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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남아 있는 고구려 산성들 사라질까봐 절박한 심정이죠”

등록 2020-10-11 18:47수정 2020-10-12 00:04

【짬】 중국 사업가 출신 역사 저술가 원종선씨

지난 5년 동안 중국에 있는 고구려 산성 170곳을 답사한 원종선 ㈜하이코리아 중국부문 총경리.                                 강성만 선임기자
지난 5년 동안 중국에 있는 고구려 산성 170곳을 답사한 원종선 ㈜하이코리아 중국부문 총경리. 강성만 선임기자
2005년부터 중국에서 상주하며 무역 업무를 하고 있는 원종선(65) ㈜하이코리아 중국부문 총경리가 고구려 성 답사에 나선 때가 2014년이었다. 베이징과 항저우를 1794km 물길로 이은 ‘경항 대운하’ 답사기인 <중국운하 대장정> 원고를 탈고한 바로 뒤였다. 이 책을 쓰며 수나라 양제(569~618)가 대운하 건설에 집착한 데는 고구려 정복 의도가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된 그는 이런 궁금증을 품게 되었단다. 고구려는 어떻게 대운하까지 만들어 동원한 113만 수나라 대군의 침공을 막아낼 수 있었을까? 고구려 성 답사를 시작한 것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다.

그는 지난 5년 동안 중국 동북3성에 산재한 고구려 성 170곳을 답사했다. 이 중 73개와 85개 성 답사기를 2년 전 출간한 <요동 고구려 산성을 가다>(이하 통나무)와 최근 펴낸 <고구려의 핵심 산성을 가다>에 각각 담았다. “중국에 고구려 성이 220개 정도 있어요. 남은 50곳까지 가보고 세번째 책으로, 고구려 성 답사기를 마무리해야죠.” 지난 7일 서울 동작구 총신대 교정에서 만난 저자의 말이다.

<요동 고구려 산성을 가다>(2018) 표지
<요동 고구려 산성을 가다>(2018) 표지
“고구려 성 답사를 언제 마무리할 지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달렸어요. 작년 11월이 마지막 답사였죠. 코로나가 터진 뒤로는 사무실이 있는 다롄도 못 가고 있어요.”

그는 중국 상주 첫 4년은 경항 대운하의 남쪽 끝 항저우에서, 그 뒤로 5년은 운하의 북쪽 끝인 베이징에서 살았다. 2014년에는 고구려 성 답사를 위해 랴오닝성 다롄으로 아예 사무실을 옮겼다. “다롄 주변에 비사성을 비롯해 고구려 성이 많아요. 제가 장기 거래처에서 원자재를 확보하는 일을 하고 있어, 사무실 위치가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가족도 한국에 있어 사무실을 쉽게 옮길 수 있었죠.”

그가 고구려 성 답사에 나선 것은 수 양제나 당 태종의 대군을 물리친 고구려 힘의 원천이 바로 고구려 산성이라는 생각에서다. “고구려라는 나라 이름도 성을 뜻하는 고구려 말인 ‘구루’에서 나왔어요.” 그가 펴낸 두 권의 고구려 성 답사기에 각각 서문을 쓴 도올 김용옥 교수는 “고구려는 산성의 연합네트워크로 이뤄진 대제국이었다”고 썼다.

<고구려의 핵심 산성을 가다>(2020) 표지
<고구려의 핵심 산성을 가다>(2020) 표지
그는 고구려 성 답사기 2권 격인 최근작에서 645년 당 태종의 공격에 맞서 고구려를 지킨 안시성과 주변 21개 성들의 상세한 위치와 형태는 물론 전투 관련 전설과 민담을 기록하는 데 특히 공을 들였다. “재작년 6개월 동안 안시성 주변 성들(평지성 3곳, 산성 18곳)을 틈이 날 때마다 둘러 보았어요. 당 대군이 요동성을 함락한 게 5월 17일입니다. 그런데 요동성에서 불과 60km 떨어진 안시성 앞에 나타난 날이 6월 20일이에요. 왜 60km 전진에 한 달 이상 걸렸는지, 그 답을 찾고 싶었어요.”

