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볼 드라이브
조예은 지음/민음사·1만3000원
초여름의 어느 날, 함박눈이 내린다. 차갑지도 녹지도 않는 ‘방부제 눈’이다. 쌓이고 쌓인다. 그 눈이 사람의 피부에 닿으면 반점과 발열, 구토 증상이 나타난다. 그날, 15살 백모루와 이이월은 눈부시게 하얀 세상이 순식간에 눈의 지옥으로 변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아이가 목을 벅벅 긁으며 신음했고, 누군가 다가가기 무섭게 왈칵 피를 토했다. 그새 쌓인 흰 눈 위로 붉은 피가 흩뿌려졌다.”
<스노볼 드라이브>는 녹지 않는 눈이 내리는 재난 상황에 부닥친 미래 도시를 그린 에스에프(SF)다. 절망적 상황을 극복하려는 모루와 이월의 용기와 인간애를 세밀하게 담았다. 2016년 제2회 황금가지 타임리프 소설 공모전에서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로 우수상을 받고 작품활동을 시작한 조예은 작가가 썼다. 그는 장르문학계에서 주목받는 신예 작가다.
소설은 같은 중학교에 다니는 모루와 이월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눈에 잘 띄지 않는 평범한 학생인 모루. 그와 달리 이월은 허공을 향해 종종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정신이 이상하다는 소문이 있던 아이였다. 녹지 않는 눈이 처음 내리는 날, 사람들이 눈을 피해 도망가는 아수라장 속에서 모루는 넘어진다. “무섭고 외롭고 아팠”던 그 순간 모루를 향해 이월이 손길을 뻗친다. “멍하니 있지 말고 일어나!” 서로를 잘 알지 못했던 그들은 위기의 순간, 처음 손을 맞잡는다.
그들은 7년째 내리는 녹지 않는 눈 때문에 사람들이 다치고 죽는 비극을 보며 자란다. 재난이 일상을 잠식할수록 사회는 더욱 삭막해진다. 사람들은 오직 자신이 살길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이상하게 변해 버린 세상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 같은 건 아주 별 볼 일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건 지금 숨을 쉬고 있느냐, 그뿐이며 아무도 숨을 뱉어 내는 인간의 속을 세세히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궁금해하지 않는 인간의 삶은 지루하다.”
재난으로 무너진 공동체 안에서 모루와 이월이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는 과정이 이어진다. 모루는 어느 날 갑자기 스노볼만 남긴 채 사라진 이모를 찾아 나선다. “(이모가) 이 세상에 있다면 말이야. 달리다 보면 마주치지 않을까? 나는 도저히, 가만히 기다리는 것은 이제 못 하겠어.” 이월도 그의 무모하고 위험한 여정에 함께한다. 끝없는 설원을 달리는 둘의 모습은, 서로를 향한 다정한 온기를 느끼게 한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