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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이쪽과 저쪽, 안과 밖…선긋기는 불통의 시작

등록 2020-10-09 04:59수정 2020-10-09 11:11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전정숙 글·고정순 그림/어린이아현·1만3000원

삶은 ‘선 긋기’의 연속이다. 땅따먹기를 할 때도, 피구나 축구를 할 때도 선을 그어야 놀이가 시작된다. ‘관계자 외 출입 금지’, ‘외부인 출입금지’라고 쓰인 출입문이나 울타리는 주변 곳곳에 존재한다. 여당과 야당, 정규직과 비정규직, 장애인과 비장애인 등 사회 곳곳을 ‘보이지 않는 선’이 가른다. 하물며 우리는 군사분계선으로 갈라진 땅에 살고 있다. 계속되는 선 긋기를 통해 경계의 이쪽과 저쪽, 안과 밖이 나뉜다.

그림책 <들어갈 수 없습니다!>는 경계의 이쪽과 저쪽에 있는 이들의 얼굴을 비추는 책이다. 안과 밖의 풍경을 스케치하며 인간의 삶을 좌우하는 선 긋기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어떤 선은 필요하고, 어떤 선은 누군가를 배제한다. 위험한 물질이 보관된 공간의 출입을 막는 선은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 사고·범죄 현장처럼 질서가 필요한 곳에서도 경계는 중요하다. 개인의 사적인 공간에도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된다. 하지만 군사분계선 같은 경계는 사람과 사람을 가르고 소통을 막는다. ‘출입금지’라는 말은 밖에 있는 이들 모두를 ‘외부인’으로 규정하고, ‘조금은 다른’ 소수를 배제할 수 있다.

책은 다양한 경계를 조망하며 읽는 이들에게 어떤 선 긋기는 왜 필요한지, 또 어떤 선 긋기는 우리 삶을 어떻게 옥죄는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되는 경계, 정해진 시간에만 들어갈 수 있는 경계, 안전 수칙을 지켜야 들어갈 수 있는 경계, 위험해서 돌아가야 하는 경계…. 책이 보여주는 무수한 경계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능력도 한뼘 자랄 듯싶다.

책은 경계의 안과 밖을 비추는 데만 머무르지는 않는다. 저자는 “툭, 경계를 넘어서는 한걸음이 큰 힘이 될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사람 사이의 소통을 막는, 누군가를 배제하는 경계는 언젠가는 허물어야 하니까.

이승준 <한겨레21>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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