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 이야기
김솔 지음/민음사·1만4000원
김솔(
사진)의 소설 <부다페스트 이야기>는 ‘장편소설’로 소개되었지만 그보다는 연작소설에 더 가까워 보인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한 국제학교에 일일교사로 초청된 열다섯 직업인의 강연을 뼈대로 삼은 이 소설의 앞머리에는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 한 대목이 제사(題詞)로 인용되었고, 동료 작가 최정화는 이 작품이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떠오르게 한다고 ‘추천의 말’에 썼다. 장편다운 긴 호흡과 서사의 깊이보다는 비슷한 계열의 이야기들이 수평적으로 나열되는 형식은 연작소설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부다페스트의 유명 관광지인 어부의 요새 근처에 자리 잡은 세인트버나드 국제학교에서는 매년 9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 인터내셔널 데이 행사를 열며, 주요 인사들이 일일교사로 참여해 학생들에게 자신의 직업적 경험을 들려주는 특별수업이 그 행사의 일환으로 마련된다. 책에는 군인, 요리사, 의사, 엔지니어, 패션 디자이너 등 직업인들의 강연록이 실려 있는데, 강연록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 강연록을 앞뒤로 감싸고 있는 설명문이다. 부다페스트의 한 공립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익명의 집필자는 일일교사들의 위선과 탐욕을 고발하며 “자의적 가감 없이 진실만을 정확하게 기록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이 기록을 남긴다고 밝힌다.
일일 교사 프로그램은 전문 직업인들 사이에서 자신을 홍보할 기회로 여겨져 매우 인기가 높다. 직업인들은 어린 학생들에게 자신이 종사하는 직업의 세계를 설명하고 그 안에서 자신이 거둔 시행착오와 성취를 소개한다. 설명은 하나같이 거룩하고 소개의 말은 겸손의 외피 아래에 자부와 허세를 감추고 있다. 소설 속 이야기 집필자는 직업인들이 제 입으로 밝힌 업적의 어두운 이면을 신랄하게 까발리며 강연자를 ‘고발’한다. 가령 군인은 자신과 같은 직업을 가진 이들이 의사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살린다고, 그것도 “한 마을 또는 한 국가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 전체를 살린다”고 말한 뒤, 자신이 군인으로서 강제력을 행사한 것을 두고는 “공공선을 위해 최소한의 질서와 상식을 주입하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라고 눙치려 한다. 그러나 이야기 집필자는 “그가 코소보에서 평화 유지군 임무를 마치고 모국으로 귀국한 이듬해 이웃나라와의 전쟁에 참가하여 민간인들을 무참하게 학살했다는 사실”과 “최근 부다페스트 외곽에서 로마니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을 때 나토군 장교라는 신분을 숨긴 채 민병대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로마니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는 말로 그의 위선을 고발하는 식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민음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