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책거리
1924년생 이이효재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여러 이름을 가졌습니다. 아버지 이약신 목사의 성을 따른 이효재, 어머니 이옥경의 성을 함께 쓴 이이효재, 그리고 ‘도서관할머니’로 지내던 시절엔 아이들에게 ‘효재’로 불렸습니다.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와 이 땅에 본격적인 한국 가족연구를 선보였던 그는 가부장제 직계가족은 민중이 오랫동안 유지해온 가족의 지배적 형태와 달랐다고 보았고, 가족관계의 민주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1997년, 그는 진해로 가 마을공동체 운동을 시작합니다. 그의 아이디어로 시민들이 힘을 합쳐 유치하고 건축가 정기용이 설계한 ‘진해 기적의 도서관’이 2003년 문을 열었던 것이죠. 그가 운영위원장을 맡아 일할 때 아이들은 “효재! 내 친구 효재 어딨어요?”라고 두리번거렸습니다. 노교수는 웃으며 아이들의 ‘독후감’을 들어주었고요. 당시 관장이었던 이종화 창원시의회 의원은 말했습니다. “도서관이라는 마을공동체에서만큼은 성역할을 구분짓지 말자, 여기서 아이들이 평등하게 자라는 체험을 해야 진정한 민주주의를 체득할 수 있다고 내내 강조하셨어요. 여성들이 권리를 잃었을 땐 끙끙 앓지 말고 시위를 해야 한다고도 하셨고요.”
작년 박정희 작가가 쓴 <이이효재: 대한민국 여성 운동의 살아 있는 역사> 마지막 부분에서 이이효재 교수는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젊은 여성들이 사고에서 더 자유로워지고 선택을 즐기며 살아나가길 권한다. 자신을 사랑하며 그 사랑으로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 뿌리를 내리면서도 인류의 한 구성원으로서 품위 있는 삶을 영위해나갔으면 한다.”
가족 관계의 민주화나 여성 인권 증진에 대한 시대적 요구를 외면하고 ‘낙태죄’ 처벌을 고수하면서 퇴행하는 최근 정부 입법을 보며, 훈장만 드릴 게 아니라 그의 뜻을 되새기는 일이 먼저가 아닐까 하여 적어보았습니다.
이유진 책지성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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