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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으로 부서진 고향 함흥 사진 보고 참 슬펐죠”

등록 2020-12-27 18:33수정 2020-12-28 13:56

【짬】 재미교포 한만섭씨, 재독교포 신동삼씨

한만섭(왼쪽)씨는 2년 전 독일을 찾아 신동삼(오른쪽)씨와 4박5일 동안 함흥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은 한씨가 당시 머물던 숙소 앞에서 찍었다.                                                                                  논형 제공
한만섭(왼쪽)씨는 2년 전 독일을 찾아 신동삼(오른쪽)씨와 4박5일 동안 함흥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은 한씨가 당시 머물던 숙소 앞에서 찍었다. 논형 제공
재미교포 한만섭(90)씨는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 고향 함경남도 함흥을 떠났다. “16살이었죠. 함흥에서 창궐하던 콜레라를 피해 모친과 함흥 바닷가에서 돛배를 타고 월남했죠. 아버지와 형님들은 앞서 남쪽으로 내려왔어요.”

그는 남으로 와서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 서울대와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항공공학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서울대 교수를 9년가량 하다 66년에 도미했다. 미 항공사 보잉에서 엔지니어로 25년 일하다 93년에 퇴직했고 그 뒤로 옛 삼성항공 항공우주연구소장도 지냈다. 지금은 북캘리포니아 서니베일에서 여유로운 노후 생활을 하고 있다.

<함흥, 사진으로 보는 전쟁과 재건의 역사> 표지
<함흥, 사진으로 보는 전쟁과 재건의 역사> 표지
고향을 떠난 지난 74년 동안 그는 한 차례도 북한 땅을 밟지 않았단다. 미국 시민권자이기에 트럼프가 미국인의 북한 여행을 막은 2017년 전에는 방북이 가능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제가 보잉사에서 군사기밀을 취급해 북한을 오가면 주목받을 수도 있었죠.” 하지만 그는 지금도 고향을 찾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내가 태어난 함흥 동네와 함흥 북쪽의 부전고원이 가장 보고 싶어요. 내 건강이 지금도 괜찮아 비행기 여행도 할 수 있어요. 꼭 가고 싶어요.”

그가 최근 동갑인 재독교포 신동삼씨와 공저로 <함흥, 사진으로 보는 전쟁과 재건의 역사>(논형)를 냈다. 52년에 북한 유학생으로 독일 드레스덴 공대에서 건축을 공부한 신씨는 59년에 옛 서독으로 망명했다. 그의 고향은 함흥에서 남쪽으로 20㎞쯤 떨어진 정평이다. 지난 19일과 20일 전화로 두 사람을 만났다. 지난봄부터 지병이 악화해 대화가 어려운 신씨는 파독 간호사 출신인 아내가 인터뷰를 도왔다.

이번 사진집은 7년 전에 신씨가 낸 함흥사진집 <신동삼 컬렉션-독일인이 본 전후 복구기의 북한>을 수정·보완한 책이다. 신씨는 동독 건축전문가들이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함흥을 재건하기 시작한 1955년에 통역 요원으로 활동했다. 북한 동북 지역 최대 도시인 함흥은 한국전쟁 때 미군 B29 폭격으로 약 95%가 파괴됐다. 동독은 55년부터 62년까지 500여명의 건축전문가를 북한에 보내 함흥 재건을 이끌었다. 서독에 망명한 뒤로 이 나라에서 건축가로 살아온 신씨는 현역에서 은퇴하고 10여 년 동안 함흥 재건에 참여한 동독인들을 수소문해 그들이 함흥과 그 주변 지역을 찍은 사진을 모았다. 그의 아내와 아들까지 도운 이 노력의 결실이 2013년에 나온 사진집이다. 그는 2년 전에는 88살 고령에 독일 함부르크 대학에서 ‘1955~1962 구동독 도시설계팀의 함흥시와 흥남시의 도시계획’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아내는 남편을 두고 “독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박사”라고 웃었다. 이 논문은 지난해 국내에서 출간돼 ‘세종도서’에도 선정됐다.

두 공저자는 재작년 10월 독일 마인츠 신씨의 집에서 처음 만났다. 그리고 4박 5일 동안 신씨의 사진집을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16살에 함흥을 떠나 함흥에 흥이 많아요. 2018년 여름에 신 선생의 사진집을 처음 봤는데 함흥 사진이 많아요. 그래서 신 선생을 만나려고 나 혼자 독일행 비행기를 탔어요.” 첫 만남에서 둘은 사진집을 다시 내기로 뜻을 모았다. “내가 사진을 보고 함흥의 어떤 곳인지 또 부전고원이나 장진호 사진에 관해 설명을 많이 했어요. 내가 중3까지 함흥에서 살아 흥남에서 학교에 다닌 신 선생보다 함흥은 더 잘 알거든요. 설명을 듣고 신 선생이 책을 다시 내자고 했죠.” 신씨에게 디지털 사진 900장을 받아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직접 포토샵으로 변색한 컬러사진을 보정하고 사진설명도 더 달아 사진집을 완성했다.

만 아흔 동갑으로 함흥과 정평 고향
1959년 북에서 서독 망명한 신씨가
7년 전 낸 ‘함흥사진집’ 함께 재발간
함흥 재건 이끈 동독인들이 찍은 사진

한씨 2년 전에 사진집 처음 보고 방독
함흥 옛 모습 설명하며 다시 내기로

“이번에 실은 사진(900장)은 이전보다 두배가량 많아요. 아이들이나 시장 모습 등 동독인들이 함흥 주민들의 일상을 찍은 사진이 많이 추가됐어요. 동독 기술자들의 일상을 찍은 사진도 더 넣었죠.”

