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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그를 향한 비난과 찬사 모두가 열광적이었다

등록 2020-10-09 05:00수정 2020-10-09 17:42

독일 비평가 다니엘 슈라이버의 손택 사후 최초 평전
시대별로 그의 삶과 역사성 간결하고 엄정하게 담아

수전 손택: 영혼과 매혹

다니엘 슈라이버 지음, 한재호 옮김/글항아리·2만5000원

그는 하나의 현상이었다. 매혹과 권위의 여성 지식인, 영화감독, 연극연출가, 비평가, 노골적이고 정치적인 작가였던 수전 손택은 일생 동안 비난과 찬사를 한몸에 받았지만 누구도 그의 강력한 아우라를 부인하지는 못했다. 독일 비평가 다니엘 슈라이버가 쓴 <수전 손택: 영혼과 매혹>은 열렬한 탐미적 활동과 맹렬한 글쓰기로 ‘예술적이고도 정치적인 삶’을 치열하게 수행하고 떠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았다. 1933년 1월16일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수전 리 로젠블랫의 부모는 기업가 정신을 지닌 젊고 부유한 사람들이었다. 어머니는 아름다웠지만 냉정한 알코올중독자였고 중국에서 사업을 하던 유대계 아버지는 그가 5살 때 세상을 떠났다. 재혼한 어머니의 남편 성을 따라 손택이라는 성을 얻은 수전은 두운이 맞는 이름에서 지적이고 세련된 맛이 난다며 좋아했다고 한다.

십대 시절 이미 열렬한 탐미주의자로서 그는 문학에 기갈이 들었고 프랑스와 일본 영화를 각별히 사랑했다. 16살 때 대학에 입학했고 17살에 결혼해서 19살에 아들 데이비드 리프를 낳았다. 1950년대 유학길에 올라 파리에서 공부하고 다양한 성적 욕망도 실험했다. 작가, 저항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한 그는 아들을 데리고 이혼한 뒤 전남편에게 돈을 받지 않으며 먹고 사느라 전력을 다했다.

뉴욕의 서재에서, 1979년. 글항아리 제공
뉴욕의 서재에서, 1979년. 글항아리 제공

그는 할 말이 있어 글을 쓴다기보다, 할 말을 찾아내기 위해 글쓰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물론 야심과 허영심, 그리고 자학 사이를 오갔다. 자신의 초고를 가리켜 “방부 처리된, 인쇄된 시체”라며 “거의 열번은 고치고 또 고치는” 성향을 보였다. 1963년 첫 소설 <은인>을 출간한 그는 이후 ‘수전 손택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특히 에세이에서 진가를 발휘해 초기작 <해석에 반대한다>(1966)는 초판 8000부가 금세 동났을 정도였다. 손택은 예술과 철학 분야의 논문에 정통하면서도 학술적 글쓰기 방식과 거리를 두었다. 컬럼비아대 철학과 강사로 일했지만 학계의 선택을 받지 못한 그는 “학문적 삶이 우리 세대 최고의 작가들을 파괴”한다고 짐짓 강조했는데, 지은이는 이 말에서 “상처받은 허영심”을 읽어낸다. 물론 스스로 갱신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손택의 지향과도 무관하지 않았겠지만, “동시대 최고의 작가 중 한 사람”이던 그가 강단에 설 수 없었던 이유는 “엄청나게 가부장적인 대학 세계에 속한 여성이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파리에서, 1979년 수전 손택. 글항아리 제공
파리에서, 1979년 수전 손택. 글항아리 제공

1964년 12월10일 <타임>에 그의 기사가 실리면서 손택은 별안간 “선포됐다”(<뉴욕 타임스> 비평가 엘리엇 프리몬트 스미스). 그만큼 부당한 평가들도 일생 따라다녔는데, “미국 문단의 다크 레이디” “문학계의 핀업걸” “지성계의 말채찍” “문화적 조현병 왕국의 요정공주” 따위로 일컬어졌던 것이다. 손택의 지인들도 하나같이 소설보다 에세이를 권했다는 대목에서는 성별화된 영역으로서 문단의 배타성까지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분명 “남성 동료들 사이에 만연해 있던 여성혐오”였다.

