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고 자라서 자라도 내가 되는 이야기

오은 시인 첫 청소년 시집…‘나는 오늘’ 등 40편 수록
자아정체성을 찾아가는 십대의 마음을 섬세하게 표현

청소년 시집 <마음의 일>을 펴낸 오은 시인. 창비교육 제공

마음의 일

오은 지음/창비교육·8500원

“상상할 때마다/ 자라는 이야기/ 자라나는 이야기// 자라서 내가 되는 이야기/ 자라도 내가 되는 이야기”(‘자라는 이야기’)

오은 시인의 첫 청소년 시집 <마음의 일>이 나왔다. ‘나는 오늘’, ‘졸업’, ‘냄비’, ‘흘리지 마라’ 등 시 40편에 자아정체성을 찾아가는 청소년기에 느끼는 실존적 불안, 상처 등 마음의 변화를 섬세한 언어로 담았다.

시집은 ‘나는 오늘’로 시작해 ‘나는 오늘’로 끝난다. 제목이 같은 두 시에는 “금이 간 채로 울”기도 하고 “쓰다듬어 줄 사람이 절실”한 오늘을 꿋꿋이 살아가는 ‘나’가 있다. 그렇게 매일 흔들리며 자라는 중인 ‘나’들에게 보내는 위로와 응원이 시에 담겨 있다. “나는 오늘 불행해// 그럼에도// 나는 오늘 살아가// 나는 오늘 피어나/ 나는 오늘 나야// 내내 나일 거야”

오 시인의 특기인 유쾌하고 기발한 언어 유희도 시 곳곳에서 빛난다. 특히 이번에는 같은 어간에 다른 연결 어미를 만들어 말맛과 의미를 달라지게 했다. 이를테면 ‘자라는 이야기’에서는 자라다를 “자라는” “자라서” “자라도”로 다양하게 바꾸고, ‘장마’에서는 “없었다” “없는데” “없어서”를 한 연에 층층이 배치하는 식이다. 반복과 변주를 섞어가는 방식도 눈에 띈다. “뻘뻘 흐르고 있어서/ 펑펑 흐르고 있어서”(‘흘리지 마라’), “언제 한번 영화 보는 일처럼/ 언제 한번 놀러가는 일처럼” “쪼끔이 쪼금이 되고/ 쪼금이 조끔이 되고/ 조끔이 조금이 되는 놀라운 말”(‘힘내, 라는 말’).

청소년의 시선으로 본 어른들의 위선적인 삶을 비꼬기도 한다. “어른이 되면 매일같이 거짓말을 한대// 어떤 거짓말? 언제 한번 밥 먹자/ 언제 한번 어울리자/ 어울린다는 말을 아직도 써? 진짜 안 어울린다/ (…) / 매일같이 거짓말을 하는 아이가 자라/ 매일같이 거짓말을 하는 어른이 된다/ 끔찍하다”(‘언제 한번’). 그런 어른들이 만든 ‘입시 지옥’에서 숨을 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딴청, 딴마음, 딴생각이다. “딴청을 피우면 안 된다/ 딴마음을 가지면 안 된다/ 어른들은 말씀하시지만// 딴에는/ 딴이 우리를 꿈꾸게 한다고/ 우리를 각기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고”(‘딴’).

오 시인은 5일 <한겨레>와 전화통화에서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미래가 불투명해 보였던 나의 청소년 시절의 마음을 떠올리며 쓴 시”라며 “청소년뿐 아니라 부모들도 함께 읽으며 나를 찾아가는 삶에 대해 이야기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동갑내기 친구인 만화가 재수 작가와 함께 만든 <마음의 일-오은&재수의 그림 시집>을 11월에 선보일 예정이다.

허윤희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