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는 결혼생활샌드라 립시츠 벰 지음, 김은령·김호 옮김/김영사·1만5800원
“보통 때와 다르게 더 순수하고 신부처럼 보이며 순결해 보이고 싶은 마음이 없기에 웨딩드레스를 입거나 면사포를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내가 어떤 보호 상태에서 다른 보호 상태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버지가 저를 인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보면 새삼스럽지도 않은 결혼식 계획이지만 1965년, 고등교육을 받는 여성이 드물고 결혼이 부모라는 ‘주인’에서 남편이라는 새로운 ‘주인’을 맞아들이는 의례였던 시절이라면 다른 이야기다.
저자는 1960년대 여성성과 남성성의 새로운 척도를 제시한 ‘벰 성역할 검사’를 개발하며 젠더 양극화 연구에 업적을 남긴 페미니즘 학자로 1998년 쓴 자전적 결혼이야기다. 위의 글은 전통적인 유대교 집안으로 보수적이었던 가족들에게 선언처럼 보냈던 장문의 결혼계획 중 일부다. 대학에서 만난 남편과 저자는 철저히 50:50의 파트너십으로 관습적 성역할을 전복하는 결혼생활로 당시부터 주목을 받았다. 가사 분담뿐 아니라 때로는 남편이 아내의 커리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커리어 일부를 포기하는 등 이들의 결혼생활 방식은 많은 여성들을 자극하고 각성시켰다. 특히 딸과 아들, 두 아이를 키우면서 고정된 성역할을 가르치지 않기 위해 그림책의 주인공의 외모를 바꿔 그리고 중요한 역할에 그(he)라는 지칭을 붙이지 않기 위해 항상 ‘그 또는 그녀’라고 말하는 등 부부생활보다 더 치열하고 섬세했던 ‘젠더프리’ 양육실천기기가 흥미롭다. 저자는 평등한 결혼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욕망이 남성 파트너의 욕망만큼이나 중요한 고려 대상이어야 한다는 사실에 남녀의 견해차가 있을 수 없음”을 여성들이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