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도전 철학의 응전
박이문 지음. 생각의나무 펴냄. 2만2000원
박이문 지음. 생각의나무 펴냄. 2만2000원
생명 연구비의 1%만 써도
제3세계 많은 생명 살릴텐데
연구 성공한들 부자만 쓸텐데
제3세계 많은 생명 살릴텐데
연구 성공한들 부자만 쓸텐데
일부러 때맞춰 기획한 책은 아니지만 황우석 교수 사태와 맞물려 최근 출간된 두 권의 책이 눈길을 끈다. 모두 생명과학(생명공학)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인간 중심 윤리에서 생명 중심 윤리로’ 시각의 전환을 요청하는 책들이다.
하나는 철학자가 과학에 접근하며 쓴 논증의 글이고, 다른 하나는 과학자가 불교·철학에 접근하며 쓴 자유로운 에세이다. 진행 방향은 정반대이지만 생명 조작마저 가능해진 생명과학 시대에 대한 성찰의 지점에서 마주친다.
박이문 미국 시몬스대학 명예교수 겸 연세대 특별초빙교수가 지은 <과학의 도전 철학의 응전>(생각의나무 펴냄)은 첨단 생명공학이 일으킨 우리 생명·윤리관의 변화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따지는 차분한 철학적 논증이다. 그가 써온 글들 가운데 과학과 철학의 쟁점에 관한 글을 주로 모아 ‘과학의 발달과 생명윤리’ ‘과학과 인식’ ‘기호와 진리’라는 세 묶음으로 편집했다. 여기에서 가장 큰 화두는 물론 생명이다.
생명공학의 도전에 응하려는 철학자는 생명·인간복제를 단순히 끔찍한 일로만 받아들이는 심리적 충격을 넘어서는 여러 철학적 추론들을 동원해 생명이야말로 인간 존엄성의 근원이자 “모든 가치의 원천의 원천”이라는 결론을 제시한다. 생명을 ‘도구’로 바라보고 그 존엄성을 인정하지 않는 한 인간의 존엄성도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박 교수가 얻은 결론들은 ‘생태주의’로 모아지는 듯하다. 이성 앞에서 신과 종교의 권위를 굴복시켰듯이, 다윈 진화론이나 생명과학, 우주론 등 과학의 발견들은 자기 울타리에 갇힌 인간 중심의 태도도 역시 “하나의 환상”임을 드러냈으며, 게다가 그것은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의 근원으로 파악해냈다. 그렇기에 인간중심주의는 해체되고 있으며 “이제 우리는 낡고 잘못된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생태학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세계관으로 대체해야 한다.”(61쪽)
다른 책, <생명과학과 선>(미토스 펴냄)은 지은이 우희종 서울대 교수(수의학)가 불교신도이자 과학자로서 바라보는 ‘과학, 특히 생명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단상들이다. 불교의 분위기가 그윽한 종교적 에세이이자 과학을 하는 불교신도가 말하는 과학 에세이다. 그는 장기이식용 무균 복제돼지 연구와 생명복제 연구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해왔는데, 이 책에선 그 비판의 과학적 근거들을 읽을 수 있다.
그가 생명복제 연구를 ‘부자 과학’이라며 비판한 대목은 인상적이다. “연구비의 1%만 사용해도 제3세계에서 굶어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려낼 수 있음을 생각할 때, 생명복제 연구란 희귀병 치료가 시급한 부자 나라의 연구이며, …이런 연구가 성공한다 한들 특정 유전자를 조작하여 힘세고 머리 좋은 자식을 복제하려는 부자들에게 상업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기에 결국 복제 연구라는 것은 부자를 대상으로 한 높은 부가가치 창출의 연구이기도 하다.”(252쪽)
그의 비판적 시선은 생명과학이 중립을 지키기 힘든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로, 또 과학이 뒷받침하는 자본주의와 인간의 욕망으로 향하며, 불교적 생명의 패러다임을 대안으로 제안한다. 그건 자본주의의 틀에 갇힌 생명과 생태의 구속을 벗어야 한다는 거고, 과학자는 생명의 ‘인드라망’(만물은 모두 연결돼 있다는 연기적 세계관을 의미)을 바라보라는 거다.
두 책 모두가 생명 조작 시대를 마주하는 윤리의 대안을 불교에서 찾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생명과학과 선>뿐만 아니라 박 교수의 <과학의 도전…> 역시 인간중심주의를 대체할 생명존중의 문명이 불교를 닮았음을 내비친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생명과학과 선
우희종 지음. 미토스 펴냄. 9800원
우희종 지음. 미토스 펴냄. 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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