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세계 건축 기행 에세이 낸 단국대 정태종 교수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신논현역 네거리 카페에서 만난 정태종(56) 단국대 건축학부 교수가 유리창 너머 신축 공사 현장을 가리켰다. “제가 외관 디자인 등 초기 기획 설계를 한 건물입니다. 고객 요구 조건도 많고 건축과 관련된 사람도 많아 (설계가) 스무번은 바뀐 것 같아요. 층이 올라가면서 건물 외관에서 받는 느낌이 수평에서 수직으로 점차 바뀌죠. 그런 변화가 건물을 만든다는 인상을 주려고 디자인했어요.”
그는 만 55살이던 지난해 3월 강의담당 조교수로 단국대에 채용됐다. 대학에서 설계를 가르치면서 디자인에 초점을 맞춘 기획설계 프로젝트 작업도 병행한단다.
네덜란드 건축사인 그는 두 개의 박사 학위가 있다. 재작년에 서울대 건축학부에서 공학 박사 학위를 땄고 다른 하나는 35살 되던 2000년에 가톨릭대에서 치과 교정을 주전공으로 받은 치의학 박사 학위다. 그는 치과 개원 5년 차이던 2001년에 충북대 건축학과 석사 과정에 들어가 건축 공부를 처음 시작했다. “고교 때부터 주어진 삶을 따라 살다 처음 혼자서 무언가 결정한 게 20년 전에 시작한 건축 공부였어요.”
그는 충북대 대학원을 나와 미국 건축학교 사이악(SCI-Arc)과 네덜란드 델프트 공대에서 건축 설계를 공부하고 귀국해 2012년부터 3년 동안 건축설계사무소도 운영했다.
무엇이 30대 중반의 치과 의사를 건축으로 이끌었을까. “고향인 청주에서 치과를 열고 어느정도 자리가 잡힐 때였어요. 치과라는 작은 공간에 매이게 되니 일상에서 탈출할 수 있는 여행에 더 끌리더군요. 기회가 날 때마다 여행하면서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되었죠. 같은 치과 의사인 아내가 제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잘 알아 건축 공부를 지지해주었죠.”
치과 원장 때 시작한 건축 기행은 최근 한 권의 책으로 이어졌다. <도시의 깊이-공간탐구자와 함께 걷는 세계 건축 기행>(한겨레출판). 그의 첫 책이기도 하다. 30곳이 넘는 세계 주요 도시의 흥미로운 건축물과 그 건축가를 소개하고 현대 건축에서 차지하는 의미도 풀어냈다. “네덜란드에서 공부하던 2000년대 중반과 귀국해서도 여행을 많이 했어요. 그때 찍은 사진과 여행기를 주로 담았죠.”
책에는 저자의 눈을 사로잡은 여러 도시의 각기 다른 색깔의 건축물이 등장한다. 그가 보기에 “현대 건축은 도시의 표정”이다. “일본 오사카와 도쿄만 해도 건축의 느낌이 달라요.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쿠마 켄고가 이 두 도시를 각각 근거지로 작업하는 것도 한 이유이죠. 오사카에는 단순한 형태와 재료를 쓰는 미니멀리즘 건축과 노출 콘크리트가 특징인 안도 작품이 많고, 도쿄는 현대 건축의 과한 장식을 강조하는 쿠마 작품이 여럿이죠.”
유럽 도시들도 건축에 따른 각기 특성이 있단다. “스위스와 포르투갈은 독특한 느낌의 미니멀리즘 건축이 강세입니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달라요. 독일은 건축에 유리를 많이 써요. 건물 자체가 유리 구조물 같아요. 2차 대전 때 도시 자체가 파괴된 베를린이 재건하면서 유리를 많이 쓴 게 다른 도시들까지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하지만 미국은 유리를 선호하지 않아요. 비용이 많이 들고 시공도 어렵기 때문이죠.”
치과 개원 5년차 때 건축학 입문
미국과 네덜란드로 ‘건축 유학’
50대 중반에 대학에서 설계 강의
디자인 등 기획설계 프로젝트 병행 “최고 건축가의 최고 건축 보유한
대만 공무원의 심미안 존경해” 도시에 어떤 건축이 설지는 결국 그 도시 사람들이 결정한다. 건축 기행에 탐닉한 그의 시선에서 특히 인상적인 장소는 가오슝, 타이중과 같은 대만 도시들이다. “대만 제2의 도시 가오슝에 들어선 국립 가오슝 아트센터나 타이중에 건축가 도요 이토가 지은 국립 타이중 극장은 기존의 전형적인 건축 구조에서 벗어난 새로운 구조물입니다. 최고 건축가의 최고 작품이자 현대 건축의 중요한 프로젝트들이죠. 이 건축을 보려고 건축 전공자들이 대만을 많이 찾아요.”
