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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내려보는 사람도 위를 보는 사람도” 모두가 쿵짝인 이유

등록 2021-02-26 09:50수정 2021-02-26 15:18

변신하고 포용하는 ‘네박자 뽕짝’의 힘
엘리트주의와 반일 정서로 무시·폄하된 트로트의 뿌리 정밀탐색
민중과 함께 울고 웃은 노래 대중화되기까지 곡절 흥겹게 전개

트로트가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웃음과 눈물로 우리를 위로한 노래의 역사
장유정 지음/따비·1만7000원

“니가 기쁠 때 내가 슬플 때 누구나 부르는 노래”, “나 그리울 때 너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르는 노래”,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는 노래. 이 노래 앞에서는 “내려보는 사람도 위를 보는 사람도” “내가 잘난 사람도 지가 못난 사람도” “어차피 쿵짝”이다. “울고 웃는 인생사”, “연극 같고 소설 같은 세상사”는 “모두가 네 박자 쿵짝”이다.

한국사회에 한참 울려 퍼지고 있는 트로트가 소재이자 주제인 노래 송대관의 ‘네 박자’(1998)다. 이 노래를 작사한 김동찬은, 트로트를 무시하고 천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반항으로 ‘네 박자’를 지었다고 한다. <트로트가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역시 트로트의 역사를 살펴 오해를 불식하고 무시와 천대를 넘어서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다. “가수가 되고 싶었으나 부족한 끼와 재능이 발목을 잡더니만 운명은 음악 역사를 연구하는 길로 이끌었다”는, ‘노래에 미쳐 노래에 사는 (대중)음악사학자’ 장유정 단국대 자유교양대학 교수가 지었다.

이 책이 담고 있는 핵심 문제의식은 트로트의 뿌리다. 이른바 ‘왜색 시비’, 트로트가 일본 엔카에서 나왔거나 큰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이 맞냐는 것이다. 최초의 트로트 논쟁은 이미자의 ‘동백아가씨’(1964)에서 시작됐다. 1960년대 대중가요는 크게 ‘팝’과 ‘트로트’로 구분할 수 있는데, ‘동백아가씨’는 트로트 부흥의 기폭제였다. 팝 계열은 미8군 무대와 주한미군방송(AFKN) 등 미국 영향이 명확한 반면, 트로트는 해방 이후 반일 풍조의 영향 속에 왜색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동백아가씨’는 1965년 방송금지, 1968년 음반 제작 금지 처분을 받게 된다. 트로트 천대는 일반으로까지 확장되어왔다. ‘네 박자’ 노랫말이 본래 ‘뽕짝’에서 ‘쿵짝’으로 바뀐 것은, ‘뽕짝’에 대한 일반 인식을 대변한다.

지은이는 트로트 왜색 시비와 관련한 통념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한·일 수교를 앞둔 군사정부가 반일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동백아가씨’에 ‘왜색’ 딱지를 붙였다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이 지금까지도 전해져오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며, 이른바 ‘음악 엘리트’들의 편견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동백아가씨’ 열풍에 반감을 지닌 서양 음악 전공자와 방송사 음악 담당 실무자들이 원인이라는 설명이다. 음악 엘리트들이 왜색이라 찍은 낙인은 이후 1980년대 후반 ‘노래 운동’의 일환으로 대중음악을 연구한 이들에 의해 강화됐다고 지은이는 짚는다. 트로트 자체가 체제 순응적이며 일제가 식민지배를 위해 이식시킨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의 바탕에는 일본 ‘엔카’와 트로트가 같은 갈래라는 믿음이 깔려 있었다는 것이 지은이의 견해다. 그러나 1920~30년대 서양 음악을 받아들여 일본화한 노래는 1960년대에 이르러 엔카로 명명됐다. 이미 일제강점기에 태동한 한국 트로트가 엔카라고 설명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지은이는 “일본에서 서양음악을 받아들여 일본화하고 있을 때, 한반도에서도 서양 음악과 일본 음악을 받아들여 한국의 대중음악이 탄생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왜색 시비에도 트로트는 한반도 민중과 함께 울고 웃어왔다. 일제강점기 인기를 끈 노래 중 ‘카츄사의 노래’ ‘이 풍진 세월’(희망가) 등 일본 노래의 번안곡도 있었지만, ‘황성의 적’(황성옛터) ‘목포의 눈물’ 같은 노래는 식민지에서 살아가는 분노와 슬픔, 설움을 달랬다. 이후 동족상잔의 전쟁이 터져 고향을 잃고 떠도는 이들에겐 ‘가거라 삼팔선’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 정거장’ ‘단장의 미아리고개’ 등이 위로가 됐다. 전쟁이 끝나고 힘겨운 삶을 이어간 1960년대엔 이미자와 배호가 트로트를 이끌었는데, ‘동백아가씨’를 비롯해 ‘흑산도 아가씨’ ‘황포돛대’ ‘빙점’ ‘섬마을 선생님’ ‘황혼의 블루스’ 등 이미자의 노래는 “트로트 토착화에 성공하는 한편, 향토적인 정서를 드러내면서 전통의 노래로 인식”되는 데 기여한다.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낀 장충단공원’ ‘비 내리는 명동’ 등을 저음으로 불러 인기를 끈 배호는 노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도시의 정서”를 노래했다. 재건과 개발이 주요 화두였던 시기 이촌향도의 시대상이 트로트에 반영된 것이다.

이후 트로트는 점차 흥겨워진다. 1970년대를 주름잡은 남진과 나훈아, 1970~1980년대 포크·록의 대유행 영향을 받은 송대관, 조용필, 최병걸, 윤수일 그리고 심수봉과 김수희,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까지 가요계를 평정한 김연자, 주현미와 더불어 현철,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 등 ‘트로트 4인방’의 대활약이 이어졌다. 이 시기 트로트가 ‘성인의 유흥’에 한정돼 있었다면 2000년대 들어 장윤정이 ‘어머나’를 들고 나오며 트로트의 확장이 이뤄진다. 송가인과 임영웅 등이 등장하게 된 중요한 배경이다.

지은이는 트로트를 둘러싼 오해를 풀고 변천사를 훑으며 무엇보다 그 ‘생명력’에 주목한다. “트로트의 흡수력과 포용력은 요즘 말로 ‘갑’이다. 모방과 복제, 갱신, 변신, 변모 등을 통해 끝없이 달라진다. 트로트가 계속 달라진다는 것은 머무르지 않고 흐른다는 것이고, 흐른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 끝없는 핍박에도 트로트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 변신과 포용력이 바로 트로트의 힘이다.” 또한 그 생명력은 외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땅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로하는 구실을 한다는 것이 지은이의 생각이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트로트에 편견을 지니고 있던 학자의 ‘편견 탈출기’”이며 “머리로는 트로트를 밀어내려 하나 마음은 트로트를 향하는 누군가의 내적 갈등을 해소해주기 위해 기획된 것.” 이 책을 읽고 티브이에서 범람하는 트로트를 들으며 마음이 편해질 이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사진 따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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