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18일(현지시각) 아이슬란드 오크 화산 정상에서 지구온난화로 녹아 사라진 빙하를 추모하는 장례식이 열렸다.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이 추모비(사진 가운데)를 제작했다. EPA 연합뉴스
시간과 물에 대하여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 지음, 노승영 옮김/북하우스·1만7000원
‘오크 빙하는 아이슬란드에서 빙하 지위를 잃은 최초의 빙하다. 앞으로 200년간 우리의 모든 빙하가 같은 길을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 추도사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우리가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이슬란드 오크 화산 정상에 있는 ‘빙하 추모비’ 문구다. 추모비는 지난해 8월 빙산의 90%가 녹아내려 ‘사망 선고’를 받은 빙하를 추모하는 장례식 때 세워졌다.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경고하는 이 행사에 참석한 아이슬란드 작가이자 환경운동가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이 이 추모비를 제작했다. 추모비의 제목은 ‘미래로 보내는 편지’다.
마그나손이 쓴 기후위기의 현실을 알리는 책 <시간과 물에 대하여>가 국내에 출간됐다. 북유럽 신화와 역사 이야기와 빙하학자·해양학자·지리학자 인터뷰 등을 촘촘히 엮었다. 지난해 아이슬란드에서 처음 나온 뒤 올해 미국, 독일 등 27개국에서 번역돼 선보였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기후위기에 관한 많은 책 중에서도 단연 특별하고 강렬한 책”으로 상찬했다.
빙하의 나라에 사는 그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빙하의 죽음’을 목격하고 있다. 2000년까지만 해도 300개가 넘는 빙하가 있던 아이슬란드에서 빙하 50개 이상이 녹아 사라졌다. 마그나손은 이러다 아이슬란드는 ‘아이스’가 빠진 ‘란드’만 남을 것이라고 말한다. 빙하가 사라지는 시간을 지켜본 조부모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빙하연구회에서 만난 그들은 1950년~70년대 빙하 탐사를 했다. 그들에게 “빙하는 대양, 산악, 구름처럼 위대하고 영속적인 것의 상징”이었다. 100년도 채 안 된 시점에 그 믿음은 깨져버렸다. 빙하학자 헬기 비외르든손은 바트나예퀴들 빙하에 담긴 물이 아이슬란드 전역에 20년간 내린 강수량과 맞먹으며 빙하가 녹으면 지구 해수면이 1센티미터 높아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기온 상승으로 빙하 해빙 시점은 더욱 앞당겨지고 있다. “지구 온도의 상승을 감안하면 바트나예퀴들의 주요 분출빙하는 앞으로 50년 안에 사라질 것이며 빙하 자체도 150년 안에 자취를 감출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사람들이 기후위기의 문제를 백색소음처럼 흘려보낸다는 점이다. 책에서는 2003년 기후학자 켄 칼데이라가 만든 ‘해수 산성화’(이산화탄소가 바닷물에 용해되어 산도가 강해지는 현상)를 예로 든다. 지구 위의 바다는 수억 년 동안 평균 8.2 피에이치(pH)의 약알칼리 상태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산업 혁명이 시작한 이후 바다의 산성은 30% 증가했으며 해양 생명체는 최소 지난 2천만년 전보다 100배나 빠르게 산성화하고 있다. 해양은 그동안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지구온난화 완화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지만, 이제 더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생물다양성, 먹이사슬, 수산자원 등 여러 분야에 악영향을 미친다.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관심도는 떨어진다. 2006년 아이슬란드 미디어에 해수 산성화라는 단어가 처음 나온 뒤 2007년에 1번, 2009년에 2번 언급됐다. 이에 반해 ‘이윤’이라는 단어는 2006년에 1170번, 2009년에 540번 등장했다.
지은이가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두 차례(2009년 6월, 2010년 6월) 나눈 ‘기후위기 대담’도 눈길을 끈다. 달라이 라마는 마그나손에게 생태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감, 자비심 등 인간 내면의 힘을 강조한다. 파국으로 향하는 지구를 구할 수 있는 희망은 그 힘에서 나온다고.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며 오늘날의 현실을 보건대 우리에게는 지구적 책임감이 필요합니다. (…) 이 세상은 긴밀한 상호 의존으로 엮여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의지합니다.” 만물의 연결을 말하는 달라이 라마의 이야기는 북유럽 신화의 세계관과 이어진다. 북유럽 신화에서도 세계, 우주 그리고 삶이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이다. 세계는 수많은 순환으로 이루어진다. 인간의 삶도 태어나서 자라고 아이를 낳고 죽는, 순환의 연속이다.
아이슬란드 작가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은 <시간과 물에 대하여>에서 “지구 위 모든 사람들의 건강은 서로 연결돼 있다”고 말한다. 북하우스 제공
지난해 이 책을 집필한 지은이는 올해 코로나 상황을 담아 작가 후기를 새로 썼다. 코로나19 시대를 “아포칼립스”로 부른 그는 코로나가 속도와 경쟁만을 추구하는 이 사회를 폭로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이야기한다. “모든 것을 폭로하는 아포칼립스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없어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는 것이 무엇인지,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경우 얼마나 신속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코로나로 일상이 멈춘 이때 삶의 대전환을 생각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러려면 과도한 일회용품 사용 등 소비 습관이 달라져야 하고 인류가 생명의 토대와 조화롭게 공존하는 교육 시스템이 절실하다.
그는 책 머리에서 “이 책을 우리의 아이들과, 아이들의 아이들과 아이들의 아이들의 아이들에게 바친다”고 했다. 미래 세대에게 이 책이 닿을 수 있도록, 파국으로 향하는 “지구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세대”에게 절박한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는 생물 다양성을 감소시키며 지구의 한계에 바싹 다가서고 있다. 앞으로 80년간 바다의 수소이온농도는 지난 5000만 년보다 더 많이 변할 것이다. 수천 년간 건재하던 고대의 빙하와 영구동토대도 이후 80년간 녹아버릴 것으로 전망된다. 전면적 파국을 피하려면 속도를 늦춰야 한다.”
이 책을 번역한 노승영씨는 9일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기후위기를 주제로 마그나손 조부모의 삶, 북유럽 신화, 달라이 라마 대담 등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냈다”라며 “이 세계에서 사라진 것과 사라져 가는 것을 생각하도록 하는 책”이라고 말했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