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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기술이 우리 행성을 구원한다지만…

등록 2020-10-23 04:59수정 2020-10-23 09:22

‘제2의 기계시대’ 공저자 앤드루 맥아피 신작…지구착취 정점 찍었다 주장
기술발전과 자본주의가 인간과 자연상태 개선할 것이란 ‘낙관론’에 논란도

포스트 피크 거대한 역전의 시작: 지구 착취의 정점, 그 이후

앤드루 맥아피 지음, 이한음 옮김/청림출판·1만8000원

“마침내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 행성, 지구를 더 가볍게 딛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 나머지는 그저 시간문제일 뿐이다.” (서문 첫 문장)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슬론경영대학원 부교수이자 디지털비즈니스센터 수석연구원인 앤드루 맥아피는 정보경제학계의 ‘스타’다. 경제학자들은 맥아피의 공저 <제2의 기계시대>(2014)를 “향후 수십 년에 걸친 동향을 예측하는 데 있어서 <21세기 자본>만큼 중요한 책”이라고 상찬했다. (<애프터 피케티>, 2017) ‘기술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는 낙관론을 선보인 맥아피는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한 세계화, 똑똑한 기계들이 가져다줄 이익을 높이 사며 ‘기하급수적 성장’을 확신했지만 그의 예측은 빗나가고 말았다. 생각지도 못한 코로나 사태로 미국 등 선진국들이 역성장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지털 자본에 의한 수익이 빠르게 증가함에도 몇몇 사람들만 혜택의 대부분을 가져가 불평등이 심화할 것이라는 그의 예상만큼은 적중했다. 이 시대 대중적인 정보경제학자 가운데 가장 눈길을 모은 저술가로서 그가 펴낼 책에 대한 기대감 또한 꾸준히 높여 왔다.

2014년 9월 하와이 옥수수 농장에서 몬샌토 직원이 옥수수 위에 수분 주머니를 놓고 있다. 정보경제학자 앤드루 맥아피는 환경을 위해 원자력과 유전자변형농산물을 더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AP 연합뉴스
2014년 9월 하와이 옥수수 농장에서 몬샌토 직원이 옥수수 위에 수분 주머니를 놓고 있다. 정보경제학자 앤드루 맥아피는 환경을 위해 원자력과 유전자변형농산물을 더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AP 연합뉴스

관심 속에 발간된 새 책 <포스트 피크 거대한 역전의 시작>에서 맥아피는 미국과 다른 부유한 국가들이 ‘지구 착취의 정점’, 곧 자원 소비량의 정점을 찍었다고 주장한다. 인류 역사는 이미 그 이후 단계에 들어섰고, 우리는 마침내 ‘덜 쓰고 더 많이 얻는’(이 책의 원제는 ‘MORE FROM LESS’다) 흐름에 올라탔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기술 발전이 인류를 번영하게 하며, 그 덕에 인간은 옛날보다 더 많이 소비하고 있지만 지구 자원을 절약하게 되었다고 그는 설명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전과 다른 소비의 ‘탈물질화’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기술 발전, 자본주의, 대중의 인식, 반응하는 정부를 ‘낙관주의의 네 기수’라고 일컬으면서 이 네 가지가 톱니처럼 맞물려 돌아갈 때 인간의 조건과 자연 상태를 둘 다 개선할 수 있다고 본다. 또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환경을 돌보는 핵심요소가 될 것이라며 자본주의와 과학기술 발전이 지구의 나쁜 상태를 개선할 것이라는 주장을 박력 있게 펼친다. 그러면서도 지은이는 이 책을 보고 거부감을 느끼는 독자가 적지 않을 것이라 보았다. 자본주의 옹호자는 탄소세와 동물교역을 막는 국가간 규제에 찬성하지 않을 테고 진보주의자는 원자력과 유전자변형농산물(지엠오·GMO)을 더 써야 한다는 자신의 생각에 반기를 들 것이라는 얘기다.