연극 연출, 영화감독, 사회운동가로도 활동한 손택은 인기를 좇는 동시에 거부했다. 연인이던 배우 워런 비티와 뉴욕 거리를 걷다 신호등 앞에 서 있으면 사람들이 주위로 몰려드는 것을 즐겼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 징병제 반대 시위를 하던 중 1967년 12월 체포되어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마저 “세심하게 기획된 체포 사건”이라고 지은이는 밝힌다. 그는 점점 급진적인 정치운동을 불편하게 여기게 되었는데, “(신좌파의) 유별난 반지성주의 때문이었다”고 한다.

손택은 페미니즘을 선명하게 지지했고 남성 주류 지식인 사회 속에서 외로이 싸우는 자신을 “백인이 가득한 방 안의 검둥이”라 부르기도 했지만 1970년대 공공 담론을 이끌던 페미니스트 그룹에 결코 속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영화감독 겸 사진가 레니 리펜슈탈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끝없이 미학을 추구한 손택은 ‘나치의 협력자’로 일컬어지는 그의 영화를 걸작으로 상찬했지만 시인 에이드리언 리치를 비롯한 급진 페미니스트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이에 손택은 리치를 향해 “1960년대의 유치한 좌파”라 공격하고, 페미니즘 운동의 이념과 지적 평범함은 “파시즘의 뿌리”라며 자신의 지적 우월감을 과시하고 맹공을 퍼부었다. 이런 공격적 태도는 엄청난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급진적 지식인으로서 종지부를 찍었다. 이후 1982년 다시 한번 좌파들을 도발하는 연설로 격렬한 항의를 받았지만 부정적 평판조차 그의 아우라를 더하는 효과를 낳는다.

유방암 치료중에 출간한 책 <사진에 관하여>(1977)는 극찬을 받았고 25년 뒤 전쟁 사진에 관한 걸작 에세이 <타인의 고통>(2003)으로 이어진다. 손택은 투병의 결기를 보이며 1978년 가을 <은유로서의 질병>이라는 또 하나의 기념비적 질병문화사를 출간한다. 1993년 사라예보에서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했으며 1998년 두번째 암 진단 이후에도 무한한 투지로 글을 써내려갔지만 결국 쓰러지고 만다.

1993년. 글항아리 제공
1993년. 글항아리 제공

수많은 그의 사진은 “지적인 주체와 대상화된 아름다운 여성 이미지의 공생”으로 소비된 측면이 크다. 마지막 연인인 사진가 애니 리버비츠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의 모든 모습을 찍어 공개해 윤리적 논란을 빚기도 했다. 하여, 사진뿐 아니라 어린시절 일기까지 모조리 공개된 이 마당에 더 새로울 것이 있겠느냐는 예측을 뒤집고 이 책은 섬세하면서도 철저하게 그의 삶과 당시 뉴욕 지성·예술의 지형도를 교차시키면서 뜨거운 지성사를 펼쳐놓는다.

신랄하고 냉철한 평전으로서 역할에 충실한 이 책은 예술 비평의 새로운 문을 연 손택의 창조적인 성취에 관한 설명에서만큼은 야박한 느낌을 준다. 뒤로 갈수록 인물과 작가의 ‘대화’가 사라지고 ‘대결’만 강하게 떠올라 그에 관한 평가가 과연 공정한 것인지 의구심을 떨치기 힘들다. 2019년 나온 전기작가 벤저민 모서의 <수전 손택: 삶과 일>도 발간 당시 미국에서 비슷한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수전 손택 평전의 결정판’으로 불리는 모서의 책은 2020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출판사 글항아리는 “지금 번역중인 이 책은 영어로만 8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라 한국어판 출간 예정일을 지금으로서는 정확하게 특정하기 어렵지만 두권 모두 손택의 삶과 시대를 소개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보스니아의 사라예보 청년극단에서 사뮈엘 베케트의 &lt;고도를 기다리며&gt;를 연출하는 장면. 1993년. 글항아리 제공
보스니아의 사라예보 청년극단에서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하는 장면. 1993년. 글항아리 제공

요하네스버그에서 네이딘 고디머와 함께, 2004년. 글항아리 제공
요하네스버그에서 네이딘 고디머와 함께, 2004년. 글항아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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