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문학동네·1만6000원
퓰리처상 수상작 <올리브 키터리지>(2008)의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그로부터 11년 뒤에 내놓은 속편 <다시, 올리브>가 번역 출간되었다. ⓒ Leonardo Cendamo
올리브 키터리지가 돌아왔다. 까칠하고 자기중심적이며 괴팍할 정도로 솔직한 올리브가 죽음을 앞둔 노인이 되어 다시 독자를 찾아왔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 <올리브 키터리지>의 속편인 <다시, 올리브> 이야기다.
미국에서 2008년에 출간되어 이듬해 퓰리처상을 받은 <올리브 키터리지>는 뉴잉글랜드 메인주의 바닷가 마을 크로스비에 사는 중년 여성 올리브 키터리지를 중심에 놓고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곁들인 연작소설이다. 중학교 수학 교사인 올리브가 약사인 남편 헨리와 함께 외아들 크리스토퍼를 키우고 결혼시키고 남편과 사별하는 25년 세월이 13개 단편에 담겨 흘러간다.
전작이 나온 지 11년 만인 지난해에 나온 속편 <다시, 올리브>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13개 단편으로 이루어졌다. 그 사이 주인공 올리브는 나이가 더 들어, 칠십대 중반에서 팔십대 중반에 이르는 노년기의 10여년이 속편의 배경을 이룬다. “나이는 더 들었지만 그렇다고 더 현명해지지는 않았다”는 메리 홉킨의 노래 ‘지나간 날들’(Those Were the Days)의 가사 일부이지만, <다시, 올리브>에서 다시 만난 올리브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늙은 올리브는 상대적으로 젊었던 시절과 마찬가지로 까탈스럽고 고집스러우며 때로는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속편에서, 남편을 여의고 홀몸이 된 올리브는 역시 상처한 잭 케니슨과 재혼하는데, 어느 날 잭이 올리브에게 하는 말이 이 은퇴한 수학 교사의 사람됨을 알게 한다.
“맙소사, 올리브, 당신은 정말 까다로운 여자예요. 더럽게 까다로운 여자. 젠장, 그런데도 난 당신을 사랑해. 그러니 괜찮으면 올리브, 나하고 있을 땐 조금만 덜 올리브가 되면 좋겠어요. 그게 다른 사람들하고 있을 땐 조금 더 올리브가 된다는 걸 의미하더라도. 내가 당신을 사랑하니까, 그리고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올리브는 ‘올리브다움’ 또는 ‘올리브스러움’이라 표현할 만큼 강력한 성격적 특징을 지니고 있고 그것이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마저 질리게 할 정도로 부정적이고 배타적인 에너지를 내뿜는다는 뜻이겠다. 그러나 올리브가 남들에게 이유 없이 까탈스럽고 적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는 겉만 번지르르한 외교적 언사에 서투르며 자신이 느끼고 생각한 바를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올리브는 속물을 혐오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하는 것만큼이나 타인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싫어한다. 번역가 정영목이 ‘혐오스러운 매력’이라 표현한(<한겨레> 2020년 9월5일치 19면) 올리브의 성격적 특징이 대체로 이러하다.
올리브의 까칠한 성격을 보여주는 장면과 표현은 소설 전편에 차고 넘칠 정도다. “정말로 참기 힘들었다”, “너무나 지쳤다”, “싫어졌다”, “마음에 들지 않아”, “아주 불쾌했다” 등등, 등등. 그렇지만 <다시, 올리브>에서 독자가 확인해야 하는 것이 올리브의 이런 성격적 특징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노년의 육체적 쇠락과 정신적 고독, 야금야금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 그리고 노년에도 누그러지지 않는 가족 및 인간 관계의 어려움에 대처하는 올리브와 주변 사람들을 통해 삶에 대해, 인간과 세계에 대해 교훈과 깨달음을 얻는 것이 독자의 몫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을 ‘인생 소설’이라 이를 수 있겠다.
하버드대 교수 출신인 잭을 처음에 올리브는 “끔찍하고 늙고 돈 많은 허세 심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잭 역시 올리브의 성격을 견디기 힘든 순간이 적지 않았다. 서로 사귀게 된 늙은 두 남녀가 키스를 할 때 잭은 “따개비가 잔뜩 들러붙은 고래와 키스하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 결혼 생활에 적응한 올리브와 잭은 노르웨이로 여행을 다녀오는데, 올리브는 일등석을 타고 가자는 잭의 생각이 가당치 않다며 끝내 저 혼자 일반석에 앉기를 고집한다. 옆자리에 앉은, 자기만큼이나 덩치가 큰 남자와 그의 아시아계 여자친구를 저주하면서.
잭은 하버드 시절 젊은 여성 동료 일레인과 바람을 피운 적이 있는데, 그를 출세의 발판으로 이용하려다가 실패한 일레인은 나중에 그를 성희롱 혐의로 고소했고 잭은 결국 대학을 그만둔다. 그 일레인을 식당에서 마주쳐서 한바탕 신경전을 펼치고 돌아나올 때, 올리브는 잭에게 이렇게 내뱉는다. “당신이 그런 쓰레기한테 매력을 느낀다는 사실이 당신에 관해 뭔가를 말해준다고.”
8년의 결혼 생활 끝에 잭이 세상을 뜨고, 혼자 살던 중 심장마비로 쓰러지기까지 했던 올리브는 결국 노인 복지 아파트로 거처를 옮긴다. 그곳에서도 돈 많고 허세 부리기 좋아하는 속물들과 거리를 두며 기꺼이 외로움을 감수하던 그는 다행히 자신과 마찬가지로 민주당 지지자인 치프먼 부부와 친해지고, 자신보다 나중에 들어온 이저벨과는 단짝 친구가 된다. 이저벨은 스트라우트의 첫 장편 <에이미와 이저벨>의 주인공이었는데, 그 작품으로부터 무려 21년 만에 올리브가 주인공인 작품의 카메오로 다시 등장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스트라우트의 또 다른 소설 <버지스 형제>(2013)의 주인공이었던 세 남매 역시 이 작품에 ‘우정 출연’해 독자들을 반갑게 한다.
첫 남편 헨리에 이어 두 번째 남편 잭과도 사별한 올리브는 “그럼에도 여기 세상이 있다고. 하루하루 그녀를 향해 아름다운 비명을 질러대는 세상이”라며 의연한 태도를 잃지 않는다. 젊은 나이에 치명적인 병에 걸려 두려워하는 제자 신디 쿰스에게 올리브는 이렇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네가 정말로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그리고 죽게 된다면, 진실은… 우리 모두 그저 몇 걸음 뒤에 있다는 거야. 이십 분 뒤, 그게 진실이야.” 이제 그 자신 머지않아 죽음을 맞게 될 올리브는 마지막으로, 너무 늦게, 제 삶의 핵심적인 진실을 깨닫는다. “자신을 즐겁게 만들어주지 않은 것은 그녀 자신이었”다는.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