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되는 꿈
최진영 지음/현대문학·1만4000원
성장통과 자아 찾기를 주제로 한 신작 경장편 <내가 되는 꿈>을 낸 최진영. “스스로가 너무 못마땅해서 끈적끈적하고 희뿌연 기분에 잠겨 버릴 때는,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와 공존한다고 생각한다”고 ‘작가의 말’에 썼다. 최진영 제공
최진영의 경장편 <내가 되는 꿈>은 그의 2010년 제1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과 비교해 가며 읽을 만하다. 두 소설의 주인공이 모두 십대 소녀라는 점, 그들이 부모와 함께 살지 못하고 떨어져 지낸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당신 옆을 스쳐간…>의 주인공은 집을 나와 떠도는 처지이고, <내가 되는 꿈>의 주인공 태희는 외할머니 집에서 지낸다는 점에서 둘의 상황이 똑같지는 않다. 태희 역시 소설 중반부에서 “나는 영영 사라질 거야. 아무도 나를 찾을 수 없게 할 거야”라며 가출을 꿈꾸지만, ‘선배’ 소녀와 달리 끝내 실행에 옮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직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에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있으며, 어른들의 세계에 대해 불신과 분노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두 소설의 주인공은 같은 계열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왜 여기에 있지. (…) 어떤 그림에서 나란 사람을 오려 낸 다음 바람이 부는 대로 날려 가도록 내버려 둔 것 같았다. (…) 나는 늘 어딘가로 가는 도중 같았고, 어디에도 나만의 자리는 없는 것 같았다.”
태희가 중학생이 되면서 그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엄마는 경기도로, 아빠는 부산으로, 태희는 외갓집으로. 어리다는 이유로 부모는 태희에게 세 식구가 별거해야 하는 까닭을 설명해 주지 않는다. 외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막내 이모의 방에 더부살이로 들어간 태희는 좀처럼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며 고뇌한다. 그는 물리적으로는 외갓집에 속해 있지만, 마음은 <당신 옆을 스쳐간…>의 소녀처럼 지향 없이 떠도는 것 같다. 학교에서는 선생들이 폭언과 폭행을 가하거나 추행과 성희롱을 일삼는다. “내 허락도 없이 어떤 어른들은 내 것을 함부로 찢고 없앤다.”
더 끔찍한 것은, 태희 자신도 언젠가는 그토록 혐오하고 경멸하는 어른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어른이 되겠지. 남들은 절대 알지 못할 하루와 마음을 끌어안으며. 중요한 말일수록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면서.”
어린 태희의 이런 예감에 맞장구를 치는 어른이 소설에는 나온다. 그 역시 이름이 태희다. 그가 쓰는 편지의 한 대목을 보라.
“어릴 때 나는 그런 어른들을 알았어요. 참을성도 배려도 없이 화부터 내는 어른들 말입니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아서 끔찍합니다.”
낯선 동네의 카페에서 ‘1년 뒤의 자신’에게 쓴 이 편지가 동명이인인 어린 태희에게 배달된다는 데에 이 소설의 트릭이 있다. 그리고, 천기를 누설한 김에 한 발 더 나아가 보자면, 어린 태희와 어른 태희는 사실은 동명이인이 아니라 같은 사람이다. <프리퀀시> 같은 에스에프 영화에서 보았던 이런 설정 덕에 어린 태희와 어른 태희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 어른 태희의 시점에서 쓰인 아래 진술은 두 태희의 거리를 지우며 소설의 주제로 이어진다.
“어른들을 원망한 날들이 있었다. 오래전 이야기다. 내가 어렸을 때 그들은 젊었다. 어린 내게 젊음은 완벽한 어른이었다. 지금 내게 젊음은 얼어붙은 호수 같은 것. 언제 갈라지고 깨질지 알 수 없는 것.”
어린 태희가 생각하기에 자신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어른이 된다는 것’에 있다. 어린 태희는 얼른 어른이 되어서 어른들의 지배와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태희는 담임을 보며 생각한다. “이제 이 사람의 마음에 들려고 눈치 보거나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된다”고. 그것이 그에게는 졸업의 참된 의미로 다가온다. 같은 맥락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다른 어른들의 눈치를 보거나 그들 때문에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소설의 다른 절반을 차지하는 어른 태희의 경우가 보여주듯,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결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또 다른 문제들의 시작이다. 소설 초반부에서 어른 태희는 이렇게 자책하듯 되뇌지 않겠는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 왜 이런 사람이 되었나.”
표면적으로 어른 태희의 문제는 강퍅하고 비인간적인 회사에서 보람도 기쁨도 없이 세월을 죽이고 있다는 것, 불성실한 애인과 확실히 헤어지지 못한다는 것, 친구에게 생일 축하 인사를 전하거나 몸이 아픈데도 병원에 갈 시간을 내지 못할 정도로 격무에 시달린다는 것 등이다. 어린 태희로서는 짐작하기도 어려웠을 이런 문제들의 원인은 무엇일까. 어른 태희가 “길을 잃은 채로 너무 오래 살아서 길을 잃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사람”처럼 되어 버린 까닭은 무엇일까. “비난받지 않기 위해 쫓기듯 일하면서 내가 나를 제일 먼저 비난하는 삶”, “고인 채로 매일 짜증을 내며 조용히 썩어 가는 삶”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겨우 이렇게 되려고 그렇게.”
소설 중반부에서 어른 태희는 그때까지의 자신의 삶을 일단 실패로 규정하며 이렇게 한탄한다. 이어서 소설의 제목을 낳은 깨달음과 각오가 따른다. “아무도 내가 될 수 없고 나도 남이 될 수 없다. 내가 될 수 있는 건 나뿐이다. 자칫하면 나조차 될 수 없다.” 문제의 유무는 나이의 많고 적음과 무관하고, 내가 나일 수 있느냐에 달렸다는 것. “은이는 부자고 한수는 천재고 미지는 예쁘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친구들에 견주어 어린 태희는 자신을 비하하는데, 그런 태희가 잊고 있는 장점을 미지가 일깨워 준다. “너는 화가 나면 선생님 차에 똥을 누는 애잖아.” 초등학교 졸업식 날 태희는 복수 삼아 담임의 자동차 보닛에 똥을 눈 적이 있다! 어른 태희는 어린 태희의 이런 당돌한 자존에서 배워야 했던 것. 어린 태희의 편지를 받은 어른 태희가 그 편지의 의미를 이렇게 정확히 파악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해피엔딩이라 하겠다.
“젊은 시절의 엄마 아빠처럼 자신을 견딜 수 없어 상대를 증오하는 방법으로 정신없이 화를 내며 살고 있는 나를 찾아왔다. 어린 시절의 내가.”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