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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천재 물리학자의 위대한 성취 뒤에는…

등록 2020-11-13 04:59수정 2020-11-13 10:26

1933년 노벨상 받은 현대 양자물리학 주역 ‘폴 디랙’ 일대기
‘퀀텀시대’ 예비했지만 아버지로 인한 고통은 한계이자 동력

폴 디랙

그레이엄 파멜로 지음, 노태복 옮김/승산·3만6000원

컴퓨터는 이진법으로 정보를 인식해 처리한다. 이진법을 이루는 0과 1이 기본인 비트(bit)를 단위로 컴퓨터는 계산한다. 비트 양이 늘어나면 계산 시간도 길어진다. 여기에 양자역학을 적용하면 비트 하나에 0과 1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양자비트는 양자를 뜻하는 ‘퀀텀’의 첫 글자를 따 큐비트(Qbit)라고 한다. 큐비트가 늘어날수록 처리 가능한 정보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양자컴퓨터의 탄생이다. 양자기술이 컴퓨터는 물론 암호, 통신 등 과학기술 분야에 두루 활용되면 ‘퀀텀 점프’(비약적 발전)가 이뤄지는 것이다.

퀀텀 시대를 예비한 양자물리학과 상대성 이론은 현대 물리학의 주인공이다. 20세기 이 역사를 써나간 과학자들은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양자 이론과 특수상대성 이론을 결합한 폴 에이드리언 모리스 디랙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폴 디랙이,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사고 실험을 제안한 것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와 함께 1933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것조차 전공자들 외에 아는 이들이 별로 없다. 그러니 23년째 수학·물리학 전문서 출판을 고집해온 도서출판 승산이 전기 <폴 디랙>을 펴낸 것은 예정된 일이었을 것이다.

전직 이론물리학자인 그레이엄 파멜로가 지은 원작의 제목은 ‘더 스트레인지스트 맨’(The Strangest man)이다. 이상한 정도가 아니라 가장 이상한 사람이라는 것. 그만큼 폴 디랙은 독특한 사람이었다. 말이 너무 없어서, 한 시간에 평균 한 단어를 말했다고 한다. 그의 동료들은 그의 과묵함의 단위를 ‘1디랙’이라 정의했다. “도서관에 죽치고 앉아 있는 심각하고 조금 외로워 보이는 아이”였고 “과학과 수학에 편집광처럼 매달렸”던 학생이었다고 한다.

기괴한 수준으로 말이 없는 이유를, 전기는 그의 아버지에게서 찾는다. 영국에서 태어난 그에게, 엄한 아버지는 모국어인 프랑스어 쓰기를 강요했다. “식사 때마다 디랙은 고문을 받는 느낌이었다.” 프랑스어를 잘 못하는 디랙은 말을 안 하는 편이 나았다고 훗날 털어놓는다. 디랙이 평생 소화 장애에 시달린 것도, “디랙이 프랑스어 실수를 하면 식탁을 떠나지 못하게 했”던 아버지 탓이었다.

디랙은 아버지 때문에 평생 고통받았지만, 역설적으로 아버지 없이 양자역학의 대가가 되긴 어려웠을 것이다. 둘째 아들 디랙에 대한 아버지의 기대는 무척 컸으며, 아들을 케임브리지에 보내겠다는 희망을 지키며 인색하기 그지 없던 아버지가 대학 납부금 일부를 내주게 된다. 아버지에 억눌려 있던 디랙은 “아버지의 지극한 은혜를 입고 나서 옛날 식사 시간의 고압적인 태도며 아버지의 다른 온갖 잘못을 모두 용서하게 되었다”고 한다.

삶이 묵언수행 같았던, 과학과 논리에만 몰입했던 그도 ‘인간’이었음은 그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확인된다. “설령 내 연구에 더 이상의 성공이 없더라도 당신과 함께라면 나는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그가 이론물리학을 추구하는 방법에 대한 강연에서 동료 과학자들에게 전한 조언도 “무엇보다도 자신의 감정을 따르세요”라는 것이었다. 아버지에게 입은 상처는 그를 말없이 학문에 몰입하는 천재 물리학자로 이끌었지만, 그 안에 억눌려 있던 인간적 면모는 그의 위대한 성취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1962년 7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상대성이론에 관한 회의에서 폴 디랙(왼쪽)과 리처드 파인만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승산 제공
1962년 7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상대성이론에 관한 회의에서 폴 디랙(왼쪽)과 리처드 파인만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승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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