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현석 지음/자음과모음·1만3800원 <다른 세계에서도>는 의사이자 작가인 이현석의 첫 소설집이다. 2017년 등단작 ‘참’(站)과 2020년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표제작 등 여덟 단편이 묶였다. 그 절반인 네 작품이 의사를 주인공이나 화자로 삼았고 ‘너를 따라가면’에는 간호사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작가 자신의 전문성을 적극 살린 셈인데, 의료 세계의 묘사가 드문 한국 소설로서는 반가운 일이라 하겠다. 이 가운데 ‘그들을 정원에 남겨두었다’는 아예 소설을 쓰는 의사를 등장시킨다. 의사 소설가인 ‘나’가 담당하는 환자 이시진 씨는 식물인간 상태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데, 10년 넘는 세월을 그와 함께한 동성 연인은 아무런 관계도 인정받지 못한 채 접근마저 차단당한다. 레즈비언인, ‘나’의 대학 동기 수연이 그 일을 각색해 에스엔에스에 올리자 국회에서 생활동반자법 발의 논의가 나올 정도로 큰 반향이 일지만, ‘나’는 수연 글의 과장과 왜곡을 지적하며 “그런 글을 쓰기 전에 최소한 동의는 구했어야 하는 거”라 항의한다. “넌 물어봤니?”라는 게 ‘나’의 항의에 대한 수연의 반격이다. 과거 수연이 어렵사리 털어놓은 자신의 성정체성을 ‘나’가 그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소설에 써먹은 사실을 겨냥한 말이다. ‘나’는 이시진 씨와 그의 동성 연인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있노라고 이시진 씨 딸에게 털어놓는데, 이 장면은 그가 수연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서 저질렀던 잘못을 되풀이할 수 있다는 암시로도 읽힌다. 작가 김봉곤이 지인의 문자 메시지를 허락 없이 소설에 차용해서 논란이 되기 전인 2019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해당 사태를 비롯한 글쓰기의 윤리를 다루고 있어 매우 흥미롭다.

이현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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