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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도마 위 물고기와 눈 맞춰 본 적 있나요?

등록 2020-10-09 04:59수정 2020-10-09 11:10

만타와 물고기

엄선 글·그림/현암주니어·1만7000원

도마 위에 놓인 물고기에서 어른은 때로 자기 자신을 본다. 한때는 힘차게 푸른 바다를 헤엄쳤으나 이제는 맥없이 늘어진 무기력한 모습. <만타와 물고기> 속 주인공은 그 반대다. 만타로 ‘추정되는’(주인공의 이름이 불리는 장면이 없어 제목으로 주인공의 이름을 유추해야 한다) 어린 아이는 물고기의 초점 없는 눈동자에서 푸른 바다를 그리워하는 애타는 마음을 읽어내고, 소리 없는 아가미에서 “한때 바다가 불러주었던 노래”를 듣는다. 그리고 그 길로 집을 나선다. 물고기를 바다로 돌려보내기 위해서.

길에는 방해꾼이 많다. 동네 고양이가 “굶주린 사자처럼 순식간에 눈빛이 달라지더니 덥석 꼬리를 물”고, 아이는 “물에 젖은 빨래를 털듯 이리저리 정신없이 흔들리고 나서야” 겨우 고양이의 손아귀를 빠져나온다. “호기심술”이 덕지덕지 붙은 덩치 큰 아이 셋이 물고기를 공처럼 이리저리 던지며 아이의 속을 태우고, 어시장의 수조 속 물고기들은 “죽은 물고기 대신 나를 데려가라”며 음침하게 유혹한다.

ⓒ엄선, 현암주니어 제공
ⓒ엄선, 현암주니어 제공

우여곡절 끝에 바다에 도착했지만 아이를 반기는 건 수십 마리의 갈매기 떼. 순식간에 아이에게 몰려든 갈매기들은 눈 깜짝할 새 물고기의 눈과, 아가미와, 빛나던 비늘과 통통히 차오른 살점을 먹어 치운다. 뼈만 남아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이는’ 물고기를 바다로 돌려보내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이는 잠시 고민하지만 끝내 뼛조각을 파도에 실어 보낸다. 그러자 아이에 귀에 노랫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공감이 교감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차분하게 그려낸 책이다. 여느 동화책과 달리 책 모양이 물고기처럼 가로로 길고, 색감도 쨍하지 않고 차분하다. 4살 이상.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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