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아키아, 이야기가 남았다
이동진 지음/위즈덤하우스·4만3000원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위즈덤하우스 제공
“모으고 모으고 또 모아도, 여전히 목마르구나.”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수집광이다. 지금까지 책 2만권, 음반 1만장, 디브이디(DVD) 5천장, 안경·인형·우표 등 수집품 5천점을 모았다. 지난해 8월 그는 박물관 수준의 방대한 수집품을 보관할 ‘파이아키아’라는 공간(198㎡, 60평대)을 마련했다. 파이아키아는 오디세우스의 마지막 여행지였던 고대 그리스의 섬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작업실이자 서재, 아카이브 공간인 이곳은 그에게 “나만의 동굴이면서 세상을 향한 창문”이다.
<파이아키아, 이야기가 남았다>는 지은이가 “세상을 사랑했던 증거”와 “삶이 얼마나 신비로운지에 대한 고백”을 담은 에세이 겸 사진집이다. 파이아키아는 사물의 집이자 이야기의 방이다. 이동진은 창작자의 특징을 담을 수 있는 독특한 오브제를 미리 준비하는 열성을 보였는데 그 행위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된다.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을 만날 땐 모조 아카데미 트로피와 함께 10㎏이 넘는 수석까지 짊어지고 가 사인을 받았고 영화 <올드보이>의 박찬욱 감독을 만나는 자리엔 8천원짜리 장도리에 사인을 해달라 부탁했다.
다독가인 그가 가장 많이 모은 것은 역시 책이다. 처음에는 파이아키아의 구조나 모양을 책처럼 디자인해볼까 생각했다고 한다. 결국 그가 고심 끝에 주문한 건 높이 24㎝, 깊이 16.5㎝를 정확하게 지킨 책장이었다. “책에 둘러싸여 살고 싶다”는 그는 이곳에 아늑한 독서 공간도 마련했다.
빨간색을 좋아하는 그가 특별히 만든 ‘레드 존’도 소개한다. 이곳에는 책, 음반과 각종 수집품까지 모두 빨간 것들만 있다. 빨간색 표지의 책 <에로틱 세계사> <러브, 섹스 그리고 비극> <위험한 자본주의> <레닌> <이기적 유전자> <복수의 심리학> 등이 있고 빨간 선글라스, 빨간 안경테를 올려놓는 빨간 부엉이 거치대, 빨간 고양이 인형, 빨간색 영화포스터, 팬이 선물한 빨간색 천마리 학도 진열돼 있다. 이 책의 투명 케이스도 빨간색이다. 이 책 또한 파이아키아 ‘레드 존’에 들어가게 될 듯싶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사진 위즈덤하우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