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자 지음/아시아·9500원 김해자의 시집 <해피랜드>에는 생사를 넘나드는 시인 자신의 투병 체험이 짙게 배어 있다. 지난해 연명치료를 거절한다는 사전 의향서를 써 두고 위험한 수술을 받았던 시인이 입원 기간과 퇴원 뒤 몸을 추스르면서 쓴 시들이 책에 묶였다. “이 가는 소리 같기도 했다/ 톱니에 뼈가 갈리는 소리도 같았다/ 부딪치며 바퀴가 삐거덕거리며 굉음을 내기도 했다// 자기공명 기계 MRI,/ 뚜껑까지 닫힌 관 속에서 세계가 내지르는/ 모든 소리들이 차례차례 재생되는 듯했다”(‘자기공명’ 부분) 정밀검사를 위해 들어간 기계가 시인에게는 관으로 인식된다. 완벽하게 폐쇄된 그 안에서 시인은 세계가 내는 온갖 소리 또는 비명을 듣는다. 자석의 작용과 성질을 뜻하는 ‘자기’를 ‘자기’(自己)로 새겨 들으며 “세계가 아픈 건 나 때문 아닌가”(‘시인노트’) 자책한다. 체온을 재고 병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던 시인은 “지구의 체온을 생각했다”. “열대우림이 태워지”고 “캘리포니아가 불타고 호주가 불타”며 “나무와 풀이 불타고 코알라가 불타고 (…) 죄 없는 캥거루가 몸부림치”(‘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는 동안-코로나 4’)는 현실이 그를 더 아프게 한다.

김해자 시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