산성을 둘러본 뒤 의문이 풀렸단다. “(당 군대의 진격이 늦춰진 것은) 요동성과 안시성 사이 고구려 성들 때문이었죠. 이 성들을 직접 확인하고 전투 관련 민담도 들으면서 그런 생각이 굳어졌어요. 아무리 많은 대군도 산성 공격은 힘들어요. 산에 오르다 지치죠. 이수난공(수비는 쉽고 공격은 어렵다)이 바로 산성입니다. 산성과 산성이 연합하면 그 힘을 몇 배로 발휘할 수 있고요. 고구려가 당 태종의 군대와 맞서 이긴 힘은 바로 산성의 포국(전체 배치)에서 나왔죠. 당 군이 바로 전진했다가는 배후에서 공격받을 수도 있고 보급로도 차단될 수 있어 백암성이나 개모성 등 도중에 있는 성들을 치다 당 군대가 입은 전력의 손실이 컸어요.”

원종선 작가가 현지 답사 등을 통해 추정한 645년 당 태종 군대의 고구려 요동성과 안시성 사이의 이동 경로.                                  통나무 제공
원종선 작가가 현지 답사 등을 통해 추정한 645년 당 태종 군대의 고구려 요동성과 안시성 사이의 이동 경로. 통나무 제공
자신보다 더 많이 고구려 성을 본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한 저자는 책에 학술보고서라고 해도 될 만큼 세밀하게 답사한 각 성의 현황과 유래를 담았다. 사진은 물론 현지 답사를 토대로 추정한 각 성의 원래 모습도 직접 그렸다. 이렇게 상세히 기록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고구려를 알려주고 싶어서”라고 했다. “우리는 역사 시간에 고구려를 수박 겉핥기로 배워요. 저도 세밀하게 배우지 못했죠. 전해 내려오는 고구려 역사서가 부족한 탓도 있죠.” 덧붙였다. “고구려 유적으로 고분이나 벽화가 있지만 이는 도읍지에 있는 지배계층의 역사입니다. 하지만 고구려 강역 전체에 흩어져 있는 성은 백성을 동원해 쌓은 민의 역사이죠. 전쟁이 나면 고구려 백성은 산 아래 농사짓고 있는 것을 다 불태우고 먹을 것만 가지고 산성에 모여들어 군대와 함께 싸웠죠. 그게 고구려 역사입니다. 성은 고구려의 실체이죠. 이 실체가 사라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어요.”

지난 5년간 동북3성일대 170개 확인
2018년 이어 최근 두번째 답사기 내


“중국 백만대군 물리친 힘의 원천”
나머지 50개까지 보고 기록할 계획

2005년부터 중국 근무…‘대운하’ 저술도
“겉핥기로 배운 우리 역사 정확하게”

그가 지금 이 순간의 고구려 성을 온전히 기록하자고 맘먹은 데는 언제 이 성들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이란다. “200개가 넘는 고구려 성 중에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중국 국가급 문화재)로 지정된 곳은 비사성과 환도산성 등 10개가 안 됩니다. 성급이나 시급 보호를 받는 성은 잘 보존이 되지 않아요. 답사하며 훼손된 성을 많이 봤어요. 다롄에서 선양 가는 국도변에 있는 마권자산산성을 보니 주민들이 성의 돌로 계단식 과수원 밭을 만들었더군요. 돌을 담장으로 쓰는 곳도 많아요. 산성 가장 높은 곳에 이동통신탑을 세운 곳도 있고요.”

