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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안정·여유·기쁨이 넘쳐나던 울프의 정원

등록 2020-11-27 04:59수정 2020-11-27 20:39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

캐럴라인 줍 지음, 메이 옮김/봄날의책·2만8000원

“밤은 길고 따뜻해. 장미가 피어나고, 정원은 아스파라거스 화단에 뒤엉켜 붕붕대는 벌과 욕망으로 가득해.” “아,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얼마나 평온한지 L과 함께 지금 이곳에서의 삶이 얼마나 달콤한지. 규칙적이고 정돈된 생활, 정원, 밤의 내 방, 음악, 산책, 수월하고 즐거운 글쓰기.”

안정과 여유, 기쁨이 넘쳐나는 이 문장들은 평생 신경쇠약과 싸우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버지니아 울프가 썼던 글이다. 불안한 인간의 내면이 그려진 작품세계, 그동안 주로 조명돼온 작가의 정신적 그늘과 반대편에 있는 글들은 그가 시골집 ‘몽크스하우스’에서 보내던 시절에 썼다.

봄날의책 제공
봄날의책 제공
버지니아 울프의 몸이 쇠약해지면서 남편 레너드는 요양차 시골로 이사를 계획하다가 런던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인 이스트 서식스 지방 로드멜이라는 작은 동네에 몽크스하우스를 발견해 경매받는다. 1919년 처음 이사 왔을 때 변변한 화장실도, 수도관도 없으며 “거대한 쥐들”이 나타나는 낡은 집이었지만 두 부부는 금방 이 집에 빠져든다.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레너드는 본격적인 정원사로서의 재주를 발휘해 꽃과 나무를 가꾸기 시작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책이 팔려나가며 돈이 모이자 부부는 집 근처의 들판까지 사서 과수를 심고 연못을 파는 등 정원을 더 크고 아름답게 만들어나갔다. “우리는 물고기 연못에서 금붕어를 지켜보는 데 정열을 쏟아붓고 있어. (…) 지금 헤이그 회의에서 논의되고 있는 일보다 물고기 구경이 우리들에게 더 중요하다고 장담해.” 1929년 버지니아 울프가 동료 작가인 휴 월폴에게 보낸 편지에서 버지니아가 얼마나 몽크스하우스 생활을 만족스러워 했는지 느껴진다.

버지니아 울프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남편 레너드가 계속 머물다가 1969년 시장에 나온 몽크스하우스는 여러 개인들이 탐냈지만 다행스럽게도 근처 대학이 사들여 운영하다가 현재는 내셔널트러스트가 관리를 하면서 전 세계 여행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은 홈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저자가 내셔널트러스트의 세입자로 2000년부터 십년 넘게 이곳에 살면서 직접 정원을 가꾸고 관찰하며 기록한 글이다. 울프 부부와 몽크스하우스의 역사를 성실하게 기록하면서도 정원의 현재적 아름다움 역시 생생하게 전달한다. 오래된 첨탑과 고적한 돌길 사이 초록의 생동감이 넘쳐나고 아름다운 꽃이 가득한 사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고립의 시절에 적지 않은 위로를 받는 기분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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