 사람 이름을 제목에 넣은 두번째 장편소설 <복자에게>를 낸 소설가 김금희. “모두에게 끊이지 않고 흐르는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고 ‘작가의 말’에 썼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김금희의 두번째 장편소설 <복자에게>는 그 자체가 한 통의 기다란 편지라 할 수 있다. 발신인은 주인공 이영초롱이고 수신인은 영초롱의 어릴 적 친구인 복자.
소설은 서울에 살던 초등학교 졸업반 영초롱이 제주의 부속섬 고고리의 학교로 전학을 갔던 1999년과 그로부터 20여년 뒤인 현재 시점에 걸쳐 있다. 20여년 전 고고리에서 자신에게 환대와 우정을 베풀었던 복자에게 우연찮게 상처와 아픔을 주었던 일, 그리고 그로부터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 재회한 두 사람이 또 다시 서로에게 상처와 실망을 안긴 채 헤어져야 했던 두 개의 사건이 소설의 축을 이룬다. “십대 내내 고고리에서의 일들은 내 마음을 광폭하게 흔들곤 했다”고 영초롱은 회고하는데, 그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간직한 채 어른이 되어 그것을 갚고자 했던 영초롱은 소설 뒷부분에서 “오랜 시간이 지나 또 같은 자리에 놓인 기분”을 토로하기에 이른다. 그토록 친했던 친구에게 왜 상처를 주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만회하려던 노력이 어쩌다가 허사로 돌아갔는지를 작가는 중심 인물들의 섬세한 마음의 결을 따라가며 서술한다.
영초롱은 사업에 실패한 부모가 고고리섬에서 보건소 의사로 일하는 고모에게 그를 맡기면서 그곳으로 오게 된다. 남동생은 서울의 큰집에 맡기고 자신을 제주로 보내기로 한 부모에게 영초롱은 “전교 일등을 놓친 적 없는 나를 서울에서 교육시켜야 한다”며 자신을 서울에서 교육시키는 데 드는 비용과 나중에 자신이 고액연봉자가 되었을 때 벌어들일 수입을 비교하는 항목을 담은 제안서를 쓸 정도로 맹랑하고 얄망궂다.
그렇다고 영초롱이 어떤 전교 일등들처럼 이기적이고 악의적인 사람인 것은 아니다. 나중에 판사가 된 그는 약자를 향한 동정과 의분으로 법정에서 욕설을 내뱉었다가 징계를 받을 정도로 정의감에 불타는 인물. 어린 시절 그가 복자에게 상처를 입힌 일도 “자주 상처받고 여러 번 실망한 아이가 쉽게 선택하는 타인에 대한 악의”, 그러니까 방어적 적대감의 표출로 이해할 만하다.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재회한 복자가 그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인 것은 그런 이해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이 제주에서 재회했을 때 그들 사이에는 그곳의 한 대형병원 간호사들이 겪은 산업재해성 유산을 둘러싼 소송이 가교처럼 가로 놓인다. 복자가 바로 그 피해를 입은 간호사였다. 배석판사로 사건을 담당하게 된 영초롱은 친구를 위해 자신의 법률 지식과 직위를 사용하려 하지만, 일이 꼬이면서 오히려 복자 쪽에서 재판 회피를 요구하기에 이른다. “초저녁에 외로이 뜬 별처럼 들판에 홀로 서 있는 그 오름에서 나는 말할 수 없는 배반감과 분노, 내가 맡고 있는 이 직분을 함부로 하는 침해 같은 것을 느꼈다. 그건 내가 베풀고 싶었던 선의와 우정이 깊으면 깊을수록 더 세게 나를 찌르는 것이었다.”
물론 이때 그가 느낀 배반감과 분노는 복자의 처지와 심정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당시만 해도 영초롱은 “복자가 나를 믿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마음이 더 아팠다.” 이쯤에서 생각해 보면 이 소설의 제목은 김금희의 첫 장편 <경애의 마음>을 좇아 ‘영초롱의 마음’으로 해도 좋았겠다 싶다. ‘복자에게’라는 편지에 담긴 것이 곧 ‘영초롱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영초롱만이 아니라 그를 비롯한 주요 인물들의 마음의 움직임과 색채가 이 길지 않은 소설을 풍성하고 역동적으로 만든다는 느낌이다.
어린 영초롱을 거두었던 고모는 현명한 어른의 전형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고모는 제주 출신이 아니면서도 제주의 자연과 습속에 어린 힘과 지혜에 달통한 인물로 그려진다. 어른이 된 영초롱에게 그가 보낸 편지에서(소설에는 복자에게 보내는 영초롱의 편지 말고도 편지가 여럿 나온다! 생각해보면 편지야말로 마음의 일에 가장 가까운 것이 아닐지.) 제주 여자들에 관해 쓴 대목은 이 소설이 왜 제주 부속섬 고고리를 배경으로 삼아야 했는지를 알게 한다.
“나는 제주, 하면 일하는 여자들의 세상으로 읽힌다. 울고 설운 일이 있는 여자들이 뚜벅뚜벅 걸어들어가는 무한대의 바다가 있는 세상. 그렇게 매번 세상의 시원을 만졌다가 고개를 들고 물밖으로 나와 깊은 숨을 쉬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다 잘되지 않겠니?”
90년대 초 고모가 다니던 대학에서 벌어진 시국 관련 투신자살이 고모의 삶에 끼친 영향은, 4·3 사건의 흔적과 국정농단, 판사 블랙리스트 파문, 촛불 집회 등에 관한 언급과 함께, 주인공들 삶의 저변을 이루는 사회·역사적 맥락에 눈을 주게 한다. 소설 막바지에는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 역시 등장하는데, 코로나 사태 와중에 프랑스 파리에 가 있던 영초롱이 그곳에서 목격한 한 할머니가 또한 인상적이다. 봉쇄된 아파트의 주민들이 저녁이면 발코니에 나와 멀찍이서 대화를 나누고 의료진들에게 느린 박수를 보내기도 하는데, 그 가운데 휠체어에 탄 한 할머니가 들고 있는 종이에는 이런 문장이 쓰여 있다. “얘들아, 나는 1944년 파리 공습의 생존자란다.”
그렇다. 어떤 상황에서든 중요한 것은 생존이다. 이 할머니는 자신의 생존을 자축하고 기념함으로써 골목의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렇게 해서 모두를 생존자로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이런 깨달음을 담아 “현명한 나의 친구, 복자에게” 보내는 영초롱의 편지로 소설은 마무리되는데, 십대 시절 숱하게 썼지만 부치지 못한 편지들처럼 이 편지 역시 당장은 우체국이나 우체통을 찾지 못할 테지만 결국은 수신인에게 도달하리라는 전망에서 지난 편지들과는 다른 운명을 지닌다 하겠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두번째 장편소설 <복자에게>를 낸 소설가 김금희.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