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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증언록·일대기 토대 삼아 ‘부마항쟁’ 문화예술 작품화 기대해요”

등록 2021-03-01 19:06수정 2021-03-02 02:38

[짬] 박진해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

박진해 이사가 낸 <김종철, 그의 시대 그리고 벗들>에서는 유신 시절 고교 동문회를 매개로 한 반유신 민주화 운동의 내막도 엿볼 수 있다. 마산고 재경 동문은 공개 조직인 ‘재경 마산 학우회’ 외에 대학별 비공개 학습소모임을 1976년에 꾸려 매주 한 차례씩 한국근현대사나 자본주의 경제 비판 서적 등을 읽으며 학습 토론을 했단다. 재경 마산 학우회가 77년에 강만길 교수를 초청해 마산에서 연 강연회에는 청중 200여명이 몰렸다고 한다. 사진 박진해 이사 제공
박진해 이사가 낸 <김종철, 그의 시대 그리고 벗들>에서는 유신 시절 고교 동문회를 매개로 한 반유신 민주화 운동의 내막도 엿볼 수 있다. 마산고 재경 동문은 공개 조직인 ‘재경 마산 학우회’ 외에 대학별 비공개 학습소모임을 1976년에 꾸려 매주 한 차례씩 한국근현대사나 자본주의 경제 비판 서적 등을 읽으며 학습 토론을 했단다. 재경 마산 학우회가 77년에 강만길 교수를 초청해 마산에서 연 강연회에는 청중 200여명이 몰렸다고 한다. 사진 박진해 이사 제공

“제가 작업한 증언록이나 책을 토대로 부마항쟁을 문화·예술적으로 형상화한 콘텐츠가 많이 나오면 좋겠어요. 부산과 마산지역만이 아니라 젊은 세대들도 부마항쟁을 알 수 있도록요. 부마항쟁 7개월 뒤에 터진 ‘5·18’은 소설이나 영화가 많이 나왔지만, 부마는 아직 소설 한 편 쓰이지 않았어요.”

박진해(68)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이하 부마사업회) 이사는 최근 부마항쟁의 상징적 인물인 고 김종철(1955~97)씨의 생애를 정리한 <김종철, 그의 시대 그리고 벗들>(비매품)이란 책을 펴냈다. 2015년부터 부마항쟁 기록화에 힘을 쏟고 있는 박 이사를 지난 24일 전화로 만났다.

서른 살 무렵 김종철. 박영주씨 제공
서른 살 무렵 김종철. 박영주씨 제공

부마항쟁은 1979년 10월16일부터 20일까지 부산과 마산 지역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민항쟁이다. 항쟁 열흘 만에 독재자 박정희는 심복 김재규가 쏜 총에 맞아 18년 철권통치를 마감했다. 42살에 간세포암으로 요절한 김종철은 부마사업회가 2009년 제정한 ‘10·18 부마민주상’의 첫 수상자이기도 하다. 박 이사는 부마사업회가 2년 전에 낸 <부마민주항쟁 증언집 마산편> 2권과 3권도 각각 편집위원과 편집위원장을 맡아 발간에 참여했다. 연세대 국문학과를 나와 1983년 <마산문화방송> 피디로 방송계에 입문한 박 이사는 전국방송노조 사무처장과 <마산문화방송> 대표를 지내고 2008년 퇴임했다.

박 이사의 마산고 2년 후배인 김종철은 부마항쟁 발발 사흘째인 18일 마산 시위에서 붙잡혀, 입고 있던 옷과 살이 엉겨 붙을 정도로 모진 고문을 당했다. 박 정권은 항쟁의 배후를 유신말 최대 공안사건인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으로 꾸미기 위해 부마 시위 연행자들에게 온갖 고문과 폭력을 저질렀다. 특히 고려대 법학과 75학번인 김종철은 대학에서 지하동아리 활동도 했으니 고문 경찰들에겐 ‘탐스러운 먹잇감’이었을 것이다.

고인은 대학 졸업을 한 학기 앞둔 1978년 2학기에 휴학하고 마산에서 박 이사 등과 함께 ‘경남 양서보급회’ 활동에 힘을 쏟았다. 회원이 250명까지 됐던 보급회는 책 대여, 한국 근대사 등 학습 소모임 운영과 회보 <집현보> 제작 등을 통해 마산 청년들 사이에서 반유신 공감대를 넓히고 있었다. 박 이사와 김종철, 주대환(현 죽산 조봉암 선생 기념사업회 부회장) 등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마산고 동문은 1977년 여름 마산의 경남대 학생들과 합동공부모임을 꾸려 ‘의식화’ 확산에 나서기도 했다. “부마항쟁 때 마산에서 구속된 50여명 중 10%가 양서보급회 회원이었죠. 77년 합동공부모임에 참여했던 경남대생 정성기도 18일 마산 시위에서 체포돼 구속됐고요.”

