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스스로를 위로하려 쓴 글, 대중을 위로하다

등록 2020-09-21 04:59수정 2020-09-21 19:45

[가수들 에세이 열풍]
박진영 ·장기하·혜림
전효성·김호중·양준일
잇단 에세이 뜨거운 반응

가수들은 전달 욕구
위기 빠진 대중은
모르는 사람 이야기보다
호감 스타 말에 더 위로

비대면 문화판 소통수단
진입장벽 낮은 점도 작용
박진영의 <무엇을 위해 살죠?>. 은행나무 제공
박진영의 <무엇을 위해 살죠?>. 은행나무 제공

소년의 인생 목표는 ‘사랑의 완성’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사랑하는 이에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하면서부터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어떤 행복에도 견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사랑이 완성된다면 완전하고 영원한 행복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소년이 믿은 이유다. 꿈을 이루기 위해선 “특별하고 멋진 남자”가 돼야 했다. 그래야만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여자”를 만났을 때, “거절당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년은 자라서 가수, 프로듀서, 제작자로서 성공하고 사랑하는 사람과도 결혼한다. 꿈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이내 시련이 찾아온다. “‘완전하고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주리라고 확신”한 결혼 생활에서 길을 잃으면서다. 여기에 더해 자신이 세운 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의 미국 진출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실패하면서 그는 삶의 근본적인 고민과 마주한다. “난 뭘 위해 살아야 하는 걸까?” “난 왜 태어났을까?” “날 누가, 왜 만든 걸까?”

박진영이 선미와 함께 부른 ‘웬 위 디스코’ 뮤직비디오 화면 갈무리. 제이와이피(JYP)엔터테인먼트 제공
박진영이 선미와 함께 부른 ‘웬 위 디스코’ 뮤직비디오 화면 갈무리. 제이와이피(JYP)엔터테인먼트 제공

가수 박진영이 지난달 펴낸 <무엇을 위해 살죠?>(은행나무)는 유년 시절의 꿈에서 시작해 이런 원초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까지의 여정을 고스란히 담은 책이다. 성공과 실패, 결혼과 이혼 등 우여곡절 속에서 그가 찾은 답은 ‘종교’와 ‘구원’이다. 그는 “이 책이 허무하고, 쓸쓸하고, 외롭고, 불안하고, 두렵고, 우울한 누군가에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삶을 포기하려고 하는 누군가에게 살아야 할 명확한 이유를 줄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최근 에세이를 낸 가수는 박진영뿐만이 아니다. 장기하, 전효성, 아이돌 그룹 원더걸스 출신의 혜림, 양준일, 김호중 등이 잇따라 에세이를 내면서 눈길을 끌고 있다. 바야흐로 가수 에세이 전성시대다.

그동안 연예인들의 책 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최근 사례처럼 가수들의 에세이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 것은 이례적이다. 더욱이 과거에는 연예인들의 책이 대부분 화보 위주거나, 패션, 뷰티, 외국어 학습서 등의 주제를 주로 다뤘다면, 최근 출판되는 책들은 삶에 지친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는 게 특징이다.

장기하의 &lt;상관없는 거 아닌가?&gt;. 문학동네 제공
장기하의 <상관없는 거 아닌가?>. 문학동네 제공

박진영이 자신의 실패 경험과 종교에 대한 철학을 통해 독자를 위로한다면, 지난 9일 <상관없는 거 아닌가?>(문학동네)를 펴낸 장기하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상관없는 거 아닌가?”라는 말로 잔잔한 웃음과 위로를 건넨다. 지난 7월 <나도 내가 처음이라>(스튜디오오드리)를 낸 전효성은 힘든 시기를 보내는 이들에게 “굳이 힘내려 하지 않아도 괜찮다. 모두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라서 서툰 거다”라고 말을 건다. 지난달 나온 혜림의 <여전히 헤엄치는 중이지만>(한겨레출판)에는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이나 관계와 삶에 지쳐 다독임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지지와 응원의 메시지로 가득하다.

