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부패의 세계사
김정수 지음/가지·1만7500원
<반부패의 세계사>를 쓴 김정수씨는 “반부패는 현재의 부패뿐 아니라 미래의 부패에 대한 예방과 처방인 동시에 역동적인 실천”이라고 말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부패는 위기의 순간에 번성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틈타 미국에선 공무원들이 긴급구호품을 가로채고 브라질에선 한 국회의원이 코로나 대응 예산을 다른 곳으로 빼돌리는 데 가담하는 등 뉴스가 나오고 있다. 반부패 비영리단체인 국제투명성기구는, 전 세계 보건의료 분야의 연간 예산 약 7조5000억달러(8504조원) 중에서 부패로 인한 손실이 매년 약 5000억달러(566조원)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반부패의 세계사>는 고대에서부터 현대까지 뇌물, 횡령 등 부패에 대항해 싸워온 ‘반부패’ 활동의 흐름과 역사를 톺아본다. 2003년 부패 방지의 중요성을 강조한 유엔반부패협약이 체결되면서 국제 이슈로 떠오른 반부패를 다각적 관점에서 살펴본 해설서인 셈이다. 부패는 ‘공적 권력의 사적 이익을 위한 남용’을 일컫는다. 이 정의는 18세기 서유럽의 근대화 이후 오늘날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지은이는 이 부패의 정의에 대해 “이익과 이윤이라는 경제적 측면을 강조하는 반면, 개인과 체제의 탈선과 타락이라는 윤리적 측면은 무시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부패란 단지 이익과 영리 추구를 위한 개인의 잘못된 행태나 비리, 규칙 위반에 그치지 않는 윤리적 문제로서 서로 주고받거나 수혜자와 피해자가 있는 상호관계를 동반할 뿐만 아니라 전염성이 있는 사회문제임을 간과한 것이다.”
부패의 역사는 얼마나 오래됐을까. 1997년 네덜란드의 한 고고학팀은 시리아 라카 지역에서 기원전 13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점토판 150개를 발굴했다. 이 점토판에는 아시리아 왕자를 비롯한 정부 고위관료들이 뇌물을 받았다는 기록이 새겨져 있다. 가장 오래된 부패의 기록인 셈이다. 그런가 하면 이보다 앞서는 반부패의 기록도 있다. 1800년대 말 프랑스의 한 고고학팀이 바그다드 동남쪽에 있는 나시리야 지역에서 발굴한, 기원전 24세기의 점토판에는 부패한 정부를 몰아낸 혁명가 우루카기나에 대한 기록이 담겨 있다. 이것은 인간이 얼마나 오래전부터 부패에 맞서왔는지를 이야기한다.
지은이는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 핵심적 가치가 부패를 방지하는 데 효과적인 통치장치였다”고 한다. 그 핵심가치는 시민들 간의 협력, 정치권력의 순환과 책임 공유, 권력 견제이다. 민주주의에 비판적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도 부패를 억제하는 데는 군주정보다 민주정이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정치학>에서 “다수는 소수에 비해 쉽게 부패하지 않는다. 그것은 많은 양의 물이 적은 양의 물보다 쉽게 부패하지 않는 것과 같다”라고 했다.
책에서는 시민들의 직접적인 반부패 활동도 비중 있게 다룬다. 그 대표 사례로 2016~2017년 박근혜 정부 퇴진을 위한 촛불집회를 손꼽는다. “헌법 위에 군림하며 누구도 처벌할 수 없게 된 권력에 맞서 헌법적 주권을 행사하고 이를 막힌 공간에서의 교육이 아니라 거리의 국민 행동으로 실천해낸 반부패 운동”의 표본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부패는 목을 쳐도 다시 새로운 목이 자라나는 고대 그리스신화의 괴물 히드라 같은 것이라고 지은이는 경고한다. “반부패의 세계사가 보여주듯 한번 성취된 제도와 역량은 항구적으로 지속되지 않으며, 끊임없는 경계와 각성을 필요로 한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