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낭만주의
칼 슈미트 지음, 조효원 옮김/에디투스·1만7000원
카를 슈미트(1888~1985)는 ‘정치란 적과 친구를 나누는 것’(<정치적인 것의 개념>)이라는 불온한 명제로 유명한 독일의 법학자·정치학자다. 히틀러 집권 뒤 나치당에 가입해 활동한 이력 때문에 위험한 사상가의 대표자로 꼽히기도 한다. 슈미트는 이 정치 이력 탓에 패전 뒤 수감 생활을 하고 공적인 무대에서 물러났지만, 그가 제출한 개념들은 살아남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 주권자의 결단을 강조하는 ‘예외 상태’와 같은 개념은 조르조 아감벤을 비롯한 급진 좌파 일군의 정치적 상상력의 발화에 밑불이 되기도 했다. <정치적 낭만주의>는 슈미트가 1917~1918년에 집필해 이듬해 출간한 청년기 저작이다. 이 책은 출간 당시 빛을 보지 못했지만 이어 펴낸 <독재>(1921), <정치신학>(1922) 같은 저작이 슈미트의 이름을 널리 알린 뒤 1925년 개정판으로 다시 나와 주목을 받았다. 이 책에서 슈미트는 ‘정치적 낭만주의’라는 현상의 본질을 특유의 직관력으로 포착해 당대 독일 현실을 비판한다.
슈미트는 ‘정치적 낭만주의’를 해부하기에 앞서 먼저 이 현상을 낳은 독일 낭만주의 운동을 역사적으로 분석한다. 프리드리히 폰 슐레겔이 제창한 낭만주의는 18세기 말에 등장해 이후 수십 년 동안 유럽 전역에서 맹위를 떨쳤다. 낭만주의 운동은 예술사조에 머물지 않고 정치 운동의 성격도 강하게 띠었는데, 슈미트가 주목하는 것도 이 정치적 낭만주의다. 낭만주의는 그 파장의 범위가 넓고 역사도 길어서 간명하게 성격을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 때로는 모든 낡은 것에 대항해 약동하는 힘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하고, 때로는 현실을 회피해 과거와 먼 곳으로 달아나는, 병적이고 퇴락한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낭만주의가 이렇게 상반된 평가를 받는 것은 이 운동의 역사가 그런 경로를 거쳤기 때문이다. 낭만주의는 탄생 초기에는 프랑스 혁명이 남긴 열기 속에서 혁명적인 것을 찬양했지만, 곧이어 복고주의로 회귀해 반동적인 이념으로 변했고, 그 뒤에도 똑같은 진자운동을 되풀이했다. 도대체 왜 낭만주의는 이렇게 정치적으로 극과 극을 오간 것일까?
슈미트가 여기서 낭만주의의 이런 자기배반적 행보를 해명해주는 열쇳말로 제시하는 것이 ‘기연주의’(occasionalism)라는 말이다. 기연주의는 철학사에서는 ‘기회원인론’이라는 말로 더 알려져 있는데, 그 출발이 된 것은 데카르트의 철학이다. 데카르트는 정신과 육체를 분리해 서로 완전히 다른 실체로 이해했다.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이렇게 분리된 정신과 육체의 연동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낳았다. 가령, 글을 쓰려는 정신의 의지가 어떻게 손을 움직이는가 하는 물음이었다. 철학자 말브랑슈는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신’을 불러들였다. 정신이 의지를 발동할 때마다 신이 개입해 그 의지에 맞춰 신체가 행동하게끔 해준다는 것이다. 절대자가 우리의 모든 행위의 계기이자 원인이 된다는 것, 이것이 기회원인론, 곧 이 책에서 말하는 기연주의다. 어떤 사태의 참된 원인을 찾지 않고 신이라는 제3의 절대자를 끌어들여 해결하는 것이다. 기연주의란 ‘사이비-원인주의’다.
이런 환상적인 기연주의적 사고방식이 낭만주의에서 만발했다. 다만 말브랑슈가 신을 제시한 것과 달리 낭만주의는 ‘주관’ 혹은 ‘자아’를 해결자로 제시했다. 개인의 주관성이 모든 사태를 일으키는 신적인 힘, 세계의 중심이 된 것이다. 이 주체는 낭만주의 예술에서 모든 창조의 원천이 되고 모든 창조물을 주재하는 절대자가 된다. 신이 세상을 만들어내듯 자아는 몽상 속에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런 낭만주의의 ‘주관적 기연주의’가 예술의 영역에서만 나타난다면 미적인 성취로 인정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주관적 낭만주의는 예술을 넘어 정치의 영역에까지 발을 담갔다. 그렇게 하여 탄생한 것이 ‘정치적 낭만주의’라고 슈미트는 말한다. 정치적 낭만주의는 어떤 때는 국가권력을, 어떤 때는 종교권력을 신을 대신하는 지상의 해결자로 제시했다.
슈미트는 여기서 정치적 낭만주의의 대표자로 19세기 초에 활동한 아담 뮐러(1779~1829)를 불러낸다. 하층 시민계급의 아들로 태어난 뮐러는 뛰어난 필력과 달변으로 밑바닥에서부터 일어나 마지막에는 귀족 작위까지 받은 사람이다. 이 책은 뮐러라는 문제적 인간의 생애와 저술을 상세히 살핀다. 뮐러는 괴팅겐대학 시절에 정치적 반항아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머잖아 보수주의로 방향을 틀었다. 프로이센의 수도 베를린으로 간 뒤 그곳에서 봉건적 지배계급에 아부하는 책을 썼으나 주목을 받지 못하자, 다시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서 당시 유럽의 반동적 질서의 중심에 있던 메테르니히의 수족이 된 뒤 출세 가도를 달렸다. 뮐러의 일생은 눈앞의 강력한 힘에 봉사하는 낭만주의의 정치적 변덕을 여실히 보여준다. 자아의 우월성이라는 주관적 환상을 만족시켜 주기만 하면 어떤 정치이념이 됐든 상관하지 않고 추종한 것이다.
뮐러의 이런 행보를 범례로 삼아 슈미트는 정치적 낭만주의의 치명적인 취약점으로 ‘수동성’을 찾아낸다. 낭만주의는 스스로 일관성 있는 이념을 제시해 세상을 적극적으로 바꿔나가는 내적인 힘이 없어, 그때그때 위세를 떨치는 정치 세력에 들러붙는다. 낭만주의자는 상상 속에서는 세계를 창조하는 절대자가 되지만, 현실에서는 더 큰 힘에 무릎 꿇고 그 힘에 봉사하는 무력한 자로 드러난다. 낭만주의의 수동적 성격을 제대로 보여준 사람이 뮐러였다. 그런데도 뮐러는 슈미트 당대에까지 살아남아 ‘낭만주의의 가장 성숙한 정치적 지성’으로 불렸다. 슈미트가 보기에, 뮐러가 이렇게 부당하게 높은 대접을 받는 것은 당대 독일 정치의 병증과 무관하지 않다. 정치적으로 결정해야 할 시점에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토론’과 ‘대화’만 되풀이하는 그 시절 독일의 정치적 무기력증이야말로 낭만주의적 수동성과 다를 바 없다는 진단이다. 결단을 미루며 ‘끝없는 대화’만 되풀이하는 정치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한다는 슈미트의 결단주의 사상이 여기서 얼굴을 내민다. 고명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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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법학자 카를 슈미트.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