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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본드 지음, 홍경탁 옮김/어크로스·1만6800원 절대 길을 잃을 수 없는 시대다. 지도 앱을 켜고 내비게이션의 음성을 따라가면 못 찾을 장소는 더 이상 없다. 그러나 이 “지리적 확실성”이 결코 공짜는 아니다. 인류의 조상 호모 사피엔스가 수십만 년 전부터 계발시켜온 위치 감각, 탐험 능력을 내줄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길 잃은 사피엔스를 위한 뇌과학>은 인류가 길을 찾아온 역사를 돌아보고, 길을 찾는 과정에서 인간의 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살피며, 우리가 고유의 탐험 능력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종합적으로 일러주는 책이다. 영국 저널리스트 마이클 본드는 뇌과학, 행동과학, 인류학, 심리학을 종횡무진 누비며 ‘남녀의 길 찾기 능력’ ‘치매 환자의 직진 본능’ 같은 다양한 질문에 답한다. 지은이는 “정교한 사냥술과 추위 적응력을 갖춰 이동할 필요가 없던 네안데르탈인과 달리, 호모사피엔스는 24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까지 이동해 교류했고, 이를 통해 획득한 ‘사회성’이 뇌 진화를 촉진한 덕분에 최종 승리자가 되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사피엔스에게 트로피를 안겼던 길 찾기 능력은 빠르게 퇴화하는 중이다. “1960년대에 성장한 할머니는 혼자서 3∼4킬로미터를 걸어 친구를 만났던 반면, 열 살 된 손자는 100미터 거리의 친구 집에 갈” 정도로 3세대 만에 인간의 행동반경이 30분의 1로 감소했다는 것이다. 그런 우리에게 필요한 건 ‘유희적 길 잃기’다. 지은이는 사용자가 익숙한 길을 벗어나도록 지령을 보내는 ‘세렌디피티 앱’ 등 대안을 소개하면서 독자의 ‘경로 이탈’을 종용한다. 갈 때는 지피에스(GPS)를 켜고, 돌아올 땐 꺼두는 쉬운 방법도 있다. “길을 잃는 방법을 모르면 파멸의 길로 가게 된다”는 리베카 솔닛의 경고가 섬뜩하게 다가오는 책이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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