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와 전쟁
존 키건 지음. 황보영조 옮김. 까치 펴냄. 1만7000원.
존 키건 지음. 황보영조 옮김. 까치 펴냄. 1만7000원.
잠깐독서
스파이, 이중간첩, 첩보전, 암호해독, 연락장교, 두뇌게임…. 이러한 모티프는 영화나 소설에서 진저리나게 우려먹었어도 여전히 영감의 무한지대다. 적의 정보를 캐내는 과정이 극적이거니와 스파이는 흔히 애국심에 불타는 영웅 내지는 적군에 협조하는 배반자가 될 운명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정보와 전쟁>을 펼치기 전, 픽션으로 각인된 매혹적 첩보전을 상상한다면 허찔리기 십상이다. ‘전쟁사를 대중화시킨 일등공신’인 영국 최고의 군사사가 존 키건은 허구 속에 성글게 매김한 ‘정보’의 실재를 치밀하게 재생한다.
정보는 전쟁의 승리를 위해 유용한가. 키건은 “그렇다”라는 답으로 멀리는 알렉산드로스까지 가까이는 포클랜드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년 알렉산드로스는 타지 인사들이 마케도니아 왕궁을 방문할 때마다 지역의 특색에 대해 집요하게 물었고 훗날 전략정보로 삼았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서 아르헨티나는 엑소세 미사일로 영국 함정을 일격해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었지만 영국을 지원하는 미국의 인공위성이나 암호정보에 접근할 수 없었던 탓에 패퇴의 쓴맛을 봐야 했다.
그렇다면 정보는 승리의 충분조건인가. 아니다. 저자는 “승리는 두뇌보다는 피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쪽에 무게를 둔다. 전쟁에서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2차적이라는 것.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는 독일이 사용했던 암호장치 ‘에니그마’를 해독한 놀라운 성과를 이뤘음에도 독일의 전격전에서 힘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다. 미군이 1945년 이오 섬을 점령한 것도 일본 방위군의 계획을 미리 파악해서가 아니라 수천 명의 목숨을 희생하면서 벙커에서 벙커로 전진해 나갔기 때문이다.
오직 최종적으로 중요한 건 ‘힘’이라는 힘 빠지는 결론. 다만 정보가 없다면 “전사들이 그들의 검을 집어넣을지도 모른다”고 하니 정보는 전사에게 물불 안가릴 용기를 주는 셈이다. 정보를 앞세운 테러와의 전쟁이 이와 같은가?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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