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현대문학·1만7800원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배신자’ 유다를 내세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의 본질을 탐구하고 해법을 모색한 소설 <유다>의 작가 아모스 오즈. 한 인터뷰에서 “삶 자체가 배신이다. 부모의 꿈으로 태어나 살면서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하며 첫 꿈의 고결함대로 살 수 없는 것이 인생 아닌가. 타협이란 배반의 한 형태다”라고 말했다. ⓒ Zhang Lei
이스라엘 작가 아모스 오즈(1939~2018)의 ‘마지막 소설’ <유다>(2014)가 번역돼 나왔다. 히브리 문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오즈는 내털리 포트먼이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의 원작인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를 비롯해 <나의 미카엘> <지하실의 검은 표범> 등의 작품이 한국에도 번역 소개되어 있는 작가다.
예수를 팔아넘긴 가룟 유다는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배신자일 것이다. 그런데 ‘유다’라는 이름은 유대 민족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과 연관되며, 자연스럽게 유대인들이 예수를 배신했다는 통념으로 이어진다. 소설 속 인물 게르숌 발드의 말에 그런 사정이 적절하게 요약되어 있다.
“내가 아는 모든 언어에서,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에서도 유다라는 이름은 배신자와 동의어가 되었다네. 그리고 유대인이라는 말과도 동의어가 되었을 걸세. 수백만 명에 이르는 일반 기독교인들의 눈에 모든 유대인과 유대 민족은 배신이라는 병원체에 감염된 셈이지.”
오즈가 자신의 ‘백조의 노래’가 된 소설의 소재로 배신자 유다를 택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생전의 오즈는 ‘두 국가 해결책’을 내세우며 이스라엘과 아랍의 평화 공존을 주장함으로써 동포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그런 그의 면모는 소설 <유다>에서 성서 속 인물 유다와 함께 또 다른 ‘배신의 아이콘’으로 등장하는 지식인 쉐알티엘 아브라바넬의 모습에 짙게 투영되어 있다. 아브라바넬은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유대 국가 건립에 반대하고 아랍과 공존을 주장했다가 배신자로 몰렸고 결국 은둔과 고독 속에 비참하게 죽어 간 사람이다. 오즈가 유다와 아브라바넬이라는 두 배신자를 통해 기독교와 유대 민족의 역사 그리고 이스라엘과 아랍의 관계를 자기 나름으로 정리하고자 한 것이 소설 <유다>인 셈이다.
소설은 1959년 말에서 이듬해 초까지 겨울 석 달 동안을 시간 배경으로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석사 논문을 준비하던 스물다섯 살 청년 슈무엘 아쉬는 여자친구가 떠나고 집안도 몰락하자 학교를 그만두고 임시 입주 일자리를 얻는다. 그가 해야 하는 일인즉, 장애 노인 게르숌 발드의 말동무가 되어 주는 것. 학식이 높은데다 냉소적인 발드는 무슨 주제가 됐든 논쟁을 벌이고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데에서 쾌감을 찾는 괴팍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견해에 인용과 암시로, 날카로운 익살과 말장난을 양념으로 곁들여서 논쟁 상대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사정없이 찔러 대었다.” ‘유대인들의 눈에 비친 예수’를 석사 논문 주제로 삼으려 했던 슈무엘은 그런 발드와, 예수와 유다에 관한 해석을 놓고 논쟁을 벌인다.
그를 고용한, 마흔다섯 살가량 된 매혹적인 여주인 아탈리야를 상대로 한 슈무엘의 소득 없는 구애가 소설의 다른 한 축을 이룬다. 발드는 처음부터 “아탈리야와 사랑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하고, 아탈리야도 자신은 “남자가 전혀 필요 없는 사람”이라며 슈무엘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 아탈리야가 다름 아니라 쉐알티엘 아브라바넬의 외동딸이며, 발드의 외아들이기도 한 그의 남편 미카가 서른일곱 살 나이에 전쟁에 나갔다가 아랍인들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은 소설이 절반 정도 진행된 다음에야 제시된다. 평화주의자이자 모든 국가에 반대한 무정부주의자였던 사돈과는 달리 유대 국가 설립을 적극 지지했던 발드는 아들의 죽음을 제 탓으로 돌리며 자책한다. “내 아들, 미카는, 내 유일한 아들, 미카는, 자기 아버지가 신성한 전쟁이라고 말하지만 않았어도 그 전쟁에 나가지 않았을지도 몰라.”
이스라엘 땅에 유대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부당하다고 말할 정도로 급진적이었던 아탈리야는 남편의 죽음을 계기로 모든 전쟁과 폭력 그리고 그것들의 원인 제공자이자 수행 주체인 남자들 전체를 혐오하고 부정하기에 이른다. 자신의 사랑을 갈구하는 슈무엘에게 그가 하는 말을 들어 보라. “남자를 사랑하는 일은 불가능해요. 벌써 몇천 년 동안 온 세상이 당신들의 손안에 있었는데 당신들은 세상을 아주 끔찍한 곳으로 바꾸어 버렸어요. 도살장으로요.”
무신론자인데다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는 좌파이기도 한 슈무엘 자신은 “원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광신도를 온건한 사람으로, 복수하고 시비를 걸려는 사람을 친구로 바꾸는 것”에 이스라엘의 생존이 걸려 있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그는 발드보다는 아브라바넬과 오즈 쪽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는 또 배신자 유다의 ‘복권’에도 관심이 커서, “가룟 유다는 그(=예수)의 제자 중에서 가장 충성스럽고 헌신적인 사람이었고, 절대 그를 배신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온 세상에 그의 위대함을 증명하려 했을 뿐이라고” 굳게 믿는다.
“다른 제자 중에 아무도 나사렛 사람 예수와 함께 죽지 않았다. 유다가 그 메시아가 죽은 뒤에 더는 살기를 원치 않았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 만약 그가 없었다면 십자가도 없었고 기독교도 없었으며 교회도 없었을 것이고, 그가 없이는 그 나사렛 사람(=예수)도 갈릴리 변방에서 와서 기적을 일으키고 설교를 하던 시골 사람들 수십 명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잊혔을 것이다.”
유다가 예수에게 입을 맞춤으로써 군인들에게 예수를 알려주었다는 성서 속 일화를 그린 조토 디 본도네의 그림 <유다의 입맞춤>.
유다에 관한 이런 전복적인 해석은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치부하는 ‘유다 복음서’의 주장과 통하는데(이 소설의 원제도 ‘유다 복음서’다), 슈무엘이 배신자 유다의 복권을 주장하는 것은 그에게서 아브라바넬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는 때때로 자기 시대보다 너무 앞서 태어난 용감한 사람들에게 배신자나 광인이라는 낙인을 찍은 예가 많이 있어요. (…) 쉐알티엘 아브라바넬은 아름다운 꿈을 꾸었고, 그의 꿈 때문에 그들이 그를 배신자라고 부른 거예요.”
동족의 비난을 무릅써 가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평화를 위해 노력했던 오즈는 2000년 이후 양쪽의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자 일체의 정치적 발언을 중단하고 작품 활동에만 몰두했다. <유다>는 그가 소설 형식으로 내놓은 정치 발언이자 유언이라 하겠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