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 지음/사회평론아카데미·5만원 에세이스트로 알려진 정치학자 김영민 서울대 교수가 전공 분야의 저서 <중국정치사상사>를 출간했다. 영국 폴리티 출판사의 의뢰를 받아 2017년 영어로 써 펴낸 것을 이번에 한국어로 번역해 내놓았다. 번역 과정에서 새로운 내용을 덧붙여 영어판보다 더 두툼해졌다. 기존의 영어본 중국 정치사상 통사는 1979년에 번역된 샤오궁취안의 <중국정치사상사>가 유일했으나, 지은이의 저작이 나옴으로써 40년 만에 새로운 영어본이 나온 셈이 됐다고 한다. 이 책의 특징은 주요 인물의 사상을 연대기순으로 나열하는 기존의 통사와 달리, 역사의 흐름을 따르되, 각 시대의 특징을 집약했다고 판단되는 주제를 중심에 두고 천착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2500년 중국사가 10개의 단위로 나뉘어, 각 단위마다 ‘계몽된 관습 공동체’, ‘정치 사회’, ‘국가’, ‘귀족 사회’, ‘형이상학 공화국’을 비롯한 열 가지 주제가 배정된다. 눈에 띄는 것은 중국 정치사상의 주요한 개념을 서양 사상사에서 발견되는 개념과 비교하는 방식을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서양 독자를 배려한 서술이겠으나, 중국 사상을 새로운 눈으로 읽어내는 기회를 제공하는 서술이기도 하다. 가령 ‘계몽된 관습 공동체’(제2장)에서 공자의 사상을 설명하는 가운데, 공자가 강조한 ‘예’를 ‘미시성의 정치’로 이해하면서, 미셸 푸코가 전개한 ‘권력의 미시물리학’과 비교함으로써 둘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별해낸다. 푸코의 경우 근대의 권력장치 속에서 이루어진 ‘훈육’은 외부에서 부과되는 것인 데 반해, 공자가 강조한 예는 ‘자기 부과적’이다. 예의 행위자 자신이 훈육의 주체이자 객체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 책은 통상의 정치사상서에서는 간과하거나 배제하는 것들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청나라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방편으로 옹정제의 ‘비공식 초상화’를 살피는 것이 그런 경우다. <윤진행락도>라는 화첩에는 옹정제의 초상화 13점이 수록돼 있는데, 주인공이 한족 유학자뿐만 아니라 페르시아 무사, 튀르크계 왕자, 도가의 술사, 티베트 승려의 복장을 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서양식 가발을 쓰고 유럽인의 복장을 한 것도 있다. 민족적·종교적·문화적 통합을 지향하는 옹정제의 마음이 드러난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이 책은 기존의 통사와는 사뭇 다른 서술 방식을 관철함으로써 지은이의 독특한 시각이 배어든 중국정치사상사를 읽는 즐거움을 준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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