연행 40일 만에 풀려난 김종철은 군 제대 뒤 마산에서 약 7년 서점과 도서대여점을 운영하다 일찍 세상을 떴다. “석방 바로 다음 날 종철이를 만났는데 사람 때려잡는 인간 백정들한테 무차별 구타를 당했다고 했어요. 허튼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는 친구라 ‘정말 심하게 당했구나!’ 생각했죠. 극심한 고문 후유증에다 부마항쟁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위축된 삶을 살았어요. 전기고문을 당한 사실도 주변에 숨기다 한참 뒤에야 부인에게 털어놓았다고 해요.”

‘10·18 부마민주상’ 첫 수상한 ‘친구’
‘김종철, 그의 시대 그리고 벗들’ 펴내
고대 휴학 ‘경남 양서보급회’ 반유신 운동
1979년 마산시위 주범 몰려 ‘전기고문’
고문 후유증·암투병 끝에 42살 ‘요절’

“5·18처럼 소설·영화로 널리 알려야”

왜 김종철이 부마항쟁의 상징적 인물일까? 그는 부마항쟁을 계획하지도 앞에서 이끌지도 않았다. “부마를 두고 ‘준비 없이 일어난 우발적 항쟁이다’는 말이 많아요. 실제 조직적 주동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저는 부마항쟁을 ‘역사적 필연’이라고 봐요. 항쟁을 끊임없이 준비해온 흐름이 있었거든요. 이들이 항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그 확산에 직·간접으로 기여했어요. 마산 시위의 동력은 청년·학생이었는데 여기에는 고교 선후배들이 끈끈한 연대의식으로 해온 반유신 활동이 영향을 미쳤어요. 김종철이 그 대표적 인물이죠. 영어 실력이 뛰어났던 종철이는 사회과학이나 철학 원서를 섭렵해 진보적이고 명확한 관점의 글을 동문회보나 <집현보>에 기고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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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그의 시대 그리고 벗들> 표지.

박 이사가 발간을 이끈 <부마민주항쟁 증언집 마산편> 3권에는 마산 시위에서 잡혀 경찰에게 물고문과 극심한 폭력을 당한 당시 중3생(김효영)의 이야기도 나온다. 마산 시위를 주도한 여학생들은 경찰서에서 성고문에 가까운 폭력을 당하고 수치심에 치를 떨기도 했단다. 그는 “마산 시위에 1~2만명이 참여했는데 남아 있는 사진이 없다”며 이는 경찰 폭력에 대한 공포감 때문이라고 했다. “부마 때 마산 저녁 시위의 주요 구호가 ‘불 꺼’였어요.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보면 바로 ‘불 꺼’라고 외쳤죠. 경찰 채증 사진에 찍히면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대단했거든요. 1960년 마산 3·15부정선거 시위 사진으로 유명한 김일규 사진가도 마산 시위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시위 군중에게 빼앗길 정도였으니까요.”

그 자신은 마산 시위 첫날인 10월18일 저녁 2시간 동안 해군 소위 복장을 한 채 현장을 지켜봤단다. “그해 3월 입대해 마산 집에서 진해 해군기지까지 출퇴근했어요. 18일 퇴근 때 마산 도로가 다 막혀 버스에서 내렸는데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사람들이 움직이고 고함치더군요. 괴기스럽기도 하고 무서웠죠. 시위대를 따라 다녔는데 그때 헌병대나 보안대에 끌려갔다면 어떤 일을 당했을지 모르죠.”

계획을 묻자 박 이사는 “올해 부마항쟁 사진전을 열 계획”이라면서 “항쟁의 진상에 다가가는 노력은 이제 시작”이라고 했다. “작년에 한국방송대상을 받은 <경남 문화방송>(옛 마산문화방송) 라디오 드라마 20부작 <79년 마산>(2019년)은 사업회가 만든 부마항쟁 마산 증언집이 바탕이 됐어요. 진해 석동중 학생들이 재작년에 만든 <부마항쟁 뮤지컬>도요. 보람을 많이 느꼈죠.”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왜 바로 고향으로 향했느냐’는 마지막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고향에 대한 애정이 작동한 거죠. 마산은 3·15의거의 고장이라는 자부심이 강했어요. 고향의 ‘자랑스러운 반골 전통’을 이어가자고 생각했어요. 이승만 정부를 무너뜨린 3·15 의거 19년 뒤에 부마항쟁으로 박정희 정권이 무너졌잖아요. 3·15를 겪은 부마항쟁 참여자들에게 3·15는 엊그제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사실 3·15나 부마항쟁, 6·29, 촛불로 이어지는 항쟁에서 시민들이 집중 타격을 한 장소도 같아요. 남성동 파출소나 북마산 파출소가 대표적이죠. 유신 정권이 부마 시위자들에게 극심한 폭력을 저지른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마산을 막지 못하면 정권이 무너진다고 생각했을 테니까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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