고구려 연통산산성의 성문이다. “1500년 이상 끄떡없이 지켜온 성문을 보면서 하나의 조각품을 대하는 듯한 마음이었죠.”(원종선 작가)       통나무 제공
고구려 연통산산성의 성문이다. “1500년 이상 끄떡없이 지켜온 성문을 보면서 하나의 조각품을 대하는 듯한 마음이었죠.”(원종선 작가) 통나무 제공
답사 중 가장 기쁜 순간을 묻는 질문에 그는 “산을 헤매다 성벽을 만날 때”라고 했다. 그 때는 “세상을 다 얻은 듯한 환희를 느낀”단다. 답사 전에 성이 위치한 현에서 나온 역사지리서나 역사잡지, 서적 등 관련 자료를 훑어보며 만반의 준비를 하지만 현지에서 성벽을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단다. “처음에는 여러 산 가운데 어디에 성이 있는지 찾기 매우 어려웠어요. 그럴 때는 먼저 70대 이상 현지인을 수소문합니다. 젊은이들은 대개 ‘고구려 산성이라니, 무슨 이야기냐’는 반응이지만 어르신들은 ‘아 그거 까오리(고려) 산성’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까오리는 당신네 선조 아니냐, 당신네와 관련 있지 않느냐’고 하죠. 중국이 동북공정(2002~2007년)으로 고구려를 자기들 역사라고 했지만 백성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거죠. 그러면 어르신에게 같이 올라가자고 부탁합니다. 같이 오르면서 전해 오는 이야기나 성벽이 훼손된 사연도 들을 수 있어요. 지금은 산세를 보면 대략 성이 어디쯤 있을지 80~90%는 압니다. 노하우를 터득했죠.”

그는 고구려 성 답사에는 중국인 친구들의 도움이 컸다는 말도 했다. “지린성을 보면 각 현들이 동북공정 이전인 80년대 중반에 일제히 역사지리서를 발간했어요. 알고 지내는 중국 친구들이 이런 자료와 1960~90년대에 나온 여러 역사 전문 잡지들을 고서점에서 구해 줬어요. 답사에 큰 도움이 됩니다.”

고구려는 저자에게 어떤 의미일까? “우리의 고향이죠. 우리 역사는 대륙에서 시작해 한반도로 이동했어요. 고구려는 대제국이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고구려를 잊고 살았어요. 식민사관 때문에 우리 역사를 한반도에만 한정했죠. 일본과 중국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요. 그렇다고 고구려 땅을 되찾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건 가능하지도 않고요. 하지만 역사를 정확히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죠.”

지난 답사로 얻은 학술적 성과가 있는지 궁금했다. “중국이나 한국 학자들이 고구려 산성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10여개의 산성을 새로 찾았어요. 당나라 시절 산성이었다거나 고구려와 당 군이 거기서 싸웠다는 주민 증언을 토대로 제 나름대로 추정한 거죠. 제 생각이 100% 맞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전문연구자들이 고구려 성을 새로 발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원종선 작가가 가장 아름다운 고구려 산성 중 하나로 꼽은 백암성 북벽 모습이다. ㄷ자 형으로 돌출된 치가 원형에 가깝게 남아있는 산성이다.     원종선 작가 제공
원종선 작가가 가장 아름다운 고구려 산성 중 하나로 꼽은 백암성 북벽 모습이다. ㄷ자 형으로 돌출된 치가 원형에 가깝게 남아있는 산성이다. 원종선 작가 제공
직접 눈으로 확인한 170개 고구려 성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이 어딘지 물었다. “다롄 인근에 있는 성산산성은 원형이 그대로 남은 게 많아요. 미학적으로 괜찮아요. 당 태종이 요동성 전투를 치르고 그 다음에 공격한 백암산성은 ㄷ자 모양으로 돌출된 성벽 구조물인 치가 아름답고 온전하게 남아 있어요. 당시 치열했던 전투 상황을 떠올릴 수 있죠.”

계획은? “고구려 영토가 가장 넓었을 때 그 강역이 어디까지였는지 추적해 보고 싶어요. 보통 제국의 영토를 이야기할 때 직접 지배, 간접 지배, 영향권으로 나눠 보잖아요. 영토가 가장 넓었던 장수왕 시절에 고구려 영향권이 어디까지였는지 알아보고 싶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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