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 지음/북튜브·1만원 이번 추석은 코로나19로 대규모 귀성 인파를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가족과 만날 일이 없다면 이런 때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북튜브 출판사의 ‘가족 특강’ 시리즈는 ‘이 시대에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기에 좋은 책들이다. 공부공동체 ‘감이당’에서 행한 특강 6편 가운데 <기생충과 가족, 핵가족의 붕괴에 대한 유쾌한 묵시록>(고미숙), <루쉰과 가족, 가족을 둘러싼 분투>(이희경), <안티오이디푸스와 가족, 나는 아이가 아니다>(신근영), <사기와 가족, 고대 중국의 낯선 가족 이야기>(문성환)가 먼저 나왔다. 이 시리즈 가운데 고미숙의 <기생충과 가족>과 이희경의 <루쉰과 가족>은 묘한 대비를 이루는 책이다. ‘핵가족 해체’라는 시대의 흐름을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책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스스로 ‘독거노인’이라고 칭하는 고미숙은 핵가족 해체를 ‘유쾌한 묵시록’이라고 보면서 다소 경쾌하게 그리고 있는 데 반해, 다 큰 아들과 딸을 둔 이희경은 핵가족이 붕괴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좀더 어두운 시선으로 진단하고 있다. 고미숙이 강의의 재료로 삼은 것은 영화 <기생충>(사진)이다. 지은이는 이 영화가 ‘핵가족 붕괴의 끝장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말한다. 봉준호 감독이 애초 이 영화 제목을 ‘데칼코마니’로 하려 했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에는 쌍둥이처럼 닮은 가족이 등장한다. 한쪽은 저택에 사는 부유층이고 다른 한쪽은 반지하에 사는 하층민이다. 그런데 이 두 가족은 모두 엄마·아빠와 아들·딸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근대 핵가족이다. 주인집 가정부로 있던 문광과 그 저택 지하실에 숨어 사는 남편도 겉으로는 2인 가족이지만, 남편이 우유병을 빠는 아이 노릇도 함께 한다는 점에서 변형된 핵가족이라고 할 수 있다. 지은이는 이 가족들의 삶에 ‘외부’가 없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한다. 폐쇄회로 안에 갇힌 것처럼 가족 안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 이 가족들인데, 이 ‘핵’들이 서로를 부정하면서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 이 영화의 파국이다. 지은이는 정서적 집착과 경제적 이익의 포로 상태에서 벗어나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베이스캠프로 바꾸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희경의 <루쉰과 가족>은 중국 근대 작가 루쉰의 삶과 소설을 중심에 두고 근대 핵가족의 형성과 붕괴를 이야기한다. 주제는 고미숙의 강연과 다르지 않지만, 이희경은 루쉰의 현실주의적 인식에 더 강조점을 둔다. 가령, 루쉰의 <행복한 가정>이라는 소설은 같은 제목으로 소설을 쓰려는 작가를 등장시켜 이 작가의 구상을 따라가면서 이상적인 핵가족의 풍경을 묘사하지만, 현실의 작가에게는 그런 이상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스위트 홈 판타지’는 깨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는 풍자적 작품이다. 입센의 작품 <인형의 집>에 대한 루쉰의 평가도 냉정하다. 집을 떠난 주인공 노라에게 남은 것은 도로 집으로 돌아가거나 계속 가다가 굶어죽는 것, 두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스위트 홈도 환상이라고 물리치고 무작정 집을 나가는 것도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 루쉰이다. 지은이는 핵가족 붕괴 시대에 아이와 노인을 어떻게 돌볼 것이냐는 돌봄 노동 문제, 연애와 결혼이 어려워짐으로써 커져가는 정서적 고립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리에게 현실의 숙제로 남아 있다면서, 핵가족을 대신할 다양한 형태의 생활 공동체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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