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의 마음
이나미·조자현 지음/다산기획·1만8000원
너댓살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넘기면 알 듯 말 듯 묘한 감정이 스쳐지나곤 했다. 코끝이 찡해질 때도, 가슴 깊은 곳 응어리가 살짝 내려가는 듯할 때도 있었다. 가슴 한구석 어딘가 흐릿하게 남은 어린 시절이 스멀거릴 수도, 매사 의무와 책임에 매인 어른의 심정이 어딘가 기댈 대목을 만나 위로받기 때문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림책의 마음>을 보고 실마리가 잡혔다. 이나미(서울대 의대 교수)·조자현(드림수면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 박사가 융 심리학으로 그림책 16편을 풀어냈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 <알도> <강아지똥> <고릴라> <프레드릭> <오리건의 여행> 등 아이를 키운 부모라면 알 만한 유명한 동화들이다.
특히 모리스 센닥이 1963년 짓고 그린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처음 봤던 날이 떠올랐다. 커다란 머리통에 날카로운 발톱을 지니고도 익살스럽게 눈알을 희번덕이는 괴물들이 득실대는 그림책. 미국에서 처음 출간됐을 때처럼 한국의 여느 부모들도 이 책의 주인공 ‘맥스’의 거칠고 제어되지 않는 광기 어린 모습을 “낯설고 충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림책의 마음>을 보면 그러나 모두 이유가 있다. 누구나 “가면을 내려놓고 늑대 옷을 입고 으르렁대는 시기를 보내야만 한다.” 하지만 보통의 엄마들은 맥스를 이해하지 못한다. 맥스는 자기 방으로 돌아오고(또는 방에 갇히고) 변화가 시작된다. “세상과의 분리는 답답한 가면(페르소나)에 집착하는 낡은 자아로부터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기 위한 준비다.”
배를 타고 맥스가 도착한 곳에는 괴물들이 산다. 괴물은 두려운 존재지만 맥스는 무서운 노란 눈을 응시하여 길들이는데, 책은 “진짜 나와 만나려면 두려움을 이겨 내고 어둠 속 낯선 것들을 마주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어서 괴물들과 맥스가 어우러진 ‘디오니소스의 축제’가 펼쳐지고(그림 책은 니체를 인용한다. “위험하게 살지어다! 자신과의 싸움 속에서 살라!” 이 순간은 “아이의 가장 근원적인 굶주림이 충족될 수 있는 원초적인 축제의 순간”이다.
축제가 끝나고 맥스는 집으로 돌아온다. 맥스의 방에는 엄마가 준비해둔 케이크와 우유, 수프가 있다. 맥스는 입꼬리를 올려 만족스럽게 미소 짓는다. 이 대목에서 어렸던 아이와 나는 안도감을 느꼈던 것 같다. 이 책의 설명대로 “맥스처럼 격정적으로 감정을 발산해도 괜찮다는 걸 느낀” 것일 테다.
이렇게 <그림책의 마음>은 ‘집단무의식’을 기반으로 그림책을 설명하는데, 어렵지 않다. 그림책을 원용하지만 심리적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탐색하게 한다. 무엇보다 위로받는 느낌을 준다.
김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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