그는 책에 자국을 최고 현대 건축 보유국으로 만든 대만 공무원의 심미안에 존경을 표한다고 썼다. “우리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나 ‘서울로7017’처럼 최고 건축가의 작품이 있지만 아쉽게도 그 사람들의 최고작은 아닙니다. 1995년에 인천국제공항지구계획안 응모에 당선된 건축가 렘 콜하스의 애초 설계에는 지금도 현대 건축에 중요한 개념이 담겼는데 최종 결과물에는 반영되지 못했어요.”
그는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라는 말도 했다. “건축은 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고, 사람들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고, 그 공간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있어야 하는지를 알아내고 공간적 해결책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가 좋은 건축의 정의를 두고 “시대의 요구를 잘 반영하는 건축”이라고 말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1960~70년대 유럽의 구조주의 건축은 도시의 구조나 기능과 건축을 연동시켰어요. 구조주의 건축은 20년이 지나면서 ‘인간 소외’ 같은 한계를 드러냈죠. 이 때문에 인간 소외를 공간적으로 극복하려고 빛과 물과 같은 자연 현상을 끌어와 인간의 정서적 체험을 강조하는 건축이 나타났어요. 안도 다다오의 <글래스 하우스>(제주) 같은 건축물이 대표적이죠.”
‘코로나 19’도 건축이 풀어야 하는 새로운 사회적 과제라고 그는 말했다. “요즘 건축학회 온라인 세미나 주제 대부분이 ‘코로나 19’입니다. 저도 지금 프랑스 철학자 푸코의 ‘질병의 공간화’ 개념으로 코로나 19 시대의 도시공간구성을 분석하는 논문을 쓰고 있어요. 코로나 19는 주택에서 격리 공간의 필요성을 제기했어요. 세대를 분리해 출입문이 두 개인 큰 아파트처럼 앞으로 주택 건축도 필요할 때 적절한 단절과 적절한 연결이 이뤄지도록 공간 변화가 시도될 수 있겠죠.”
건축가의 여행은 보통 사람들과 뭐가 다를까. “건축 체험은 시간과 상황에 따라 많이 달라요. 그 차이를 아는 게 중요해요. 그러려면 시간대별로 자주 찾아야죠. 파리 에펠탑은 밤과 낮의 느낌이 너무 달라요. 밤에 산도 없어 툭 터진 공간에서 우뚝 솟아 반짝반짝 빛나는 에펠탑을 보면서 많이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미국 서부 도시 라스베이거스도 밤을 기준으로 설계된 도시라 해 질 무렵에 도착하는 게 좋아요. 일본 이시카와 현에 자리한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은 넓은 잔디밭 한가운데 원통형 유리 모양으로 지었어요. 미술관 건물 주변을 자유롭게 개방하고 어디에서든 접근이 가능해, 미술관으로 통하는 여러 동선을 다 체험해봐야 건축 개념을 명확히 알 수 있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정태종 단국대 건축학부 강의담당 조교수. 강성만 선임기자
<도시의 깊이> 표지.
정 교수가 외관 디자인 등 초기 설계를 한 신논현역 주변 상가건물 이미지. 정태종 교수 제공
미국과 네덜란드로 ‘건축 유학’
50대 중반에 대학에서 설계 강의
디자인 등 기획설계 프로젝트 병행 “최고 건축가의 최고 건축 보유한
대만 공무원의 심미안 존경해” 도시에 어떤 건축이 설지는 결국 그 도시 사람들이 결정한다. 건축 기행에 탐닉한 그의 시선에서 특히 인상적인 장소는 가오슝, 타이중과 같은 대만 도시들이다. “대만 제2의 도시 가오슝에 들어선 국립 가오슝 아트센터나 타이중에 건축가 도요 이토가 지은 국립 타이중 극장은 기존의 전형적인 건축 구조에서 벗어난 새로운 구조물입니다. 최고 건축가의 최고 작품이자 현대 건축의 중요한 프로젝트들이죠. 이 건축을 보려고 건축 전공자들이 대만을 많이 찾아요.”
정태종 교수가 직접 찍은 국립 가오슝 아트센터 외관.
연재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