원더걸스 출신 혜림의 &lt;여전히 헤엄치는 중이지만&gt;. 한겨레출판 제공
원더걸스 출신 혜림의 <여전히 헤엄치는 중이지만>. 한겨레출판 제공

반응은 뜨겁다. 박진영의 책은 지난달 13일 기준, 온라인 서점 인터파크에서 당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같은 날 교보문고 온라인 모바일 실시간 베스트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 18일 현재, 예스24와 교보문고 집계를 보면, 이 책은 에세이 부문 베스트셀러(월간 기준) 각각 4위와 9위에 올라 있다. 장기하의 책 역시, 이들 서점 에세이 부문(주간 기준)에서 각각 5위와 3위를 기록 중이다. 특히 이들 서점에서 에세이 부문(월간 기준) 1위는 전 매니저와의 수익 배분 문제로 갈등을 겪으며 불법 도박 논란, 전 여자친구 폭행 의혹 등 수많은 구설에 오른 김호중의 <트바로티 김호중>(스튜디오오드리)이다. 지난 2월 출판된 양준일의 에세이 <양준일 메이비: 너와 나의 암호말>(모비딕북스)도 공개되자마자 교보문고 등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이름을 올렸다.

가수들의 에세이 열풍은 가수와 대중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지식이나 경험 등을 알리려는 ‘전달 욕구’가 있기 마련인데, 연예인들은 일반인보다 이런 욕구가 더 큰 사람들”이라며 “방송이나 노래를 통해서는 자신의 일부분만 드러낼 수 있지만, 책은 인생 전체를 전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많이 활용하는 것 같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코로나19 영향 등으로 사회·경제적으로 위기에 빠진 대중도 전문가나 교수 등 자신들이 잘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보다는 호감을 가진 스타의 말에 더욱 위로를 받는다”며 “다른 한편으로는 스타의 방송 외적인 모습도 엿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책을 많이 찾는다”고 덧붙였다.

전효성의 &lt;나도 내가 처음이라&gt;. 스튜디오오드리 제공
전효성의 <나도 내가 처음이라>. 스튜디오오드리 제공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비대면 문화가 자리하면서 책이 연예인들의 소통 수단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태희 예스24 에세이 담당 상품기획자(MD)는 “방송이나 음악으로 보여주기 힘든 가수들의 개인적인 모습이나 생각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책이 팬들과 소통하는 또 하나의 수단이 된 것 같다”며 “음반, 굿즈(기념품)처럼 팬들의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데다, 아무래도 저자가 연예인이다 보니 방송이나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책 홍보가 자연스럽게 이뤄져 팬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층까지 책을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에세이가 소설이나 전문 서적 등 다른 분야에 견줘 진입 장벽이 낮다는 점도 가수들이 에세이를 선호하는 이유로 꼽힌다. 진영균 교보문고 과장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쓰면 되기 때문에 연예인들이 다른 장르의 책보다 에세이 출간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중요한 것은 책에 담긴 콘텐츠의 수준”이라며 “이름 있는 연예인이 낸 책이라고 모두 인기를 끄는 것은 아니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책에는 독자들이 반응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송대관 발인…태진아 추도사에서 “3일 동안 밥 대신 술” 눈물 1.

송대관 발인…태진아 추도사에서 “3일 동안 밥 대신 술” 눈물

노안이 오면 책을 읽으세요 2.

노안이 오면 책을 읽으세요

16살 박윤재, 로잔 발레콩쿠르 우승…한국 남자 무용수 최초 3.

16살 박윤재, 로잔 발레콩쿠르 우승…한국 남자 무용수 최초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4.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괴물이 되어서야 묻는다, 지금 내 모습을 사랑해 줄 수는 없냐고 5.

괴물이 되어서야 묻는다, 지금 내 모습을 사랑해 줄 수는 없냐고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