한씨는 일흔 무렵에 이미지 제작·편집 프로그램인 포토샵을 배워 20년째 미주 함흥고보 동창생 회지인 <미주반룡> 편집도 해왔다. “포토샵을 배워 50, 60대 교포들을 가르치기도 했어요.” 격년간지로 46호까지 나온 <미주반룡>을 보면 함흥학생운동 등 해방 전후 함흥지역 역사를 세밀하게 증언하는 콘텐츠들이 눈길을 끈다. 반룡은 함흥 북서 쪽에 자리한 반룡산에서 땄다.

1955년 5월1일 메이데이 기념식에서 함흥 여학생들이 2층이 파괴된 함흥 공회당 앞을 북을 치며 지나고 있다.   논형 제공
1955년 5월1일 메이데이 기념식에서 함흥 여학생들이 2층이 파괴된 함흥 공회당 앞을 북을 치며 지나고 있다. 논형 제공
함흥 재건 건축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                                                 논형 제공
함흥 재건 건축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 논형 제공
함흥 사진을 보고 어땠느냐고 묻자 한씨는 “참 슬펐다”고 답했다. “6·25 사변 동안에 함흥이 부서지고 사람들도 없어졌어요. 함흥이 참 조용하고 교육도시로 좋았는데, 내가 살던 곳이 이렇게 됐다니 북한 사람들이 고생하고 살아왔구나, 그런 생각을 했죠.” 가장 눈이 갔던 사진은 “전쟁 뒤 함흥 주민들이 메이데이 등 기념일 행사를 하는 장면”이란다. “내가 아는 장소가 많이 있더군요. 사진을 보니 2층이 부서진 공회당을 장식해 단상으로 썼어요. 공회당 앞쪽이 함흥 중심지였는데 건물이 남은 게 없어요. 거기에 명보극장이라는 큰 극장과 함흥택시회사, 금융조합이 있었죠. 명보극장에선 일제가 만든 태평양전쟁 선전 영화도 봤고 해방 이후엔 북한 공산당 선전 모임도 있었죠. 공회당에서는 국민학교 다닐 때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 1등 한 모습이 나오는 올림픽 영화를 봤어요.” 함흥 재건 때 남성 못지않게 많은 여성이 건축 노동을 하는 모습이나 부전고원 사진도 흥미로웠단다. “부전고원에 가본 적은 없지만, 부전고원 수력발전소 저수지 공사(1926~1930년) 이야기를 어려서 많이 들어 흥미가 있었죠. 일제가 발전소를 지으려고 인공호수를 만들었죠.”

올해로 망명 61년인 신씨도 그간 두 차례 북한을 찾았지만 고향 땅을 밟지는 못했단다. 그는 88년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가 당시 북한 주석 김일성에게 청원해 2001년과 2009년 방북했다. 하지만 고향 방문은 허가가 나지 않아 평양에서 누이동생 등 친지를 만나야 했다.

일제 말을 함흥에서 보낸 한씨가 지금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다. “언젠가 일본에 가면 해군 기록을 한번 보고 싶어요.” 그는 함흥고급중 3학년 때 동기생 150명과 함께 흥남 북쪽에 있는 영흥공장에서 해방될 때까지 하루 8시간 강제 노동을 했단다. 그의 1년 위 선배들은 3교대로 야근까지 했다. “비행기 인조 연료를 만드는 공장이었죠. 일본 해군 장교가 공장장이었어요. 기숙사에서 잠까지 자고 4개월가량 일했지만 노임을 한 푼도 못 받았어요. 공장을 위탁 운영한 일본 해군이 정말 노임을 주지 않았는지 궁금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나이 든 함흥 여성들만 외출 때 머릿수건 썼죠”

사진집 중에 함흥의 고유한 풍속이나 풍습을 보여주는 사진을 묻자 한만섭씨는 아래 세 사진을 골랐다.

그의 설명이다. “두 여성의 얼굴 모습(아래 두번 째 사진)이 남한 특히 서울이나 호남지방의 옛 여성 모습과는 좀 달라요. 고려 시절에는 고려 천리장성이 함흥 성천강 이남에 있었고 또 함경도에는 여진족이 많이 살아 그곳 사람들은 여진족 디엔에이가 많이 섞여 있었다고 봅니다. 두 여성의 모습은 여진족 디엔에이가 섞인 전형적인 함경도 여성인 것 같아요.”

나이 든 여성들이 머리에 두르는 ‘머릿수건’도 함경도만의 풍습이란다. “함흥 지방의 중년 이상 여자 분들은 정장을 하고 외출할 때 꼭 흰 머릿수건을 접어서 모자처럼 만들어 머리에 씁니다. 맨아래 사진의 신부 돌보는 할머니도 머릿수건을 쓰고 있죠. 정장 차림입니다. 신랑과 신부 어머니들은 아직 젊어서 머릿수건을 안 쓰고 있어요. 머릿수건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야 씁니다. 신부가 깔고 앉은 ‘호랑이 가죽 방석’도 함경도만의 독특한 풍습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함경도에는 1920년대까지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기록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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