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책거리
허기와 포만감의 극단을 오가는 고통, 그리고 희열. 매주 백수십권에 이르는 책을 훑어 살피고 고르고 읽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솟아올랐다 사라져버리는 감정입니다. 대학 시절 중앙도서관 장서 앞에 서면 가슴 깊이 차오르는, 어떤 감정에 시달리곤 했습니다. 도서관에 들어서자마자 감각으로 전해오는 특유의 냄새로부터 긴장과 안온함의 모순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산해진미의 진수성찬을 두고 허겁지겁 삼켜버리고 싶지만 모두 소화할 수 없는 현실에 압도되고 좌절하는 것은 탐욕 탓이겠죠. 이럴 땐 명탐정 셜록 홈스 시리즈 전집을 겨우 얻어낸 뒤 기대감에 설레던, 소복히 눈 쌓인 어느 겨울방학이 떠오르곤 합니다.
학술·지성면(5면)에 소개한 프랑스 철학자 프랑수아 줄리앙의 ‘탈합치’ 개념을 읽다가 시 한 편이 스쳐지났습니다. “(…)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김중식 ‘이탈한 자가 문득’). 궤도를 벗어나 추락하는 별똥별이 얻게 되는 자유는 곧 줄리앙이 말하는 ‘합치’에서 벗어나 도달하게 되는 ‘창안하게 하는 힘’이겠죠. 대가가 없지는 않습니다. 별은 한 획을 그어 빛나며 소멸하고 합치를 깨는 이는 규칙위반자라는 비난에 휩싸일 것입니다.
좋은 책에서 마주치게 되는, 기존 질서와 관념에서 벗어난 신선하고 생경한 아이디어는 수도자가 얻게 되는 깨달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사유의 세계를 종횡무진하며 자유를 향해 탈주하고 추락하더라도 빛날 수 있는 고통과 희열이 책 속에 있습니다. 눈발 날리는 겨울, 따뜻한 공간과 차 한 잔, 끌리는 책 한 권. 팬데믹 시대 여유로운 주말 나기의 한 방법입니다.
김진철 책지성팀장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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