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왜 끝나나
에바 일루즈 지음, 김희상 옮김, 김현미 해제/돌베개·2만9000원
“고르는 맛이 있죠. 원나이트 스탠드는 내가 원하는 것이 섹스인 덕에 신선한 힘과 함께 내가 아름답다는 느낌을 선물했죠. 원한 것은 아무 기대가 없는 섹스일 뿐이니까요.”
라이프스타일 누리집 ‘리파이너리29’의 게시판에 한 여성이 올린 글의 일부다. ‘고르는 맛이 있다’는 표현이 보여주듯, ‘캐주얼 섹스’(가벼운 섹스)는 여성을 해방하고 젠더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으리라 여기는 페미니즘의 지표이기도 했다.
독일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는 <사랑은 왜 끝나나>에서 이런 시각에 반기를 든다. 프랑스∙영국∙독일∙이스라엘∙미국에서 19~72살 사이 92명을 인터뷰한 질적 연구의 결과다. “성적 자유와 소비 문화, 기술 및 성적 경연장에서 여전한 남성 지배는 서로 결합해, 계약이라는 이름으로 결혼 시장이 떠맡은 주요한 사회적 형식을 맺고 꾸릴 가능성을 약화시켰”고 그 결과 “여성은 그들의 섹슈얼리티로 인해 권력을 갖는 동시에 비하되는 기묘한 상황에 빠졌다”는 것이다. 여성이 기존 젠더 역할과 함께 성적 가치도 지녀야 하는 이중적 구속 상황에 놓여, 남성 지배를 뒷받침하는 기이한 역설이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일루즈는 이 시대의 사랑이 소비 자본주의에 포섭됐다고 일침을 놓는다.
이런 주장을 “히스테리적 도덕주의와 내숭 떨기의 반동적 국면”이라고 못마땅해 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예상하는데, ‘모든 사회 문제의 원인을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로 치환하는 방식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질 이들도 있을 듯하다. 정말 그런지 따져보고 싶어지는 마음이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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