논란 있는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우선 쟁점은 원자력과 지엠오다. 원자력은 생각보다 훨씬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라고 그는 주장하는데, 한국에서 2017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핵발전소 공사 재개를 권고한 것도 사례로 등장한다. 다국적 종자·농약 기업 몬샌토(모기업 독일 바이엘)의 주력상품인 제초제 ‘라운드업’은 주성분이 글리포세이트인데, 지은이는 독성 논란이 있었던 이 물질과 지엠오의 안전성도 이미 확실하게 증명되었다고 말한다. 단지 이런 현안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정부 반응이 과학 및 증거와 너무 동떨어진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2016년 3월13일 오전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배를 타고 고리원자력발전소 신고리 3·4호기 앞에 상륙, 신고리 5·6호기 추가 건설 계획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울주/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016년 3월13일 오전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배를 타고 고리원자력발전소 신고리 3·4호기 앞에 상륙, 신고리 5·6호기 추가 건설 계획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울주/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이 책의 주장이 기대고 있는 곳은 역시나 과학기술 자본주의와 기술 낙관론이다. ‘팩트주의’를 강조하거나 인류가 그래도 예전보다 훨씬 진보했다는 주장을 펴는 대목에서는 한스 로슬링 등이 쓴 <팩트풀니스>,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가 자동 연상되거니와, 책에도 역시 언급된다. 지은이는 대중이 과학기술의 발전과 이미 증명된 사실을 외면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척, 윤리적인 척하면서 효과도 없는 기업 비난에 열을 올린다며 무지몽매함을 탓한다. ‘많은 엘리트 집단과 출판물이 부정성은 진지함과 엄밀함의 증표로, 낙관론과 긍정성은 소박하고 제대로 모른다는 뜻으로 사용한다’며 불만까지 터트린다.

딱히 진보주의자나 보수주의자가 아니더라도 도발적인 그의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건 위험해 보이니, 균형감 있는 독서를 위해서는 이 책의 반대편에 선 사람들의 주장도 함께 읽을 필요가 있겠다. 냉동 증기선이 등장한 산업혁명 덕에 더 많은 대중이 바나나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롭 던의 <바나나 제국의 몰락>이 떠오른다. 기업적 식량생산 시스템 때문에 수십가지 품종이던 바나나는 단 하나로 표준화했고 병원체에 절멸당할 위기에 처해 있음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의 발전 덕에 인간이 자연 단백질을 이해하고, 새로운 단백질을 만드는 데까지 이르렀다는 설명은 아마 콩고기 등을 가리키는 것일 텐데 이 점은 과학자 출신의 농업정책가이자 환경운동가 반다나 시바의 말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오늘부터의 세계>에서 그는 “실리콘밸리의 가장 큰 투자처가 실험실 음식과 가짜 음식”이라며 비판한다. 글리포세이트에 맞선 세계 시민들의 법정투쟁을 다룬 르포르타주 <에코 사이드>도 함께 봄 직하다.

물론 지은이는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난방과 에어컨을 끄고, 단열제품을 쓰며 운전을 적게 하고 비행기를 적게 타자고도 제안한다. 특정 기업의 독식에 반대하고 공정무역 커피 생산 예를 들며 농가에 도움이 되는 기업의 책임감 있는 사업방식도 강조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기업에 친화적이며 실리콘밸리 산업을 지지한다는 측면에서 그는 선명한 입장을 가진 지식생산자다. 책을 읽으며 저술과 독서야말로 엄청난 정치적 행위임을 실감하게 된다. 암울하고 부정적인 디스토피아적 예견이 넘치는 미래 담론 가운데 조금이나마 안도감을 선사한다는 측면에서 다양한 선택지를 맛보려는 독서인들의 선택을 받을 법도 하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캐나다 밴쿠버 도심의 홀푸즈마켓 매장에는 진열대 곳곳에 ‘논지엠오’(NON-GMO) 표시가 붙어 있다. &lt;한겨레&gt; 자료사진
캐나다 밴쿠버 도심의 홀푸즈마켓 매장에는 진열대 곳곳에 ‘논지엠오’(NON-GMO) 표시가 붙어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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