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공장의 비밀
김유진 글·그림/ 향·1만7000원
초승달이 뜬 밤, 기상 나팔 소리가 울렸다. 고양이들이 하품하며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양이들이 향한 곳은 커다랗고 높은 성. 이곳은 고양이들의 일터다. 비장한 표정의 고양이들이 성 아래 지하 2층 탄광부터 베틀이 놓인 지상 7층까지 각자의 자리로 흩어져 일을 시작했다. 깊은 어둠 속에서 고양이들이 증기의 힘을 빌려 만드는 건 비단이다. ‘바람이 보내온 달빛과 새벽이슬로 빚은 수만 가닥 비단 실’이 창고에 수북이 쌓였다.
어둠이 물러나고 해가 떠도 공장은 멈추지 않았다. 밤의 일꾼들이 집으로 향하고 낮의 일꾼들이 성으로 모여들었다. 낮에 비단공장을 움직이는 건 태양열이다. 환하고 눈부신 햇살이 공장을 가득 채우면 ‘싸늘하고 보드라운’ 비단 실이 베틀이 놓인 방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마침내 ‘펑!’ 비단 실로 만든 ‘그것’이 아름다움을 뽐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고양이들의 숭고한 노동이 들어간 빛나는 결과물이다.
그림책 <비단공장의 비밀> 삽화. 출판사 향 제공
그림책 <비단공장의 비밀>은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재밌는 상상력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고양이들이 비단으로 만들어낸 ‘그것’은 시간과 땀을 들인 노력이 보태져 더 아름다워진다. 얻고자 하는 것, 지키고자 하는 것, 이루고자 하는 것, 그 모든 ‘그것’ 역시 어느 날 ‘뚝딱’ 이뤄질 수 없다.
비밀이 무엇일지 상상하며 따라가게 만드는 책은 표지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비단을 만지듯 보드라운 감촉의 붉은 표지에는 일하는 고양이들의 모습이 그려진 금박으로 책 제목을 새겼다. 판화 같은 흑백 펜화에서 색이 있는 건 붉은 비단 실과 아름다운 ‘그것’뿐이다. 비단 실로 만든 폭탄을 대포에 넣고 ‘펑!’ 터트린 순간, 접어진 종이를 펼쳐 비밀의 ‘그것’을 확인하는 재미가 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