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책거리
장혜영 정의당 의원의 ‘입장문’을 자세히 거론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널리 회자되었고 울림이 컸습니다.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고 누구든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아찔한 사실을 다시 상기시켜준, 용기 있고 힘 있는 글이었습니다. 피해자는 어떤 모습으로든 존재할 수 있고 가해자는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는 예외 없는 사실을 되새깁니다.
유독 한 대목에서 멈춰서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럴듯한 삶.’ “그토록 그럴듯한 삶을 살아”온 이들은 “왜 번번이 (…) 이토록 처참히 실패하는” 걸까요. 더 큰 문제로 넓혀 살피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럴듯한’에서는 허구가 엿보이고, ‘처참한 실패’는 필연으로 여겨집니다. 우리 누구나 ‘그럴듯한’ 삶에 머물러 왔음을 성찰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실패’로 귀결되지 않도록 하려는 ‘노력’은 부단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읽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다른 삶들에 대한, 다른 고뇌에 대한 무관심이 병의 근원일 것이라고요. 이것은 나태의 문제라고요. 이를테면 버전의 ‘v’를 대통령으로 오독하는, 게으른 생각 같은 것이겠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저절로 듣게 되는 삶은, 온 우주가 나만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착각마저 체화된 안일의 문제일 것이라고요.
살아있는 시인의 비장한 한마디를 뚜렷이 기억하려고 합니다. “내가 시를 쓰는 이유도 그저 잘 지기 위해서다.”(이산하) 이미 죽은 경제학자의 조언도 떠올립니다. “어려움은 새로운 생각을 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낡은 생각에서 벗어나는 데 있다.”(존 메이너드 케인스) 잘 지기 위해 시를 쓰는 일은 실패가 아닐 것이며, 낡은 생각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은 그럴듯하지 않을지언정 진심어린 인간의 모습을 지향하는 일일 것입니다. 시인과 경제학자의 말에서 ‘참된 성공’을 곱씹어 봅니다.
김진철 책지성팀장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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